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노트]
장소 · 알프스 호숫가 마을 성당 납골당
직무 · 해골 화공
경력 · 44년
모신 해골 · 600 남짓
눈 · 6년 전부터 어두워짐
상태 · 작업 중
마을
우리 마을은 호수와 산 사이에 끼어 있다.
앞은 물이고 뒤는 바위다. 사람 살 땅도 모자라는데 죽은 사람 누울 땅은 더 모자란다.
그래서 성당 묘지는 빌려 쓰는 땅이다.
묻힌 지 12년이 지나면 무덤을 연다. 뼈를 꺼내고 그 자리에 다음 사람을 눕힌다.
꺼낸 뼈는 버리지 않는다.
깨끗이 씻어서 성당 뒤 작은 집에 모신다. 납골당이다.
다리뼈와 팔뼈는 장작처럼 가지런히 쌓는다. 해골은 선반에 올린다.
해골에는 그림을 그린다.
이름과 죽은 해를 쓰고 이마에 화관을 그린다. 남자는 담쟁이나 월계수 잎이고 여자는 장미다. 가운데 작은 십자가를 넣는다.
250년 넘게 그렇게 해왔다.
그 그림 그리는 사람이 나다.
해골 화공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한 명뿐이다. 내 스승이 그랬고 그 스승의 스승이 그랬다.
나는 44년 했다.
처음 붓을 잡은 게 스물일곱 살 겨울이다.
스승이 내 손을 보더니 이랬다.
손이 차구나. 이 일 하기 좋은 손이다.
뼈는 뜨거운 손을 싫어한다고 했다.
44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은 차다.
손
6년 전부터 눈이 어두워졌다.
처음엔 붓끝이 흐렸고 그다음엔 해골이 흐렸고 지금은 선반이 흐리다.
해가 좋은 날 창가에 서면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은 안다. 그게 전부다.
신부님이 이제 그만 쉬라고 했다.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해골에 그림 그리는 일을 안 한다. 빈에 가서 컴퓨터를 만진다.
그래서 손으로 그린다.
물감을 두껍게 올린다. 예전보다 세 배쯤 두껍게. 그러면 마른 뒤에 손끝에 걸린다.
글자가 볼록하게 남는다.
나는 그 볼록한 걸 손끝으로 읽는다.
담쟁이 잎 끝이 뾰족한지 둥근지도 손으로 안다. 장미 꽃잎이 몇 장인지도 안다.
색은 냄새로 고른다.
초록은 풀 냄새가 나는 흙에서 갠다. 붉은색은 쇠 냄새가 난다. 아마인유는 늘 같은 냄새다. 고소하고 조금 시큼하다.
44년 동안 그 냄새를 맡았다.
눈이 없어도 그림은 그린다.
처음 눈이 어두워졌을 때는 좀 겁이 났다.
이름을 틀리게 쓰면 어쩌나 싶었다.
해골에 쓴 이름은 못 고친다. 뼈에 스민 물감은 긁어도 자국이 남는다.
그래서 첫해에는 하나 그릴 때마다 안나한테 확인을 받았다.
안나가 해골을 들고 창가로 가서 한 글자씩 읽어줬다.
틀린 적이 없었다.
안나가 이랬다.
어르신은 눈 감고 그리는 게 더 반듯해요.
그 말이 위로였는지 놀림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둘 다였을 거다. 그 애는 그런 애다.
무덤지기
무덤을 여는 건 요제프다.
마을 무덤지기다. 나보다 스무 살 아래다. 그 아버지도 무덤지기였다.
요제프가 삽으로 흙을 걷어내는 소리를 나는 좋아한다. 사각사각 하다가 탁 하고 나무에 닿는다. 관 뚜껑이다.
요제프는 뼈를 꺼내서 호수 물에 씻는다.
그다음 납골당 북쪽 벽 바깥 선반에 해골을 올려둔다.
거기서 몇 주 동안 해와 달을 맞힌다.
해가 뼈를 데우고 달이 뼈를 식힌다. 그러면 뼈가 하얘진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하얀 걸 못 보지만 손으로 만지면 안다.
덜 마른 뼈는 축축하고 흙내가 난다.
다 마른 뼈는 가볍고 따뜻하다. 해 냄새가 난다.
해 냄새가 나야 붓을 댄다.
달 맞히는 밤에는 납골당 북쪽 벽이 조용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벽 쪽으로 안 다닌다. 개도 안 간다.
나는 간다. 덜 마른 해골은 밤에 뒤집어줘야 고르게 마른다.
해골을 뒤집을 때 안에서 소리가 날 때가 있다.
흙이 남아서 그렇다. 눈구멍이나 코 안쪽에 남은 흙이 굴러다니는 소리다.
사각사각.
요제프 삽 소리랑 닮았다.
나는 그 소리를 좋아한다. 아직 땅 냄새가 남은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다 마르면 그 소리가 안 난다.
그때부터는 내 손님이다.
요제프 딸 안나가 내 일을 돕는다.
열아홉이다. 가을에 빈으로 공부하러 간다.
안나가 장부를 읽어준다. 누구 무덤인지 몇 년에 묻혔는지 가족이 무슨 꽃을 원했는지.
나는 듣고 그린다.
안나 목소리는 맑다. 호수에 돌 던질 때 소리 같다.
선반
나는 납골당 해골을 손으로 다 안다.
600개가 조금 넘는다.
겨울마다 한 번씩 센다. 선반을 따라 걸으면서 해골 하나하나 이마를 쓰다듬는다.
글자가 볼록하게 만져진다. 오래된 건 물감이 닳아서 거의 평평하다. 내가 그린 건 아직 또렷하다.
나는 손끝으로 이름을 읽으며 지나간다.
그 사람들 대부분을 나는 살아 있을 때 알았다.
빵집 할머니는 장미 다섯 송이다. 학교 선생님은 월계수다. 내 스승은 담쟁이 넝쿨을 이마 한 바퀴 둘렀다. 내가 그렸다.
그러니까 이 일은 셈이 아니라 인사다.
겨울마다 600명한테 인사하는 일이다.
여름에는 관광객이 온다.
버스를 타고 와서 납골당 앞에 줄을 선다. 입장료는 1유로 50센트다. 성당 지붕 고치는 데 쓴다.
관광객들은 해골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셔터 소리가 작은 방 안에서 딱딱 울린다.
어떤 사람은 무섭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예쁘다고 한다.
나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어린아이가 내 옆에 와서 물었다.
할아버지 이 사람들 안 무서워요.
나는 안 무섭다고 했다.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