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메모]
소속 · 사설 교통사고 감정 연구소
직무 · 사고기록장치 데이터 분석
경력 · 12년
의뢰 유형 · 급발진 주장 사고
건수 · 이번 분기 7건
상태 · 감정 보류
5초
차에는 블랙박스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아는 거다. 앞유리에 붙어서 영상을 찍는 카메라.
하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다. 에어백 제어기 안에 들어 있는 사고기록장치다.
사고기록장치는 영상을 안 찍는다. 숫자만 남긴다.
충돌 직전 5초.
속도. 엔진 회전수. 가속페달을 얼마나 밟았는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안 밟았는지. 핸들을 얼마나 돌렸는지.
0.5초 간격으로 열 줄이 남는다.
내 일은 그 열 줄을 읽는 거다.
급발진 사고가 나면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혼자 튀어나갔다고 한다.
제조사는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밟았다고 한다.
그 사이에서 숫자를 읽고 감정서를 쓴다.
12년 했다.
이 일을 하면 사람 얼굴을 안 보게 된다.
운전자가 울면서 연구소에 찾아와도 나는 화면을 본다.
울음은 데이터가 아니니까.
선배가 처음에 그렇게 가르쳤다. 얼굴을 보면 판단이 흐려진다고.
맞는 말이다. 12년 동안 그 말 덕분에 흔들리지 않았다.
내 경험으로는 대부분 숫자가 한쪽 손을 들어준다.
가끔 숫자가 아무 쪽도 안 들어줄 때가 있다.
이번 분기가 그랬다.
첫 번째
석 달 전에 첫 번째 의뢰가 들어왔다.
중형 세단이다. 운전자는 예순한 살 남성.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출구로 나가다가 차단기를 뚫고 도로 건너편 상가 벽에 박았다.
운전자는 크게 다쳤지만 살았다.
본인 진술은 이랬다. 출구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갑자기 울었다고. 엔진이 비명을 질렀다고.
사고기록장치를 뽑았다.
열 줄을 읽었다.
마지막 5초 동안 가속페달 변위는 100퍼센트였다. 끝까지 밟혀 있었다.
브레이크는 온이었다.
같이 찍혀 있었다.
이건 드물지만 없는 일은 아니다. 양발로 둘 다 밟았거나 센서 오류이거나 하다.
나는 그렇게 적으려고 했다.
그러다 열 줄 중에 맨 마지막 줄을 봤다.
충돌 0.5초 전.
조수석 탑승자 감지 온.
운전자는 혼자 타고 있었다.
두 번째
한 달 뒤에 두 번째가 들어왔다.
경차다. 운전자는 서른넷 여성. 마트 주차장에서 후진하다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가서 마트 유리문을 들이받았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운이 좋았다.
다른 제조사다. 다른 연식이다. 다른 지역이다.
열 줄을 뽑았다.
나는 그 열 줄을 첫 번째 사고 열 줄 옆에 놓고 봤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손이 그렇게 했다.
같았다.
속도 변화가 같았다. 0.5초마다 오르는 폭이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같았다.
엔진 회전수 곡선이 같았다.
가속페달 100퍼센트. 브레이크 온.
핸들 각도까지 같았다.
경차와 중형 세단은 엔진이 다르다. 무게가 다르다. 같은 가속페달을 밟아도 같은 속도가 나올 수가 없다.
같았다.
마지막 줄.
조수석 탑승자 감지 온.
운전자는 혼자였다.
세 번째부터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가 이어서 들어왔다.
화물 트럭. 소형 SUV. 수입 세단.
전부 다른 차다. 전부 혼자 타고 있었다.
전부 열 줄이 같았다.
나는 이걸 연구소장한테 보고했다.
소장은 25년 했다. 우리 업계에서 이름 있는 사람이다.
소장이 열 줄 다섯 개를 나란히 놓고 한참 봤다.
그러고 이랬다.
이거 누가 복사해 붙인 거 아니야.
사고기록장치 데이터는 복사가 안 된다. 암호화돼 있고 추출 장비로만 뽑는다. 추출 기록도 남는다.
소장도 그걸 안다.
