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온 마음을 다시 건네는 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돌봄과 사랑을 경험한다. 아주 가까이 가족에게서부터 시작해 자라면서 한때는 영혼의 단짝 같았던 친구들, 일상 생활하며 만나는 사람들. 어쩌다 보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것은 굳이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향하는 마음들이다. 길가에 예쁜 꽃이 피어도 꺾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때 피아노를 전공으로 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나의 예상과 다르게 젊고 예뻤고 능력 또한 출중하신 분이었다. 그렇게 선생님께 악보 읽는 법부터 건반 터치하는 법, 프레이징 등 연주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차근차근 배웠다. 페달링이 어려울 땐 선생님 발 위에 내 발을 얹고 필요한 지점에 알맞게 함께 페달을 밟아 감을 익혔다.
연습실의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웠다. 정해진 퇴근시간도 없었고 추울 땐 난방, 더울 땐 냉방을 틀 수 있었고 그랜드피아노, 업라이트피아노를 색깔별로 돌아가며 쳤다. 선생님은 무대 감을 익히기 위해 나를 철마다 콩쿠르에 데려가고, 밥을 먹이고, 대망의 대학 입시장까지 같이 가 나의 피아노 소리가 어렴풋하게 새어 나오는 뒷길에서 마음 졸이며 내 피아노 소리를 열심히 들어주셨다. 그렇게 같이 연습하던 선후배들과의 사이도 돈독했고 서로 의지하며 힘들었지만 힘든 줄 모른 채 입시시절을 보냈다. 서른이 넘은 지금 그때의 선생님의 나이가 되어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예민했던 시기에 선생님께 음악 그 이상을 보고 자라, 이후에 들어온 후배들이 느끼기에 나에게도 어렴풋이 그런 모습이 보이나 보다. 언젠가 장난반 진담반으로 후배에게 "언니는 왜 우리한테 잘해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에게는 밥을 함께 먹고, 데려다주고, 좋은 곳에 함께 가고, 힘든 게 있으면 들어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고 함께 하는 일이다. 어쩌다 보니 나도 그저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고 있었나 보다. 후배의 질문에 '다 내리사랑이니 너도 후배가 생기면 그렇게 될걸.'라고 얘기한다. 지금 선생님을 만나 함께 그때를 떠올리면 선생님은 오히려 '너네 때가 제일 착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그렇게 온 마음 다해 나를 대해주셨는데 내가 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피아노 선생님에게 받은 그 사랑이 세월이 흘러 요가를 만나면서 또 다른 형태로 되돌아왔다. 선생님은 단단한 실력이 있지만 내세움이 없는 분이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매일 양질의 보이차를 내어주시고 함께 차담을 나누며 실없는 소리부터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선생님과의 대화는 늘 잘 흘러간다. 오늘도 나를 차고래라고 놀리며 기꺼이 질 좋은 차를 따라주고 따뜻한 손으로 나의 차가운 발을 잡아 정렬을 바르게 맞춰주신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엔 어떻게 알아채셨는지 사바사나 할 때 귀 뒤쪽과 인중에 아로마오일을 톡 발라주신다.
지금까지 내가 사랑이라고 느꼈던 장면들은 대단한 사건들이 아니다. 돌아보면 그때의 말, 그때의 손길, 그때의 침묵들이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흘러왔고, 돌려받겠다는 기색 없이 조용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 사랑들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올리기보다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었고,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었다. 그렇게 그 안에서 나는 숨 쉬는 법을 배웠다.
오늘도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며 사랑을 느끼고, 내쉴 때는 평화를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