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부
먹고 마심에 절도가 있고 일어나고 눕는 데 일정함이 있으며 함부로 몸을 쓰지 않았다. — 《황제내경》 소문 상고천진론
0킬로미터 — 맥 76
12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1시였다.
칠성동 골목에 엔진 소리가 들어왔다. 낮게 울었다. 셔터들이 같이 떨렸다. 철판이 웅웅거렸다.
2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왔나."
쉰 목소리였다. 3주 전보다 덜 쉬었다. 말 사이에 끼던 가르랑 소리가 없었다.
"왔습니더."
"올라와서 기다리라. 옷 입는다."
철제 계단 소리가 났다. 텅. 텅. 텅. 한 칸씩 내려왔다. 멈추지 않았다. 14칸을 내려오는 데 40초가 걸렸다. 박나리가 폰 스톱워치로 쟀다.
"40초요."
"지난번에 3분이었다."
김원효가 말했다.
노인이 쪽문으로 나왔다. 슬리퍼가 아니었다. 구두였다. 가죽 밑창이 시멘트를 밟는 소리가 또박또박 났다. 구두약 냄새가 났다. 아침에 닦은 냄새였다.
"구두 신으셨네예."
"핸들 잡는 날 아이가."
차봉수가 우루스 앞에 섰다. 보닛에 손을 얹었다. 엔진 떨림이 손바닥으로 올라오는 걸 한참 들었다.
"그대로네."
"오일은 아직 안 갈았습니더. 어르신이 갈아준다 캐서예."
"오늘 갈 끼다. 갔다 와서."
김원효가 노인 앞에 섰다.
"어르신 손 주시이소."
"또 맥이가."
"출발 전에 한 번입니더."
차봉수가 손목을 내밀었다. 김원효가 세 손가락을 얹었다. 박나리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15초.
김원효가 손가락 밑에서 세었다. 박나리는 숫자를 기다렸다.
"19."
"76이요."
박나리가 곱했다.
"박자는예."
김원효가 손을 놓지 않고 한참 더 짚었다. 둥 둥 둥 둥. 비는 자리가 없었다. 30초를 더 짚었다. 한 번도 안 비었다.
"고릅니더."
김원효가 손을 놓았다.
"규칙 말씀드리겠습니더."
"규칙은 무슨."
"병원 선생님이 운전은 해도 된다 카셨지예. 근데 무리하지 말라꼬."
"했다."
"그라모 규칙이 있어야 됩니더."
차봉수가 팔짱을 꼈다. 점퍼가 바스락거렸다.
"말해봐라."
"제가 조수석에 앉습니더. 중간중간 신호 걸리면 맥 짚습니더. 100 넘으면 그날은 끝입니더. 박자가 한 번이라도 비면 그것도 끝입니더."
"100 넘으면 끝이라꼬."
"예."
"그라모 밟을 수가 없다 아이가. 밟으면 맥이 뛰는데."
"그러니까 맥 안 뛰게 밟으이소."
차봉수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가 웃었다. 소리를 내고 웃었다. 기침이 안 섞였다.
"니 진짜 미친놈이네."
"자주 듣습니더."
"맥으로 속도 제한하는 놈은 40년 만에 처음 본다."
차봉수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 무거운 문이었다. 열리는 소리가 묵직했다. 시트에 앉는 소리가 났다. 가죽이 눌리는 소리였다. 차봉수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네."
"뭐가예."
"앉는 자리가."
박나리가 뒷자리에 탔다. 김원효가 조수석에 탔다. 조수석이 김원효 무게에 한 번 가라앉았다.
"어디 갑니꺼."
"팔공산."
차봉수가 말했다.
"순환도로 돌고 동화사 앞에서 돌아온다. 우리 집사람하고 처음 데이트한 길이다."
시동이 걸렸다.
12킬로미터 — 맥 84
차가 신천대로를 탔다.
차봉수는 천천히 몰았다. 김원효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천천히였다. 차선을 한 번도 안 바꿨다. 깜빡이를 켤 때는 3초 전에 켰다. 똑딱똑딱.
"어르신 밟으신다면서예."
"아직 아이다."
"언제예."
"차가 몸 풀고 나서. 엔진이 다 데워지기 전에 밟으면 안 된다. 사람도 그렇고."
김원효가 웃었다.
"그거 제가 환자한테 하는 말인데예."
"니도 정비사 하면 되겠다."
