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柿蒂)

23부

by김경훈

모든 거슬러 위로 치받는 것은 다 화(火)에 속한다. — 《황제내경》 소문 지진요대론


1


도창수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했다.


대구 북구 매천동 북부 농수산물도매시장이었다. 청과동이었다. 도창수는 거기서 26년 동안 경매를 불렀다.


새벽 3시 반이면 트럭들이 들어왔다. 디젤 엔진이 낮게 털털거렸다. 지게차가 후진하면서 삑 삑 삑 울었다. 사과 상자가 바닥에 내려지는 소리가 났다. 귤 상자가 쌓이는 소리가 났다. 배추를 묶은 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냄새는 계절마다 달랐다. 12월에는 귤 냄새가 제일 셌다. 껍질에서 나는 시큼하고 쌉싸름한 냄새였다. 그 밑에 사과 냄새가 깔렸다. 그리고 감 냄새가 있었다. 홍시가 터진 단내였다. 겨울 도매시장은 단내와 흙냄새와 디젤 냄새가 같이 났다.


4시에 종이 울렸다.


도창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갑니다 경북 청송 사과 부사 10킬로 50상자 시작 3만 3만 3만 1 3만 2 3만 2 3만 3 3만 3 저쪽 3만 4 3만 5 3만 5 더 없어요 3만 5 3만 6 나왔다 3만 6 3만 6 3만 6 땡 7번 낙찰."


숨을 안 쉬었다. 쉬는 것처럼 안 들렸다. 숫자가 굴러갔다. 중도매인들이 손가락으로 응찰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딸깍거렸다. 전광판 숫자가 바뀌는 전자음이 났다. 도창수는 그 딸깍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숫자를 불렀다.


26년이었다. 하루에 몇 마디를 하는지 센 적이 없었다. 아내가 한 번 세어보라고 했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하루 경매를 다 녹음해서 들어봤다. 아내가 중간에 포기했다.


"당신 하루에 1만 마디는 하겠다."


"그거밖에 안 되나."


"근데 집에서는 10마디도 안 하잖아."


도창수는 그 말에 대답을 안 했다.


2


딸꾹질이 시작된 건 월요일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있었다. 딸 희정이가 와 있었다. 32살이었다. 결혼식이 그다음 주 토요일이었다. 희정이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아빠."


"어."


"축사 아빠가 해줘."


도창수가 숟가락을 든 채로 멈췄다.


"주례 없이 하기로 했거든. 대신 양가 아버지가 한 마디씩 하는 걸로. 시아버님은 하신대. 아빠도 해줘."


"내가 무슨."


"아빠 말 잘하잖아."


"그거는 경매 말이다."


"그것도 말이잖아."


도창수가 국을 떠먹었다.


"얼마나 해야 되는데."


"3분? 길면 5분."


"뭐라 카는데."


"그냥 하고 싶은 말."


희정이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밥을 먹었다.


도창수가 국을 삼켰다.


그리고 딸꾹 했다.


"아빠 사레들렸어?"


"아이다."


딸꾹.


"물 마셔."


도창수가 물을 마셨다. 딸꾹. 숨을 참았다. 30초를 참았다. 내쉬었다. 딸꾹.


그게 월요일이었다.


화요일 새벽 경매장에서 도창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자 갑니다 제주 노지 감귤 10킬로 시작 2만 2만 1 2만 2 2만 2 2만 3."


안 났다. 딸꾹질이 안 났다. 숫자를 부르는 동안에는 한 번도 안 났다.


경매가 끝나고 마이크를 놓았다.


딸꾹.


옆자리 기록원 박 주임이 고개를 돌렸다.


"경매사님 딸꾹질하세요?"


"어제부터."


딸꾹.


3


수요일에 응급실에 갔다.


아내가 끌고 갔다. 48시간 넘게 딸꾹질이 계속되면 병원에 가봐야 된다는 걸 아내가 인터넷에서 찾았다. 도창수는 딸꾹질로 무슨 응급실이냐고 했다. 아내가 당신 밤에 한숨도 못 잤잖아 했다.


맞았다. 자다가도 딸꾹 했다. 딸꾹질에 잠이 깼다. 다시 잠들려고 하면 또 딸꾹 했다.