소장이 이랬다.
그럼 장비가 고장 난 거네.
장비를 교정했다. 제조사에 보내서 점검받았다.
이상 없다고 왔다.
다시 뽑았다.
같았다.
소장이 그날 이후로 이 건들은 나한테만 맡겼다.
본인은 안 보겠다고 했다.
제조사
다섯 건 중 세 건은 제조사 기술팀이 참관했다.
급발진 감정에는 제조사 사람이 온다. 자기네 차를 변호하러 온다.
보통은 분위기가 험하다. 운전자 쪽 변호사하고 제조사 쪽 기술자가 내 바카라상 앞에서 싸운다. 나는 가운데서 숫자만 읽는다.
이번에는 조용했다.
세 제조사 기술자가 각자 다른 날 왔는데 반응이 같았다.
열 줄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했다.
한 사람은 자기 회사 차 데이터를 보고 한참 있다가 이랬다.
이거 저희 차 맞아요.
맞다고 했다.
그 사람이 다른 회사 차 데이터를 옆에 놓아달라고 했다.
놓아줬다.
그 사람이 두 장을 번갈아 보더니 이랬다.
엔진이 다른데 회전수가 같네요.
그러고 이렇게 물었다.
이런 거 감정서에 쓰세요.
나는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이랬다.
안 쓰시는 게 좋을 거예요.
협박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희 회사에도 이런 거 있어요. 쓴 사람이 있었어요.
그분은요.
그 사람이 서류를 챙기면서 이랬다.
퇴근길에 사고 나셨어요. 자기 차로.
사고기록장치는 뽑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이랬다.
선생님이 뽑으실 거 같았는데요.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으려 했는데 그 사람은 이미 문을 나가고 있었다.
소리
두 번째 사고 운전자가 연구소에 찾아왔다.
감정 결과가 언제 나오냐고 물으러 왔다.
나는 아직이라고 했다.
운전자가 가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이랬다.
그 차가 뭐라고 했어요.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다.
운전자가 이랬다.
튀어나가기 직전에 차가 말을 했어요.
내비게이션 음성이었냐고 물었다.
운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랬다고 했다.
나는 그분이 그날 어디 가는 길이었냐고 물었다.
운전자가 이랬다.
목적지 안 찍었어요. 집 앞 마트 가는데 무슨 내비를 찍어요.
병실
그 말을 듣고 첫 번째 운전자를 찾아갔다.
예순한 살 남성. 아직 입원해 있었다.
다리에 철심을 박았다고 했다. 말은 잘 하셨다.
내비 얘기를 물었다.
그분이 이랬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했지.
들으셨어요.
들었지. 출구 앞에서. 그러고 차가 울었어.
그러고 그분이 한 가지를 더 말했다.
옆자리에서 냄새가 났어.
무슨 냄새요.
그분이 잠깐 생각하더니 이랬다.
엔진오일 탄 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
사람 냄새가 뭐냐고 물었다.
그분이 이랬다.
오래 안 씻은 사람이 차에 오래 앉아 있으면 나는 냄새 있잖아. 그거.
나는 그 냄새를 안다.
사고 차를 감정할 때 가끔 난다. 차 안에서 오래 갇혀 있다 발견된 경우.
그분이 마지막에 이랬다.
선생님 그 연구소 어디 있어요.
나는 대답 안 했다.
그분이 이랬다.
그 소리가 거기 가자고 했어. 출구 앞에서. 거기 가자고.
내비 기록
다섯 대 다 내비 기록을 뽑았다.
요즘 차는 내비 기록도 남는다. 언제 어디를 목적지로 찍었는지 다 있다.
다섯 대 다 사고 당일에 목적지를 안 찍었다.
운전자들 진술과 같았다.
그런데 사고 3초 전에 목적지가 하나 자동으로 설정돼 있었다.
입력 기록은 없었다. 터치도 없고 음성 명령도 없었다.
목적지만 있었다.
다섯 대가 같은 주소였다.
주소를 지도에 넣었다.
우리 연구소였다.
이 건물 3층이다. 내 바카라상이 있는 층이다.
거리
다섯 사고 지점을 지도에 찍어봤다.
