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글러 엔젤

by김경훈

공원 산바카라로 한쪽에서 설탕 타는 냄새가 났다.


아무도 솜사탕을 팔지 않는 자리였다. 근처에 빵집도 없었다. 그런데 바람이 낮게 깔릴 때마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설탕 같은 냄새가 발치에서 올라왔다.


탱고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낙엽 더미에 코를 박고 한참을 떼지 않았다. 발로 그 더미를 헤집어 보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가벼웠다. 잎이 얇고 바싹 말라 있었다. 손에 쥐고 비비자 냄새가 더 진해졌다.


계수나무였다.


지난 호 끝에 이 나무 이야기를 해 두었다. 10월에 잎이 물들기 시작하면 떨어진 잎에서 솜사탕 냄새가 난다고. 그 냄새의 정체는 말톨이라는 분자다. 잎 속의 복잡한 당이 분해되면서 공기 중으로 풀려나온다. 이름은 엿기름을 뜻하는 영어 몰트에서 왔다. 볶은 엿기름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이 나무를 케이크나무라고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캐러멜나무라고 부른다. 나라마다 다른 과자를 떠올렸을 뿐 다들 같은 것을 맡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나무가 왜 이런 냄새를 내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꽃이 향을 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 호와 그 전 호에서 썼듯이 벌과 나방을 부르기 위해서다. 그런데 계수나무의 단내는 꽃이 아니라 죽어 가는 잎에서 나온다. 부를 상대가 없다. 진화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가뭄이 들어 나무가 지쳐 있을 때 냄새가 더 강해지고 바람이 없는 날에 더 오래 머문다는 관찰만 있다.


수신자가 없는 신호다.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받아 든다.


오늘의 면담 상대는 그 냄새를 공장에서 6배로 키워 병에 담은 향수다.


1992년에 나온 뮈글러 엔젤. 조향은 올리비에 크레스프와 이브 드 시리스가 맡았다.


이 향수의 핵심은 에틸 말톨이다. 계수나무 잎이 내는 말톨에 탄소 하나를 덧붙인 합성 분자인데 같은 단맛을 대략 6배 세게 낸다. 원래는 사탕과 과자와 빵에 넣는 식품 공업용 향료였다. 향수 업계는 이것을 쓰지 않았다. 먹는 냄새는 바르는 냄새가 될 수 없다는 암묵적인 선이 있었다.


엔젤은 그 선을 넘었다. 그것도 조금이 아니라 그때까지 어떤 향수도 쓰지 않은 양으로.


"저는 원래 부엌에 있던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도 그걸 향수병에 넣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티에리 뮈글러가 크레스프에게 건넨 주문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고 전해진다. 장터 놀이공원에서 맡던 솜사탕. 생일마다 할머니가 구워 주던 케이크. 바닐라 향에 감싸여 있던 어머니. 그가 원한 것은 향수가 아니라 감정을 병에 담는 일이었다.


이 향수는 뮈글러와 화장품 회사 클라랑스가 손잡고 낸 첫 향수였는데 처음 이 향을 맡은 클라랑스 임원들이 비명을 질렀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과자 냄새가 나는 향수를 누가 사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크레스프 쪽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뮈글러가 찾아오기 전부터 이 공식을 오래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주문이 먼저가 아니라 재료가 먼저였다. 이 연재 22호에서 잉글리시 오크 컬렉션이 3년 묵힌 어코드에서 출발했다고 썼는데 같은 순서다. 쓸 데가 정해지지 않은 채 서랍에 있던 것이 맞는 주인을 만나 세상에 나온다.


첫 향은 노골적으로 달다. 솜사탕과 캐러멜이 정면으로 온다. 그 위로 베르가못과 멜론과 파인애플 같은 과일이 터지는데 단맛을 덜어 주지 못한다. 오히려 단맛에 단맛을 얹는다. 어느 평자는 이 오프닝을 두고 솜사탕 기계가 최고 속도로 돌아가는 소리 같다고 썼다. 냄새를 소리로 표현한 셈인데 정확하다. 실제로 이 향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다.


그런데 그 단맛 아래에 다른 것이 있다.


패츌리다.


이 연재 5호에서 이름에 패츌리를 단 향수가 정작 패츌리 향수가 아니었다고 썼다. 르라보 패츌리 24는 자작나무 타르가 주인공이었다. 엔젤은 정반대다. 이름 어디에도 패츌리가 없는데 패츌리가 넘친다. 흙과 젖은 나무뿌리 같은 그 묵직한 냄새가 솜사탕 아래를 받치고 있다.