응급실에서 피를 뽑았다. 가슴 사진을 찍었다. 의사가 배를 눌러봤다. 위내시경은 다음 날 했다. 다 괜찮다고 했다. 다른 큰 병 때문에 생긴 딸꾹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딸꾹질 멈추는 약을 줬다.


목요일까지 먹었다.


목요일 저녁에도 딸꾹 했다.


금요일 새벽 경매가 끝나고 시장 건물 밖 드럼통 장작불 앞에 서 있었다. 상인들이 손을 쬐는 자리였다. 장작 타는 냄새가 났다. 손바닥이 뜨거웠고 등이 시렸다.


"창수야 니 아직이가."


옆에서 상주 곶감 하는 강 사장이 말했다. 도창수보다 10살 많았다.


"아직입니더."


딸꾹.


"놀래켜봤나."


"집사람이 뒤에서 소리 질렀습니더. 3번요."


"그래서."


"놀래기만 했지예."


딸꾹.


"물 거꾸로 마셔봤나."


"마셨습니더. 코로 들어갔습니더."


강 사장이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감꼭지 달여 무봐라."


"감꼭지요?"


"옛날부터 딸꾹질에는 감꼭지다. 우리 할매가 그랬다. 곶감 깎고 남은 꼭지 모아놨다가 딸꾹질 하는 사람 있으면 달여줬다."


도창수가 장작불 쪽으로 손을 더 내밀었다.


"그기 됩니꺼."


"모르지. 근데 우리 할매는 그걸로 동네 딸꾹질 다 고쳤다."


딸꾹.


강 사장이 트럭으로 가더니 비닐봉지를 하나 가져왔다. 바스락거렸다. 안에서 마른 것들이 서로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이거 가져가라. 그라고 약령시 가봐라. 거기 한의원 하나 있는데 원장이 좀 이상하다 카더라. 근데 잘 본다 카더라."


"누가 그라던데예."


"약령시 만수당 사장이. 나 거기 곶감 대준다."


4


금요일 오후에 도창수가 약령시에 왔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한약 냄새가 확 왔다. 도매시장 냄새하고 달랐다. 도매시장은 산 것들 냄새였다. 여기는 마른 것들 냄새였다.


딸꾹.


골목 한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앉아 있는 목소리였다. 의자가 삐걱였다.


"어 혹시 도매시장 경매사 아니오."


도창수가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맞습니더. 어떻게."


"강 사장이 전화했다. 딸꾹질하는 경매사가 갈 끼라꼬."


딸꾹.


"아 저기 저 소리 들으니까 맞네."


노만수였다. 손을 들어 위쪽을 가리켰다.


"이 앞 2층이오. 감꼭지는 가져왔소?"


"가져왔습니더."


"그거 원장한테 보여주소. 좋아할 끼오."


계단을 올랐다. 삐걱. 끼익. 딸꾹. 계단 소리 사이에 딸꾹 소리가 끼었다. 도창수는 계단 박자가 딸꾹질 박자랑 안 맞아서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유리문을 밀었다. 따뜻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진료 받으러 왔습니더."


딸꾹.


여자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가 물었다.


"딸꾹질이요?"


"예."


딸꾹.


"얼마나 됐어요?"


"나흘입니더."


딸꾹.


"나흘이요?"


"예."


딸꾹.


여자 쪽에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웃음을 참는 숨이었다. 도창수는 그 숨을 알았다. 나흘 동안 그 숨을 100번은 들었다.


"죄송해요."


"괜찮습니더. 다들 웃습니더."


딸꾹.


"들어가시면 돼요."


5


진찰실에서 단 냄새가 났다.


호빵이었다. 팥 호빵 냄새였다. 의자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무거운 사람이 일어나는 소리였다.


"어서 오이소."


딸꾹.


상대가 잠깐 멈췄다.


"앉으이소."


도창수가 앉았다.


"딸꾹질이네예."


"나흘째입니더."


딸꾹.


"병원은예."


"응급실 갔습니더. 피검사하고 사진 찍고 내시경까지 했습니더. 다 괜찮답니더."


"약은예."


"이틀 먹었는데 안 듣습니더."


딸꾹.


"검사 다 하셨으면 됐습니더. 나흘 넘은 딸꾹질은 다른 병이 숨어 있을 수도 있어서 그거부터 봐야 되거든예. 잘하셨습니더."