전부 우리 연구소에서 멀다. 제일 가까운 데가 40킬로미터고 제일 먼 데가 200킬로미터다.
그런데 다섯 대가 튀어나간 방향이 전부 연구소 쪽이었다.
나침반 방향으로.
아파트 출구에서 튀어나간 첫 번째 차는 정면 상가 벽에 박았다. 그 벽 너머 일직선이 연구소다.
마트 유리문을 들이받은 두 번째 차도 그렇다.
트럭도 SUV도 수입 세단도 그렇다.
다들 연구소를 향해 출발해서 몇십 미터 만에 멈췄다.
벽이나 기둥이나 유리에 막혀서.
막히지 않았으면 어디까지 갔을지 계산해봤다.
그만뒀다.
건물
우리 연구소 건물은 지은 지 11년 됐다.
그 전에 이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찾아봤다.
토지대장을 뗐다.
폐차장이었다.
20년 넘게 폐차장이었다고 한다.
사고 차들이 마지막에 오는 곳이다.
나는 이 사실을 12년 동안 몰랐다.
알았어도 별 생각 안 했을 거다. 우리 업계는 사고 차를 매일 본다. 폐차장 자리에 감정 연구소가 있다는 건 좀 웃긴 우연 정도다.
지금은 안 웃기다.
연구소 지하 창고에 우리가 보관하는 사고기록장치가 있다. 감정 끝나도 몇 년은 보관한다.
한 400개쯤 된다.
어제 창고에 내려가봤다.
선반에 줄지어 있는 회색 상자들이다. 각각 사고 차 한 대에서 뽑은 거다.
전원이 안 들어가 있다. 그냥 부품이다.
창고 불을 켰다.
상자들에서 소리가 났다.
아주 작게.
딸깍 딸깍 딸깍.
릴레이 스위치 소리다. 전기가 들어올 때 나는 소리.
전원이 없는데 났다.
400개가 동시에 났다.
나는 불을 끄고 올라왔다.
여섯 번째
지난주에 여섯 번째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의뢰가 아니라 직접 왔다.
연구소 주차장 진입로에서 사고가 났다.
경비실 앞 차단기를 뚫고 들어와서 1층 로비 기둥에 박았다.
새벽 3시였다.
운전자가 없었다.
차 안에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왔다. 차주를 조회했다.
차주는 서울 사는 사람이었다. 차는 그날 밤 자기 집 주차장에 있었다고 했다. 아침에 나가보니 없어서 도난 신고를 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260킬로미터다.
아무도 안 타고 왔다.
사고기록장치를 뽑았다. 내가 뽑았다.
열 줄.
같았다.
가속페달 100퍼센트. 브레이크 온.
운전석 탑승자 감지 오프.
조수석 탑승자 감지 온.
경비원
새벽 3시에 경비실에 있던 사람한테 물었다.
60대 경비원이다. 우리 건물 7년 근무했다.
차가 들어올 때 뭐 봤냐고 물었다.
경비원이 이랬다.
헤드라이트가 안 켜져 있었어요.
시동 소리는 들었냐고 물었다.
경비원이 이랬다.
시동 소리가 아니라 우는 소리였어요.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엔진이 우는데 꼭 사람 같았어요. 높고 길게.
그러고 경비원이 한 가지 더 말했다.
차단기 뚫고 들어오기 전에 경비실 앞에서 잠깐 섰어요.
섰다고요.
네. 딱 섰어요. 창문이 내려갔어요. 조수석 쪽 창문이요.
그러고요.
경비원이 잠깐 말을 안 했다.
그러고 이랬다.
선생님 이름을 물었어요.
누가요.
경비원이 대답을 안 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조수석에 누가 있었어요.
경비원이 이랬다.
아무도 없었어요. 창문만 내려가 있었어요.
근데 목소리는 거기서 났어요.
감정서
나는 여섯 건 감정서를 아직 못 썼다.
결론을 못 내서 못 썼다.
가속페달을 밟은 건 운전자인가.
브레이크를 밟은 건 운전자인가.
둘 다 밟혔다면 누가 둘 중 하나를 밟았나.