"단맛만 있었다면 저는 사탕이었을 겁니다. 흙이 있어서 향수가 됐어요."


이 대비가 엔젤의 전부다. 놀이공원의 설탕과 숲 바닥의 흙. 아이의 기억과 어른의 피부. 둘이 부딪히면서 어느 쪽도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냄새가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 바닐라와 통카빈이 그 사이를 메우고 패츌리가 점점 앞으로 나온다. 몇 시간 뒤 손목에 남는 것은 과자가 아니라 따뜻한 흙이다.


사실 우리는 말톨을 매일 먹는다. 갓 구운 빵 껍질에도 있고 볶은 커피에도 있고 솔잎에도 있다. 너무 흔해서 이름을 붙여 부를 일이 없었을 뿐이다. 엔젤이 한 일은 새 냄새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던 냄새에 처음으로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조연이던 분자를 주인공 자리에 세웠다.


엔젤 이전에는 구어망드라는 말이 향수 분류에 없었다. 음식처럼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가진 향수를 묶는 이름이다. 지금은 향조노트에도 당당히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 칸을 연 것이 이 한 병이다.


여기서 분류를 다루는 사람의 습관이 고개를 든다. 분류표에 새 항목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문헌적 보증이라는 원리가 있다. 어떤 주제를 다룬 자료가 충분히 쌓였을 때 비로소 그 주제에 자리를 내준다는 원칙이다. 바카라 한 권 때문에 분류표를 고치지는 않는다.


엔젤도 처음에는 한 권짜리 예외였다. 어느 서가에도 꽂히지 않는 바카라. 오리엔탈이라고 하기엔 너무 달고 플로럴이라고 하기엔 꽃이 없었다. 그런데 출시 이후 이 향수를 닮은 병들이 끝없이 쏟아졌다. 초콜릿과 프랄린과 캐러멜과 커피를 단 향수들이 서가를 채웠다. 그 뒤따른 병들이 근거가 되어 구어망드라는 항목이 생겼다.


항목을 만든 것은 첫 병이 아니라 그 뒤를 따른 수많은 병이다. 다만 첫 병이 없었다면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병 이야기도 덧붙여야겠다. 엔젤의 병은 별 모양이다. 손에 쥐면 모서리 다섯 개가 손바닥 여기저기를 누른다. 둥근 병처럼 손에 감기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쥐어도 어딘가 걸린다. 향과 같은 성격이다. 편안하게 안기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이 향을 맡은 사람들은 대개 둘 중 하나로 갈린다. 좋아하거나 견디지 못하거나.


공원에서 돌아와 손목에 엔젤을 뿌렸다. 아까 낙엽에서 맡은 냄새와 같은 집안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만 크기가 달랐다. 계수나무는 바람이 멎은 자리에서 낮게 깔리듯 왔고 엔젤은 방 전체를 단번에 채웠다. 자연이 속삭인 것을 공장이 확성기로 옮긴 셈이다.


보보가 부엌에서 나오다 멈췄다. 뭘 굽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굽지 않았다고 하자 잠시 코를 킁킁거리더니 이건 과자가 아니라 과자 가게 뒷골목 냄새라고 했다. 설탕만 있는 게 아니라 쓰레기통 옆 젖은 흙 같은 것도 섞여 있다고.


정확한 독해였다. 패츌리를 그렇게 읽은 것이다.


탱고는 내 손목에 코를 한 번 대고 짧게 콧김을 뿜더니 고개를 돌렸다. 낙엽 더미에는 한참을 코를 박던 녀석이 이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진짜 계수나무와 공장에서 키운 사촌을 녀석은 구분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너무 커서 싫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보다 코가 몇 배는 예민한 녀석에게 엔젤은 확성기 정도가 아니라 귓가에서 울리는 징이었을 것이다.


엔젤은 아무에게나 권할 수 있는 향수가 아니다. 확산이 크고 오래 남는다. 좁은 공간에서는 주변 사람에게 부담이 된다. 다만 이 향수가 향수의 지도를 바꿨다는 사실은 좋든 싫든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매장에 놓인 달콤한 향수 대부분이 이 한 병에 빚을 지고 있다.


계수나무는 왜 단내를 내는지 모른 채 해마다 잎을 떨군다. 엔젤은 그 이유를 묻지 않고 냄새만 받아 적었다. 수신자 없는 신호를 30년 넘게 대량으로 복제해 온 셈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받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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