도창수가 좀 의외였다. 한의원에서 병원 간 걸 잘했다고 하는 건 처음 들었다.


"하시는 일이 뭡니꺼."


"도매시장 경매사입니더. 청과요."


딸꾹.


"경매 부를 때도 납니꺼."


도창수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이상합니더. 경매 부를 때는 안 납니더. 한 번도요."


"마이크 놓으면예."


"바로 납니더."


딸꾹.


상대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호빵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재밌네예."


"저는 하나도 안 재밌습니더."


"죄송합니더."


상대가 웃음 섞인 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라고 했다.


6


맥을 짚었다. 굵은 손가락 셋이 손목에 얹혔다. 따뜻했다.


딸꾹. 손목이 같이 튀었다.


"딸꾹질할 때마다 맥도 같이 튀네예."


"그런 것도 봅니꺼."


"보입니더. 아니 느껴집니더."


혀를 보라고 했다. 도창수가 혀를 내밀었다. 딸꾹. 혀를 내민 채로 딸꾹질을 해서 혀를 깨물 뻔했다.


"혀는 집어넣으셔도 됩니더."


명치를 눌렀다. 도창수가 숨을 멈췄다. 갈비뼈 아래 옆구리를 눌렀다. 뻐근했다.


"딸꾹질을 한의학에서 애역(呃逆)이라 캅니더."


"애역이요."


"위장 기운이 원래 아래로 내려가야 되는데 거꾸로 위로 치받는 겁니더. 내려가야 될 게 올라오니까 목에서 걸리는 기라예."


"뭐가 올라오는데예."


"보통은 찬 거 먹었거나 급하게 먹었거나 그럽니더. 근데 경매사님은 그기 아입니더."


딸꾹.


"옆구리가 뭉쳐 있습니더. 간 기운이 막혀서 위장을 누르고 있는 기라예. 간기범위(肝氣犯胃)라 캅니더. 속에 뭐가 걸려 있으면 그렇습니더."


"속에 뭐가 걸려요."


"딸꾹질 시작할 때 뭐 하고 계셨습니꺼."


도창수가 대답을 안 했다.


딸꾹.


"밥 먹고 있었습니더."


"누구랑예."


"집사람하고 딸하고요."


"무슨 얘기 하셨습니꺼."


딸꾹.


도창수가 손을 무릎 위에서 비볐다. 굳은살 박힌 손바닥이 바지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마이크를 26년 쥔 손이었다.


"딸이 결혼합니더. 다음 주 토요일에."


"축하드립니더."


"축사를 해달랍니더."


딸꾹.


진찰실이 조용해졌다. 밖에서 물 끓는 소리만 났다.


"그 말 듣고 국 삼키다가 시작됐습니더."


7


상대가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축사가 몇 분입니꺼."


"3분에서 5분이랍니더."


"하루에 경매 몇 시간 부르십니꺼."


"4시간쯤요."


"그럼 3분이 4시간보다 어렵습니꺼."


도창수가 한참 대답을 안 했다.


딸꾹.


"……어렵습니더."


"왜예."


"경매는 숫자만 부르면 됩니더. 3만 3만 1 3만 2. 생각 안 해도 입이 알아서 합니더."


도창수가 말했다.


"근데 축사는 내 말을 해야 됩니더."


딸꾹.


"내 말이 뭔지 모르겠습니더."


"써보셨습니꺼."


"써봤습니더. 밤마다 썼습니더. 딸꾹질 때문에 잠도 못 자니까 일어나서 썼습니더."


"뭐라고 쓰셨습니꺼."


"……첫 줄 쓰고 지웠습니더. 또 쓰고 지웠습니더. 나흘 동안 첫 줄만 썼습니더."


"첫 줄이 뭔데예."


도창수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딸꾹.


"희정아."


딸꾹.


"그다음이 안 나옵니더."


상대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의자가 크게 삐걱였다.


"경매사님."


"예."


"말이라는 게 기(氣)가 밖으로 나가는 겁니더. 숨에 실려서 나가는 기라예. 경매 부르실 때는 그 기가 쭉 나갑니더. 막힘없이예. 숫자가 기를 끌고 나가니까예."


"예."