신호에 걸렸다. 김원효가 노인 손목을 잡았다. 박나리가 스톱워치를 눌렀다. 15초.
"21."
"84요."
"올랐네예."
"신이 나서 그렇다."
"박자는 고릅니더."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굴렀다.
뒷자리에서 박나리가 물었다.
"어르신 엔진 소리로 뭘 알아요?"
"다 안다."
"다요?"
"엔진은 거짓말을 못 한다. 사람은 괜찮다 캐도 엔진은 아프면 아프다꼬 소리를 낸다."
차봉수가 말했다.
"손님이 차를 끌고 오면 나는 먼저 시동을 걸어보라 칸다. 그 소리를 듣는다. 그다음에 냄새를 맡는다. 배기구 냄새. 오일 타는 냄새. 냉각수 단내. 그다음에 손님한테 묻는다. 언제부터 그랬는교. 어디서 그랬는교. 그다음에 손으로 만진다. 엔진룸에 손을 넣어서 떨림을 잡는다."
김원효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거 사진(四診)입니더."
"뭐라꼬."
"한의사가 진찰하는 네 가지라예. 듣고 맡고 묻고 짚는 거예. 순서까지 똑같습니더."
차봉수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40년 동안 내가 한의사 짓을 했나."
"정비사가 한의사 짓을 한 게 아이라예."
김원효가 말했다.
"한의사가 정비사 짓을 하는 깁니더."
차봉수가 웃었다. 핸들에 손을 얹은 채로 어깨가 흔들렸다.
"사람 고치는 거나 차 고치는 거나 똑같네."
"하나 다른 거 있습니더."
"뭐."
"차는 부품을 갈 수 있습니더. 사람은 못 갑니더."
차봉수가 웃음을 멈췄다.
"그래서 사람은 살살 써야 된다."
"예."
"알았다."
차가 동구로 넘어갔다. 길이 넓어졌다. 차들이 줄었다. 공기가 달라졌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졌다. 흙 냄새가 섞였다.
23킬로미터 — 맥 96
팔공산 순환도로 입구였다.
길이 굽기 시작했다. 오르막이었다. 엔진이 한 단 낮게 울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누르는 소리가 바뀌었다. 커브에서 차가 기울었다. 박나리가 뒷자리 손잡이를 잡았다.
"여기서부터다."
차봉수가 말했다.
오른발이 내려갔다.
엔진이 울었다. 낮은 데서 시작해서 위로 올라갔다. 배 속에서 가슴으로 올라오는 소리였다. 등이 시트에 붙었다. 박나리 귀가 먹먹해졌다.
커브가 왔다. 차봉수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부드럽게 밟았다. 차가 휘었다. 다시 밟았다. 엔진이 울었다.
"와."
박나리가 말했다.
"와."
차봉수가 따라 말했다. 목소리가 젊었다.
다음 커브 앞에서 차봉수가 속도를 줄였다. 갓길에 섰다. 비상등을 켰다. 똑딱똑딱.
"맥 짚어라."
김원효가 손목을 잡았다. 15초.
"24."
"96이요."
박나리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100 안 넘었다."
"안 넘었습니더."
"박자는."
김원효가 더 짚었다. 둥 둥 둥 둥. 빨랐다. 그런데 고왔다. 비지 않았다.
"고릅니더."
"그라모 한 번 더."
"2분 쉬고예."
"2분?"
"맥이 80 밑으로 내려올 때까지예."
차봉수가 핸들에서 손을 뗐다. 숨을 쉬었다. 길게 쉬었다. 창문을 조금 내렸다. 찬바람이 들어왔다. 소나무 냄새가 났다. 송진 냄새였다. 날카롭고 맑았다.
"집사람하고 왔을 때도 이 냄새였다."
차봉수가 말했다.
"1977년이었다. 내가 23살이었고 집사람이 21살이었다. 내 친구 오토바이를 빌려서 왔다. 대림 혼다. 125cc. 이 오르막을 2명 태우고 못 올라가서 집사람이 내려서 걸었다."
"걸어서요?"
"저 커브부터 저 커브까지. 내가 오토바이 끌고 집사람이 옆에서 걸었다. 그게 데이트였다."
박나리가 웃었다.
"그다음에 3년 일해서 내 오토바이 샀다. 그다음에 10년 일해서 카센터 냈다. 그다음에 동민이 낳고."
차봉수가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찬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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