제부는 초록 잎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코를 쥐어 막는 흉내를 내고는 손으로 X자를 그리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This... No, No, No"
호텔 조식뷔페의 반미코너에서 "고수를 빼달라"는 말을 전달하느라, 제부는 온갖 표정과 몸짓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하얀 조리복을 입은 자그마한 체구의 요리사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Ok, Ok"
라고 하더니, 바로 뒤에 서 있던 내게도 고수를 빼줄지 물어왔다.
"고수 많이 넣어 주세요. 더… 더… 더요."
현지의 반미는 역시나 맛있었다. 한국에서 먹던 고수와는 향의 깊이와 농도부터 차원이 달랐다.
나와 달리 고수를 입에도 대지 못하는 제부는 식당에 갈 때마다 온몸으로 'NO, 고수'를 외쳐야 했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그 절박한 바디랭귀지를 귀신같이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나트랑에 대한 글을 쓰기 전 갑자기 지명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이 도시를 나트랑이라고 부르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현지 발음으로는 '나짱(Na Trang)'이며 '갈대가 무성한 강'이라는 뜻의 '야짱(Ya Trang)'에서 유래한 이름이다.(대문사진, 기사 출처; 더 코리안 락)
'갈대가 무성한 강'이라는 낭만적인 어원을 품고, 음식마다 고수를 아낌없이 쓰는 나라 베트남. 그곳으로 친정식구 일곱 명이 다 함께 여행을 떠났다.
여행 장소와 일정 등 모든 준비를 제부가 일임해 준 덕분에, 여느 때와 달리 내가 신경 쓸 게 없어 편안한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출발일이 다가오자 설렘과는 또 다른 복잡한 감정이 묘하게 피어올랐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전쟁터에서 겪은 참상을 가끔씩 꺼내놓기 시작하셨다. 그것도 내 앞이 아닌 맏사위인 남편을 앉혀 두고 나누는 이야기였고,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빠의 낯선 모습이었다.
"포탄이 터져 부대가 초토화됐고, 옆에 있던 전우들의 피가 개울처럼 흘러내렸어."
여행 가방을 싸는 동안, 아빠가 나직하게 털어놓으시던 목소리와 어딘지 공허했던 표정이 자꾸만 맴돌았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빠는 이십 대 초반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셨다. 한 막사에서 동고동락한 전우들을 참혹하게 잃어가며 하루하루를 견뎌내셨던 것이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런 얘기를 불쑥 꺼내실 때마다,
"아빠 베트남 가고 싶어?"
"같이 갈까?"
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아빠는 공허한 눈빛으로 희미하게 웃으실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으셨다.
아빠가 끝내 다시 가보지 못하셨던 베트남. 그곳으로 나는 그저 휴양 삼아 놀러 가는 것이다.
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해 둔 밴을 타고 한참을 달려 리조트에 도착했다. 바다를 품고 있는 그곳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음식은 맛깔스러웠고 바다는 뜨거운 태양 아래 반짝였다. 수영을 하고 선베드에 누워 수다를 떨다 마사지도 받았다. 물가는 저렴했고 직원들 역시 다정하고 친절했다.
그런 평화로움에 왠지 모를 착잡함이 자꾸 겹쳐졌다.
아빠는 이곳에 다시 오고 싶으셨던 걸까? 아니면 너무 지긋지긋해서 발도 들이고 싶지 않으셨던 걸까?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1964년~73년까지 약 9년 동안 32만 5천 명의 육ㆍ해ㆍ공군이 참전했으니 그 숫자가 적지 않다. 안보ㆍ경제ㆍ외교적 문제가 얽혀 젊은 청춘들은 명령이나 자원으로 이 뜨거운 땅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벌어들인 10억 달러의 외화는 산업화의 밑거름으로 쓰였다. 나라는 도약했지만 육체적, 정신적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이 떠안았다.
전쟁 후유증으로 아빠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셨다. 고엽제 피해자만 약 15만 명, 사망자도 5천 여 명에 달했지만,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인 유족과 부상자들에 대한 보상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마련된 보상금의 상당수마저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국가 재정에 귀속되고 말았다.
그렇게 청춘들의 희생과 피땀을 딛고 우리나라는 쭉 뻗은 고속도로처럼 급성장했다. 반면, 베트남은 포성과 총성이 할퀴고 간 자리에 다시 고요를 쌓아 올리기까지, 참으로 기나긴 세월을 견뎌야 했다.
지금 리조트 앞의 바다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바다는 어디가 경계인지 모를 만큼 경계 없이 푸르렀다.
그때의 바다도 지금처럼 뜨겁고 청아했을까. 그 청춘들도 가끔은 포탄이 멈춘 날, 이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었을까.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 바다너머 고향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웠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참전용사들이 끝내 이 땅에서 보지 못했던 평화는, 이제 그들의 포효와 혈흔 위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지금 이곳, '갈대가 무성한 강' 위에는 평화로운 바람이 일렁이고, 나 쨩(Nha Trang)을 비롯한 베트남의 여러 휴양지는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로 넘실댄다.
그때의 전쟁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땅과 하늘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이 이룩해 낸 평화로운 세상을 가만히 품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