조수석에서 감지된 건 무게다. 사람 하나 앉은 무게다.
그 무게가 연구소로 오고 싶어 했다.
나는 이 문장을 감정서에 쓸 수 없다.
그래서 감정 보류로 처리했다.
12년 동안 처음이다.
서명
경비원 말이 계속 걸렸다.
선생님 이름을 물었어요.
내 이름을 왜.
밤에 남아서 지난 12년 감정서를 꺼냈다.
내가 서명한 감정서들이다. 급발진 주장 사고만 따로 모으니 일흔 건 조금 넘었다.
결론을 봤다.
대부분 페달 오조작 추정.
숫자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렇게 썼다.
나는 숫자를 믿는다. 지금도 믿는다.
그런데 일흔 건을 한 줄로 늘어놓고 보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결론이 다 같은 문장이다.
가속페달 변위 기록상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추정됨.
12년 동안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썼다.
양식이니까 그렇게 썼다.
그 문장 끝에 내 이름이 있다.
일흔 번.
창고에 있는 400개 상자 중에 일흔 개는 내가 그 문장을 쓴 차에서 나온 거다.
그 일흔 대 운전자 중에 몇 명은 지금 없다.
사고로 갔거나 재판 끝나고 갔거나.
나는 그 사람들 얼굴을 모른다. 숫자만 봤으니까.
그 사람들은 내 이름을 안다.
감정서 끝에 있으니까.
내 차
오늘 아침 출근하려고 차에 탔다.
나는 9년 된 소형 세단을 탄다.
시동을 걸었다.
내비 화면이 켜졌다.
목적지가 이미 찍혀 있었다.
우리 연구소.
나는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한다. 내비를 안 켠다. 9년 동안 한 번도 연구소를 목적지로 찍은 적이 없다.
입력 기록을 봤다.
없었다.
목적지만 있었다.
나는 시동을 껐다.
다시 켰다.
목적지가 그대로 있었다.
조수석을 봤다.
비어 있었다.
계기판에 경고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조수석 안전벨트 미착용.
벨트 경고는 조수석에 무게가 감지돼야 뜬다.
가방도 안 올려놨다.
나는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걸어서 출근했다. 40분 걸렸다.
지금
지금 연구소 3층 내 바카라상에 앉아 있다.
오후 6시다. 퇴근 시간이다.
차는 집 주차장에 두고 왔다.
아까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차 들어왔어요.
나는 차를 안 갖고 왔다고 했다.
경비원이 이랬다.
선생님 차 번호 맞는데요. 지금 진입로에 서 있어요.
운전자는요.
경비원이 대답을 안 했다.
나는 창밖을 봤다.
3층 창문에서 진입로가 보인다.
내 차가 서 있다.
헤드라이트가 꺼져 있다.
엔진 소리가 3층까지 들린다.
높고 길게.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 있다.
내 휴대폰에 알림이 하나 왔다.
차량 연동 앱이다. 원격 시동 걸고 끄는 앱.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탑승해주세요.
나는 아직 앉아 있다.
바카라상 위에 여섯 건 감정서 초안이 있다.
결론 칸이 비어 있다.
12년 동안 쓰던 그 문장을 쓰면 여섯 건이 다 끝난다.
가속페달 변위 기록상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추정됨.
숫자는 그렇게 말한다. 가속페달 100퍼센트니까.
쓰고 서명하면 된다.
볼펜을 들었다.
진입로에서 엔진 소리가 한 단계 높아졌다.
볼펜을 내려놨다.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다시 들었다.
다시 높아졌다.
나는 볼펜을 내려놓고 손을 무릎에 올렸다.
내가 그 문장을 쓰면 저 차가 뭘 할지 안다.
안 쓰면 뭘 할지는 모른다.
사고기록장치는 충돌 전 5초만 남긴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5초 전에 있다.
진입로 쪽에서 소리가 바뀌었다.
엔진 소리가 아니다.
조수석 창문 쪽에서 나는 소리다.
사람이 부르는 소리다.
목소리가 하나가 아니다.
여러 명이 같은 박자로 부른다. 일흔 명쯤.
내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