"근데 축사는 하려고 하면 말이 목까지 왔다가 도로 내려갑니더. 삼켰다가 또 올라오고예. 나흘 동안 그걸 하신 겁니더."


상대가 말했다.


"그게 딸꾹질입니더. 나가야 될 말이 못 나가고 위로 치받았다가 걸리는 기라예."


도창수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딸꾹.


8


"약을 쓰겠습니더."


상대가 일어섰다. 서랍 여는 소리가 났다.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정향시체탕(丁香柿蒂湯)이라꼬 딸꾹질에 쓰는 처방입니더."


"뭐가 들어갑니꺼."


"정향하고 생강하고 인삼하고."


서랍이 하나 더 열렸다.


"시체(柿蒂)를 넣겠습니더."


도창수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체요?"


"예."


"무슨 시체요."


"감 시(柿) 자에 꼭지 체(蒂) 자입니더. 감꼭지라예."


도창수가 다시 앉았다. 숨을 내쉬었다.


딸꾹.


"사람 놀래키지 마이소."


"놀래셨습니꺼."


"놀랬습니더."


"딸꾹질은예."


도창수가 기다렸다. 숨을 참고 기다렸다. 10초. 20초.


딸꾹.


"안 멈추네예."


"안 멈춥니더."


상대가 웃었다. 이번엔 숨기지 않고 웃었다. 도창수도 웃었다. 웃다가 딸꾹 했다. 웃는 소리 중간에 딸꾹질이 끼어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둘이 더 웃었다.


밖에서 젊은 여자가 웃음을 참다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도창수가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바스락거렸다.


"이거요. 상주 곶감 하는 사람이 줬습니더. 감꼭지요."


상대가 봉지를 받았다. 손이 봉지 안으로 들어가서 마른 꼭지들을 만지는 소리가 났다. 사각사각.


"잘 말랐네예. 좋은 겁니더."


"진짜 그기 약입니꺼."


"약입니더. 본초강목에도 나옵니더. 시골 할매들이 먼저 알았고 바카라이 나중에 적은 겁니더."


"이거 넣어주이소."


"그라겠습니더."


9


약침은 손목 안쪽에 놓았다. 내관혈(內關穴)이라고 했다. 그리고 등 쪽 하나. 격수(膈兪)라고 했다. 가로막 자리라고 했다.


"딸꾹질이 가로막이 떨리는 거라예. 그 자리를 달래는 겁니더."


바늘이 들어갔다. 따끔했다.


딸꾹.


"아직 납니더."


"바로는 안 멈춥니더."


"언제 멈춥니꺼."


"모릅니더."


도창수가 엎드린 채로 웃었다. 웃다가 딸꾹 했다.


"원장님 솔직하네예."


"자주 듣습니더."


엎드린 채로 바늘 꽂고 있는 동안 상대가 물었다.


"경매장 한번 가봐도 되겠습니꺼."


"도매시장요?"


"예. 경매 부를 때 안 나고 놓으면 난다 카셨지예. 그거를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더."


"새벽 4시인데예."


"갑니더."


"원장님 새벽 4시에 일어납니꺼."


"안 일어납니더. 근데 그날은 일어나겠습니더."


도창수가 약 봉지를 들고 나갔다. 계단에서 딸꾹 소리가 한 칸씩 내려갔다. 삐걱 딸꾹 끼익.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도 한참 동안 아래에서 딸꾹 소리가 올라왔다. 그러다 골목 쪽으로 멀어졌다.


박나리가 진찰실 문 앞에 섰다.


"선생님."


"응."


"아까 시체 그거요. 일부러 그러셨죠."


의자가 삐걱였다.


"뭘."


"감꼭지라고 먼저 말하면 되잖아요. 시체부터 말씀하셨잖아요."


"놀래면 멈추는 수도 있거든."


"안 멈췄잖아요."


"안 멈췄지."


박나리가 웃었다.


"그럼 왜 하셨어요."


"웃으시라꼬."


김원효가 호빵 봉지를 바스락거렸다.


"딸꾹질 나흘 하면 웃을 일이 없다. 다들 자기를 보고 웃지 같이 웃어주지는 않거든. 같이 웃으면 목이 좀 풀린다."


"그것도 처방이에요?"


"처방은 아이고."


김원효가 호빵을 반으로 갈랐다. 김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팥 냄새가 진찰실에 다시 퍼졌다.


