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향수는 한동안 이름 없이 번호로 팔렸다.
90번.
1921년에 만들어졌는데 다른 회사가 같은 이름을 먼저 주장하는 바람에 이름을 쓸 수 없었다. 분쟁이 정리될 때까지 병에는 숫자만 붙었다. 샬리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925년 파리 장식미술 박람회에서였다. 태어난 날과 이름을 받은 날 사이에 4년의 공백이 있는 셈이다.
이 연재 17호에서 르라보가 향수를 재료 이름과 숫자로 부르는 방식을 두고 서지 기술 같다고 썼다. 샬리마는 그 반대다. 원해서 숫자를 단 게 아니라 이름을 빼앗겨서 숫자로 버텼다.
토요일 오후 백화점 1층은 소리가 겹겹이다. 바닥을 두드리는 구두 굽 소리와 에스컬레이터가 낮게 웅웅대는 소리 사이로 안내 방송 차임이 끼어든다. 냄새도 겹겹이다. 매장마다 뿌려 둔 향이 통로에서 섞여서 어느 것도 온전히 맡을 수 없다.
탱고는 매장 앞에 엎드려 대리석에 배를 붙였다. 돌바닥이 서늘한 모양이었다. 보보가 내 손에 시향지를 쥐여 주었다. 직원은 이 향수가 작년에 100살이 됐다고 했다.
"정확히는 105살입니다. 이름을 받은 날부터 세면 101살이고요."
지난 호에서 뮈글러가 엔젤을 만들며 떠올린 어머니의 바닐라가 바로 이 향수였다고 썼다. 오늘은 그 어머니를 만나러 온 셈이다.
샬리마의 탄생 일화는 짧다. 조향사 자크 겔랑이 화학자 친구에게서 에틸 바닐린이라는 합성 분자를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에 부었다. 지키는 1889년에 그의 삼촌 에메 겔랑이 만든 향수다. 이미 30년 넘게 팔리던 향수에 새 분자 하나를 더했더니 다른 향수가 됐다.
일화의 세부는 출처마다 다르다. 어느 기록은 에틸 바닐린 한 병을 통째로 부었다고 하고 브랜드 쪽 기록은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양이 다르면 이야기의 성격도 달라진다. 한 병이면 충동이고 몇 방울이면 실험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이제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브랜드가 고른 판본이 더 신중한 쪽이라는 점은 적어 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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