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여자 양궁 경기를 보다가 임시현 선수 턱에 생긴 활시위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활시위를 수 만 번 턱까지 당기고 놓고를 반복하면서 패인 깊이만큼 그 주름 안에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맺히다 떨어졌을지 상상 가지 않았다. 양궁을 남달리 사랑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상처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는 눈에 보이는 혹은 눈에 띄지 않는 각인이 하나씩 있는 듯하다. 고등학교 등교 버스 안에는 예술고 여학생들이 함께 타기도 했다. 그 중에 무용과 학생이 누구인지는 걸음걸이만 보면 알 수 있었고 격투기를 사랑 하던 친구의 주먹은 글로브 하나가 더 있는 듯이 굳은살이 두껍게 덮어져 있었다.
나도 육아를 하면서 표식이 생겼다. 왼쪽 뺨 아래에 생긴 왕 뽀드락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깟 여드름 하나 난 게 무슨 표식이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위치에는 청소년기 이후에 여드름이 나지 않는 스팟이었다. 어느 날 간지러워서 무심코 얼굴을 건드리다가 그 뽀드락지를 발견했다. ‘응? 여기에 왜 여드름이 났지?“ 라고 의아한 순간도 잠시, 나는 그 뽀드락지가 왜 났는지 10분도 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열매에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려고 내 어깨에 열매의 얼굴을 턱 걸치자 열매 뺨이 딱 뽀드락지가 난 스팟을 자극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매일 열매의 뺨은 내 왼쪽 뺨 아래를 자극했고 민감한 내 피부는 바로 반응해서 왕 뽀드락지가 생긴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했지만 와이프는 “여보는 원래 여드름 잘나잖아. 그냥 난 걸 거야.” 라고 일축했다. 처음에는 그런가 싶었지만 그 이후에 열매를 안아 어깨에 올릴 때마다 임시현 선수의 조준 실력 못지않게 열매의 뺨은 기막히게 내 콩알만 한 왕 뽀드락지를 조준 사격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은 여드름이 난 나에게 “여드름 나는 거 보니 누가 너 좋아하나 보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다. 그때도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정말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사춘기 소년 얼굴에 난 못난 여드름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이 여린 사춘기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배려이지 않았을까.
저녁에 세수하고 열매가 나에게 선물한 잘 익은 왕 뽀드락지에 연고를 바르면서 무심코 생각 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이 어릴 적 나의 여드름을 보고 해준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매일 열매가 분유를 먹고 내 어깨 위에서 트림을 하고 잠드는 행동, 그 자체가 일종의 ‘사랑’이다. 그 과정에서 열매의 뺨은 내 뺨 아래를 달구었고 바로 그 ‘사랑’의 결과물이 빨갛게 익은 여드름으로 나타났다면 “여드름 나는 거 보니 누가 너 좋아하나 보다.”는 꽤나 맞는 말이다. 열매는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드름과 사랑의 관계를 호르몬 변화라는 과학적 설명 보다는 지금 내가 생각한 방식이 조금 더 따뜻하지 않는가. 어쨌든 열매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참일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게 이 글의 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