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종이 · 갱내 작업일지 뒷면 넉 장
필기구 · 몽당연필
작성 · 1989년 11월 막장 붕락 매몰 중
수신인 · 아들
발견 · 2026년 폐광 갱도 안전점검 중
상태 · 원본 보존
동훈아.
아버지다.
이걸 네가 읽을 때쯤이면 너는 몇 살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너는 아홉 살이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 점 맞았다고 그저께 저녁에 자랑했지.
아버지가 그때 대충 대답했던 거 미안하다. 피곤해서 그랬다.
잘했다. 아주 잘했다.
이 말부터 써둔다.
여기는 지하 600미터쯤이다.
사흘 전에 막장 천장이 내려앉았다. 우리 넷이 안쪽에 갇혔다. 박 반장하고 이 씨하고 막내 정 씨하고 아버지.
다친 사람은 없었다. 운이 좋았다. 무너진 데가 우리 바로 앞이었다.
바깥에서 파고 들어오는 소리가 처음 이틀은 들렸다. 쿵 쿵 하고 멀리서.
어제부터 안 들린다.
안전등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 넷이 돌아가며 하나씩 켠다. 지금은 아버지 차례다. 그래서 이걸 쓴다.
종이는 작업일지 뒷면이다. 연필은 반장님이 줬다.
글씨가 엉망이어도 이해해라.
엄마는 지금 갱 입구에 있을 거다.
사고 나면 가족들이 다 거기 모인다. 아버지도 여러 번 봤다. 남의 집 가족들이 거기서 밤을 새우는 거.
천막을 치고 담요를 덮고 라면을 끓여 먹는다. 회사에서 주는 거다.
엄마는 라면을 안 먹을 거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너는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 거기서 기다리지 말고.
기다리는 건 엄마 일이고 너는 받아쓰기 해라.
그 받아쓰기 공바카라 아버지가 봤다. 엄마가 냉장고에 붙여놨더라.
맨 마지막 문제가 숨이었다.
숨 쉬다 할 때 숨.
너는 받침을 빼먹지 않고 썼다.
아버지는 그 글자가 지금 자꾸 생각난다.
여기서는 숨이 귀하다.
한 번 쉴 때마다 아껴 쉰다.
네가 받침 빼먹지 않고 쓴 그 숨을 아버지가 지금 아껴 쓰고 있다.
그러니까 그 백 점은 아버지 덕도 좀 있는 거다.
이건 농담이다. 웃어라.
새 얘기를 해야겠다.
너도 아는 그 새. 우리 집 노란 새.
아버지가 매일 아침 새장을 들고 출근하는 거 너는 신기해했지. 친구들한테 우리 아빠는 새를 데리고 일하러 간다고 자랑했다고 엄마가 그러더라.
그 새는 카나리아라는 새다.
탄광에서 쓰는 새다.
갱 안에는 눈에 안 보이는 독한 공기가 생긴다. 탄에서 나오기도 하고 발파하고 나서 생기기도 한다. 냄새도 없고 색도 없다. 사람은 그게 차오르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냥 잠들듯이 쓰러진다.
카나리아는 그걸 사람보다 먼저 안다.
몸이 작아서 숨을 빨리 쉬니까 독한 공기가 사람보다 먼저 몸에 찬다.
그래서 먼저 쓰러진다.
새가 노래를 멈추면 나가야 한다.
새가 횃대에서 떨어지면 뛰어야 한다.
이게 규칙이다.
할아버지가 아버지한테 가르쳐준 규칙이고 아버지가 너한테 가르치는 규칙이다.
요즘은 기계가 있다. 가스 검지기라고 바늘이 움직이는 거. 회사에서 다 그걸 쓴다.
그래도 우리 집은 새를 데리고 들어간다. 할아버지 때부터 그랬다. 기계는 고장이 나도 새는 고장이 안 난다고 할아버지가 그랬다.
그 검지기는 지금 아버지 허리춤에 있다.
바늘이 빨간 칸 끝에 붙어 있다.
사흘째 그렇다.
기계는 고장 나지 않았다. 기계는 제대로 말하고 있다.
새가 다른 말을 할 뿐이다.
아버지는 25년 동안 기계보다 새를 믿었다.
지금은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는지 안다.
알면서도 새 쪽으로 귀가 간다.
반장님은 처음에 웃었다. 요즘 세상에 무슨 새냐고.
지금은 안 웃는다.
지금 우리 넷 중에 새장 옆에 제일 가까이 앉은 사람이 반장님이다.
너는 새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지.
아버지는 이름 없다고 했다. 너는 그게 불쌍하다고 울었다.
사실은 이름을 안 붙이는 거다. 할아버지 때부터 그랬다.
탄광 새한테는 이름을 안 붙인다. 붙이면 정이 든다. 정이 들면 새가 쓰러질 때 사람이 늦게 뛴다. 새를 먼저 챙기다가.
그래서 우리는 그냥 새라고 부른다.
너는 몰래 이름을 붙였더라. 엄마한테 들었다.
노랑이.
아버지도 사실 속으로는 노랑이라고 불렀다. 말은 안 했다.
매일 아침 갱 입구에서 새장을 열고 모이를 한 줌 넣어준다. 그게 출근 인사다. 노랑이는 모이를 쪼고 나서 꼭 한 번 짧게 운다.
그 소리를 들어야 아버지는 승강기를 탄다.
25년 동안 그 소리 없이 내려간 날이 없다.
그 소리가 좋았다.
지금은 그 소리가 무섭다.
그런데 동훈아.
이상한 걸 써야겠다.
새가 노래를 안 멈춘다.
갇히고 첫날은 조용했다. 새도 놀랐는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둘째 날부터 노래를 시작했다.
공기는 나빠지고 있다. 아버지는 그걸 안다. 25년 광부 하면 몸이 안다.
머리가 띵하다. 숨을 크게 쉬어도 가슴이 안 찬다. 안전등 불빛이 노래진다. 성냥을 켜보면 불꽃이 작고 금방 꺼진다.
그런데 새가 노래한다.
점점 크게 한다.
이 씨가 오늘 아침에 쓰러졌다.
잠든 것 같았다. 흔들어도 안 깬다. 숨은 쉰다. 아주 얕게.
이 씨가 쓰러질 때 새는 노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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