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를 마시며 생각한 욕망과 편안함
언제부턴가 요가원에서 차를 마실 때면 신중하게 잔을 고른다. 내가 선호하는 찻잔은 손에 쥐었을 때 너무 뜨겁지 않도록 적당한 두께가 있고, 차를 몇 모금에 나누어 마실 수 있는 그리 작지 않은 잔이다. 이왕이면 예쁜 무늬가 있으면 더 좋다.
트레이에 놓인 찻잔들은 선생님이 분기별로 바꾸시는데, 요즘 나와 있는 잔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가득하다. 하얀 도자기 잔, 옥색 도자기 잔, 잔 안에 예쁜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는 잔, 신라의 미소 수막새 모양이 담긴 잔. 또 어떤 잔은 마치 진한 다크초콜릿 한 덩이를 뚝 떼어 빚어놓은 듯한 잔과 같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그중 그동안 못 보던 잔이 눈에 띄었다. 하얗고 얇은 잔에 가느다란 파란 띠가 둘러져 있어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잔. 잔을 들어 쓱 둘러보니 한문으로 '인욕(忍辱)'이라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요가원의 유명한 '차고래'다. 여느 때처럼 차를 많이 마실 심산이 괜히 스스로 마음에 찔려, 한동안 인욕 잔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인욕'이라는 글자가 좋아 보여 그 잔에 차를 따랐다. 인욕은 괴로움이나 불편함 속에서도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다. 내가 이 잔을 피했던 건 어쩌면 차를 많이 마시고 싶은 일차원적인 욕망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일상의 이 작은 찻잔 앞에서조차 내 욕망을 직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단어를 거칠기 그지없는 현대 슬롯로 가져오더라도,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괴로움은 여전하다. 하지만 슬롯를 살아가며 체득한 경계점은 명확하다. 세상이 주는 모욕감에 흔들려 과분한 선택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수련자는 무조건 딱딱한 바닥에서 자고, 추위도 더위도 견디며 고통을 참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괴롭히는 잘못된 인욕은 없을 것이다. 다만, 편안함을 누리되 그곳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현대 슬롯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빠른 것, 더 편한 것, 더 달콤한 것'을 제공한다. 편리함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다 보면 뇌는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무시당하지 않으려, 혹은 은근한 모욕감을 지우려 충동적으로 과소비를 하거나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 또한 그렇다. 현대의 인욕은 이 양극단 사이에서 흔들리되 결국은 중심을 잡는 오뚝이가 되는 것이다.
좋은 환경과 편안함을 기꺼이 누리면서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 내 마음이 과연 지옥으로 변해버리는지 말이다. 편안함이라는 달콤한 열매만 덥석 따 먹고 바카라임과 의무는 외면하는 미숙한 태도가 아닌, 내가 선택한 편안함 뒤에 올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현대적 인욕이 아닐까.
이 현대적 인욕은 그래도 나름 욕심의 정도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차를 한 잔 더 마시겠다'와 같은 일상적인 욕심 앞에서까지 나를 너무 혹독하게 검열할 필요는 없다. 차를 더 마시면서 '오늘은 내가 차 욕심을 조금 부리는구나' 생각하며 부드럽게 알아차리고 주의를 돌리는 적당한 지혜도 필요하다.
인욕잔에 담긴 차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부디 내가 세속의 가치에 눈이 멀어 과분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그 선택이 나를 누리게 하되, 평생의 짐이 되어 나를 가두지 않기를. 내가 나답게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비로소 입안 가득 맴도는 보이 생차 특유의 고삽미(苦澁味)를 차분히 음미하며, 빈 잔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