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시간
어린이날에 마주한 여든 거장의 피아노는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프로그램 중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3번 A장조의 이슬이 맺힌 숲길 같은 청아한 선율을 따가라다 보면 머릿속에 '순수함'이 떠오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순수가 아이의 천진난만함이라면, 오늘 연주를 통해 느낀 순수는 인생의 풍파를 거쳐 충분히 정제된 '본질'에 가깝다. 그 본질은 곧 백건우의 타건을 통해 '토성'의 이미지로 전이된다.
토성은 긴 공전 주기만큼이나 인내를 상징하는 행성이다. 서양에서 토성의 성질은 성숙과 느림, 그리고 긴 호흡의 시간이다. 백건우의 온화한 템포는 그동안의 시간을 담고 있다. 젊은 연주자들이 폭발적인 기교로 청중의 감각을 자극한다면, 백건우는 소리를 음악의 심연으로 가만히 초대한다.
노년의 피아니스트는 더 이상 증명해야 할 것이 없다. 에너지를 밖으로 투사하는 대신, 콘서트홀에서 공명하는 울림에 가만히 집중할 뿐이다. 연주자가 그 공명에 집중할 때, 나 또한 그 중력에 이끌려 자연스레 침잠한다.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체감은 더욱 강렬해진다. 홀스트의 모음곡 <행성> 중 제5곡 토성(노년을 가져오는 자) 역시 무거운 걸음으로 시작해 깨달음을 얻어 고요하게 나아간다. 태양계의 질서를 지탱하는 이 행성처럼 백건우가 짊어진 삶의 무게 역시 가볍지 않았지만, 그 걸음 안에 들려야 할 모든 음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백건우의 피아노 소리가 크고 힘차게 다가온건 물리적인 데시벨(dB)의 수치 때문이 아니다. 들려야 할 모든 음이 선명했다는 것은 그만큼 음 하나하나에 부여한 삶의 밀도가 높았다는 증거다. 건반 위에서 음악으로 명상하던 정중한 손길은 종이 위에서도 정성스레 이어졌고, 그 성실한 필체는 그가 평생을 지켜온 음악적 질서와 품격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