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변기(移精變氣)

22부

by김경훈

내가 듣기로 옛날에 병을 다스릴 때는 정(精)을 옮기고 기(氣)를 바꾸었을 뿐이라 하였다. — 《황제내경》 소문 이정변기론


여는 소리


11월 셋째 주 토요일 저녁 6시였다.


동성로 골목 안쪽 명음사 문에 종이가 한 장 붙었다. 최기태가 손으로 쓴 종이였다. 오늘 7시 감상회. 판 한 장씩 들고 오세요. 한 사람 한 면.


최기태가 그 종이를 붙이면서 테이프를 두 번 감았다. 바람이 찼다. 11월 대구 바람은 건조하고 날카로웠다. 종이 모서리가 문틀에 부딪혀 탁탁 소리를 냈다.


감상회를 하자고 한 건 최기태였다.


31년 동안 한 번도 안 해본 일이었다. 1년 전 심의당에서 그 뚱뚱한 원장이 손님한테 레코드 얘기 말고 요즘 어떠냐고 물어보라고 한 뒤로 최기태는 그걸 1년 넘게 했다. 요즘 어때요. 그 말을 하니까 손님들이 조금씩 오래 앉아 있다 갔다. 그러다 보니 단골들끼리 서로 이름을 알게 됐다. 이름을 알게 되니까 같이 듣자는 얘기가 나왔다.


가게 안은 난로 하나로 데웠다. 석유난로였다. 심지가 타는 냄새가 오래된 종이 냄새에 섞였다. 비닐 재킷 냄새와 먼지 냄새와 석유 냄새가 같이 났다. 최기태는 그 냄새가 좋았다.


접이식 의자를 7개 폈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가게를 울렸다. 레코드가 벽을 다 채우고 있어서 소리가 멀리 안 가고 금방 먹혔다. 최기태는 그것도 좋았다. 이 가게에서는 소리가 튀지 않았다.


6시 40분에 계단 쪽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났다.


문 위의 종이 딸랑 울렸다.


"일찍 오셨네예."


김원효였다. 숨이 조금 찼다. 손에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봉투에서 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단 냄새였다. 밀가루 찐 냄새와 팥 냄새였다.


"원장님이 더 일찍 오셨는데요."


"찐빵 식을까 봐예."


"몇 개 사셨어요?"


"20개입니더."


"7명인데요."


"압니더."


최기태가 웃었다. 소리를 내서 웃었다. 1년 전에는 웃을 때도 기침이 섞였는데 요즘은 안 섞였다.


"차는요?"


"큰길에 댔습니더. 요새는 골목에 안 댑니더."


"왜요?"


"한 분한테 혼났습니더."


김원효가 의자 하나에 앉았다. 접이식 의자가 삐걱 하고 크게 울었다. 최기태가 그 소리를 듣고 잠깐 의자 쪽을 걱정했다. 의자는 버텼다.


"원장님."


"예."


"그거 가져오셨어요?"


김원효가 코트 안쪽에서 뭔가를 꺼냈다. 얇고 넓은 것이었다. 비닐이 손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아직 포장 비닐이 안 뜯겨 있었다. 뜯은 재킷은 그런 소리가 안 났다.


"1년 됐는데 아직 안 뜯으셨네요."


"플레이어가 없어서예."


"그건 사실 때부터 없으셨잖아요."


김원효가 대답하지 않았다.


최기태가 그 판을 받아 들었다. 손끝으로 재킷 모서리를 쓸었다. 1년 전 바로 이 카운터에서 팔았던 판이었다. 무슨 판인지 최기태는 알았다. 김원효가 그날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그 칸으로 가서 그것만 꺼냈다. 고르는 사람 손이 아니었다. 찾는 사람 손이었다.


"오늘 이거 트실 거예요?"


"제 차례 되면 다른 사람 거 트이소."


"한 사람 한 면인데요."


"저는 빼주이소."


최기태가 판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비닐 재킷이 나무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럼 일단 여기 둘게요."


첫 번째 판 — 김광석


7시 5분 전에 다들 왔다.


제일 먼저 온 건 이진수였다. 계단을 2칸씩 올라오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마자 큰 목소리가 들어왔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원장님 계시네요."


"오셨습니꺼."


"저 이거 들고 왔습니다."


이진수가 판을 흔들었다. 재킷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팀원들이 골라줬습니다. 제가 뭘 들고 가야 되냐고 단톡방에 물어봤더니 다들 이거 들고 가라고 하더라고요."


"뭔데요."


"김광석이요. 팀장님은 이거 들으면서 좀 우셔야 된다고요."


최기태가 웃었다. 김원효도 웃었다.


"단톡방에 물어보셨어예."


"네. 요새 단톡방이 좀 시끄럽습니다. 제가 뭐 물어보면 답이 금방 와요. 예전에는 읽씹이었는데요."


이진수가 의자에 앉았다. 앉으면서 김원효 쪽을 한 번 쳤다. 어깨였다.


"원장님 저 요새 두통 없습니다."


"잘됐네예."


"혈압도 내려갔고요. 내과 선생님이 뭐 했냐고 묻더라고요. 삼겹살 먹었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박순남이었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왔다. 그 뒤로 가벼운 발소리가 따라 올라왔다. 하이힐이 아닌 운동화였는데 빨랐다. 계단 중간에서 그 발소리가 한 번 멈췄다. 폰 진동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지잉. 다시 올라왔다.


"사장님 우리 딸이에요. 서울에서 어제 내려왔어요."


"안녕하세요. 오유진이에요."


목소리가 빨랐다. 인사를 하면서 손에서 폰 진동이 또 울렸다. 지잉.


"죄송해요. 회사 단톡이 좀."


"토요일인데요?"


"저희 회사는 토요일이 없어요."


유진이 웃었다. 웃는 소리 끝이 조금 마른 소리였다.


박순남이 김원효 쪽으로 왔다.


"원장님 기억하시죠. 우리 딸 내려오면 봐달라고 했던 거요."


"기억합니더."


"오늘 데리고 왔어요. 한의원 가자니까 싫다 해서요. 음악 들으러 가자니까 따라오더라고요."


"잘하셨습니더."


유진이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엄지로 화면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났다. 톡톡톡. 빨랐다.


배윤경이 왔다. 계단 소리가 고르고 가벼웠다. 박자가 정확한 발소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가게 공기를 한 번 들이마셨다.


"여기 소리 좋네요."


"그래요?"


"레코드가 소리를 다 먹어요. 울림이 하나도 안 남아요. 연습실보다 낫네요."


마지막으로 박나리가 왔다. 문 위의 종이 조용히 울렸다. 박나리는 종을 조용하게 울리는 법을 알았다. 1년 동안 이 가게에 몇 번 와서 배웠다.


"늦었어요?"


"딱 맞아요."


7명이었다. 접이식 의자 7개가 다 찼다. 난로가 웅웅거렸다. 찐빵 봉투가 한 바퀴 돌았다.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뜨겁다고 손바닥에서 굴리는 소리가 났다.


최기태가 카운터 뒤로 가기 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물었다.


"요즘 어때요."


1년 동안 입에 붙은 말이었다. 이제는 인사처럼 나왔다.


이진수가 먼저 대답했다.


"저요? 회사에서 별명이 바뀌었습니다."


"뭐였는데요."


"원래 고슴도치였습니다. 요새는 삼겹살 팀장이라 캅니다."


"그게 나아요?"


"훨씬 낫지요. 고슴도치는 아무도 안 만지려 하는데 삼겹살은 다들 먹으러 오잖습니까."


박순남이 웃었다. 웃다가 찐빵을 목에 걸려 했다. 유진이 엄마 등을 두드렸다. 손바닥이 등에 닿는 소리가 둔하게 났다.


"순남 씨는요."


"나는 요새 바빠요. 장사가 좀 돼요."


"된장찌개 때문이죠."


"그것도 있고요. 손님한테 요즘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오래 앉아 있다 가요. 그러면 반찬을 하나 더 시켜요."


"그거 제가 하던 건데요."


"그러니까 배웠죠."


최기태가 웃었다. 그러고는 배윤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윤경 씨는요."


"저는 요새 조용한 데가 무섭지 않아요."


배윤경이 짧게 말했다. 더 설명하지 않았다. 최기태도 더 묻지 않았다.


"나리 씨는요."


박나리가 잠깐 있었다.


"요즘 버스 타요."


"어디 가요?"


"그냥요. 한 정거장씩 더 가요."


가게 안에서 그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의자 하나가 아주 작게 삐걱였다. 김원효 쪽이었다.


"유진 씨는요."


유진이 폰에서 엄지를 뗐다.


"저요?"


"네."


"저는 잘 지내요. 진짜로요. 바쁜 거 빼고는요."


유진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진동이 2번 울렸다. 지잉 지잉. 유진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엄지가 다시 화면으로 갔다.


최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원장님은요."


김원효가 찐빵을 씹고 있었다. 다 삼키고 나서 말했다.


"찐빵이 맛있습니더."


"그거 말고요."


"그거밖에 없습니더."


가게 안이 웃음으로 찼다.


최기태가 카운터 뒤로 갔다.


"규칙은 하나예요."


가게가 조용해졌다.


"한 면은 끝까지 들어요. 중간에 안 넘깁니다. 바늘 한 번 내리면 그 면 끝날 때까지 그냥 둡니다."


"끝까지요?"


유진이 물었다.


"네."


"한 면이 몇 분이에요?"


"판마다 달라요. 20분 안팎이요."


유진이 아무 말도 안 했다. 폰 진동이 울렸다. 지잉.


최기태가 이진수 판을 받았다. 재킷에서 판을 꺼내는 소리가 났다. 종이 속지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소리였다. 턴테이블에 얹었다. 판이 돌기 시작했다. 바늘을 내렸다.


지직.


바늘이 홈에 앉는 소리가 났다. 먼지 튀는 소리가 몇 번 나고 기타 소리가 나왔다.


목소리가 나왔다. 조금 쉰 목소리였다.


이진수가 첫 곡 중간쯤에서 코를 훌쩍였다. 한 번 훌쩍이고 기침하는 척을 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유진의 엄지가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톡톡. 멈췄다가 다시 톡톡.


4번째 곡쯤에서 유진이 일어났다.


"죄송해요. 전화 좀."


문 위의 종이 울렸다. 계단 쪽에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났다. 빠르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네 네 그거 월요일 오전까지요 네 제가 다시 확인할게요.


면이 끝났을 때 유진이 돌아왔다.


"끝났어요? 저 중간에 나가서."


박순남이 아무 말도 안 했다. 대신 숨을 길게 쉬었다. 의자가 조금 삐걱였다.


두 번째 판 — 나훈아


박순남이 판을 내밀었다.


"이거 우리 남편이 좋아하던 거예요."


판 재킷이 낡아 있었다. 최기태가 받아서 손끝으로 만졌다. 모서리가 다 닳아서 둥글었다. 재킷 등이 갈라져 있었다. 수없이 꺼냈다 넣었다 한 판이었다.


"이거 몇 년 된 거예요?"


"남편 가고 나서 한 번도 안 꺼냈어요. 20년 넘었네요."


바늘이 내려갔다. 지직 지직. 먼지가 많았다. 잡음이 노래보다 먼저 나왔다. 그다음에 트로트 반주가 나왔다. 꺾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순남이 첫 소절에 웃었다.


"이 사람이 이 노래를 진짜 못 불렀어요. 음정이 하나도 안 맞았어요. 그래도 술만 먹으면 이걸 했어요."


유진이 그 말에 폰을 두드리던 엄지를 멈췄다.


"아빠가요?"


"응."


"나 기억 안 나는데."


"니 4살 때 가셨으니까."


판이 돌았다. 지직 소리가 노래 사이사이에 끼었다.


유진이 폰을 무릎 위에 엎어놓았다. 화면이 바지에 닿는 소리가 났다. 진동이 울렸다. 지잉. 무릎이 떨렸다. 유진은 폰을 안 집었다.


대신 한쪽 다리를 떨었다. 의자가 그 떨림에 맞춰 작게 끽끽 소리를 냈다.


면의 3번째 곡쯤에서 유진이 폰을 집었다. 엄지가 화면을 두드렸다. 그러다 다시 엎었다. 또 집었다.


김원효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면이 끝났다. 바늘이 마지막 홈을 도는 소리가 났다. 쉬익 쉬익. 끝없이 같은 원을 도는 소리였다. 최기태가 바늘을 들었다.


"잠깐 쉬었다 할게요."


찐빵 봉투가 다시 돌았다.


유진이 폰을 들고 계단으로 나갔다. 문 위의 종이 울렸다.


박순남이 잠깐 앉아 있다가 따라 나갔다.


계단은 가게보다 추웠다. 시멘트 계단이었다. 바람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유진이 3번째 칸에 앉아서 엄지로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톡톡톡.


박순남이 그 옆에 앉았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뚝.


"엄마 무릎."


"괜찮다."


유진이 화면 두드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빠가 그 노래 진짜 못 불렀어?"


"진짜 못 불렀다. 한 번은 니 돌잔치에서 불렀는데 슬롯 보던 사람이 마이크를 뺏었다."


유진이 웃었다. 엄지가 멈췄다.


"나 그것도 기억 안 나."


"한 살이었으니까."


바람이 계단을 올라왔다. 박순남이 딸 쪽으로 몸을 조금 붙였다. 어깨가 어깨에 닿았다.


"유진아."


"응."


"니 밤에 가슴 뛰지."


유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니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시험 전날이면 가슴 뛴다고 내 방에 왔다. 내 손을 니 가슴에 대고 잤다."


"……그거는 기억나."


"요새도 그러나."


유진이 폰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시멘트 계단에 폰 모서리가 닿는 소리가 났다.


"엄마 나 요새 새벽 3시에 깨. 깨면 가슴이 막 뛰어. 그러면 폰 봐. 메일 와 있나. 그러다가 아침 돼."


박순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엄마한테 말하면 엄마가 걱정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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