"그냥 웃기고 싶었다."


박나리가 반쪽을 받았다. 뜨거웠다. 손바닥에서 굴렸다.


"도매시장은 진짜 가세요?"


"간다."


"새벽 4시에요?"


"막힌 자리는 들어봐야 안다. 경매 부를 때 안 난다는 거는 그 사람 몸이 말하는 법을 안다는 거다. 그 법을 들어봐야 축사에 옮겨줄 수 있다."


"저도 가도 돼요?"


"새벽 4시다."


"갈게요."


"니 4시 맞나."


"맞아요."


박나리는 그때 오후 4시인 줄 알았다.


10


토요일 새벽 3시 50분에 박나리가 도매시장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었다.


추웠다. 숨이 하얗게 나오는지는 몰랐지만 콧속이 얼었다. 영하 4도였다. 공기가 바늘처럼 볼을 찔렀다.


"저 왜 데려오셨어요."


"니가 따라온다 캤다 아이가."


"새벽 4시인 줄 몰랐죠."


"내가 말했는데."


"선생님이 4시라고 할 때 오후 4시인 줄 알았어요."


김원효가 차 문을 닫았다. 큰길 쪽에 댄 차였다. 도매시장 주차장은 트럭들 사이였다. 디젤 냄새가 진했다. 낮고 묵직한 엔진들 사이에서 김원효 차 엔진이 꺼지는 소리가 났다. 옆 트럭 운전석에서 누가 휘파람을 불었다.


"저 차로 사과 받으러 왔나."


누가 말했다. 웃음소리가 났다.


청과동 안은 바깥보다 덜 추웠다. 대신 소리가 셌다. 지게차 경고음이 사방에서 울렸다. 상자가 바닥에 내려지는 소리. 테이프 뜯는 소리. 사람들이 손뼉을 치면서 손을 녹이는 소리. 커피 자판기에서 종이컵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귤 냄새였다. 사방이 귤 냄새였다.


"와."


박나리가 말했다.


"여기 냄새 좋다."


"겨울 냄새라."


김원효가 어묵 꼬치를 2개 들고 왔다. 국물 냄새가 났다. 어디서 산 건지 박나리는 몰랐다. 들어온 지 3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사 왔다.


"하나 무라."


"선생님은요."


"내는 2개 더 있다."


4시 종이 울렸다.


11


도창수 목소리가 스피커로 나왔다.


"자 갑니다 경북 영주 사과 부사 10킬로 80상자 시작 3만 5 3만 5 3만 6 3만 7 3만 7 저쪽 3만 8 3만 8 3만 9 3만 9 4만 4만 4만 더 없어요 4만 4만 1 나왔다 4만 1 4만 1 땡 12번 낙찰."


박나리가 그 소리를 들었다.


숫자가 굴러갔다. 숨 쉬는 자리가 없었다. 아니 있는데 안 들렸다. 숫자와 숫자 사이에 숨이 끼어 있었다. 리듬이 있었다. 판소리 같았다. 아니 판소리보다 빨랐다.


딸꾹질은 안 났다.


"진짜 안 하시네요."


"안 하제."


김원효가 어묵을 씹으면서 말했다.


다음 경매가 시작됐다. 귤이었다. 그다음은 배였다. 그다음은 상주 곶감이었다. 강 사장 물건이었다. 도창수 목소리가 곶감 상자 수를 부를 때 조금 더 컸다.


김원효가 경매대 옆에 섰다. 기록원 자리 바로 뒤였다. 박 주임이 단말기에 낙찰가를 찍고 있었다. 키보드 소리가 빨랐다.


경매가 한 품목 끝날 때마다 김원효가 낮게 중얼거렸다.


"80상자 4만 1천이면 328만."


박 주임이 키보드를 치다가 멈췄다.


"……맞네요."


"귤 120상자 2만 3천 5백이면 282만."


박 주임이 단말기 숫자를 확인했다.


"맞아요."


"곶감 35상자 5만 8천이면 203만. 아까 사과까지 합치면 오늘 지금까지 1천 9백 13만."


박 주임이 단말기 화면을 한참 두드렸다. 합계를 냈다.


"1천 9백 13만 2천요."


"2천은 아까 배 끝자리라예. 배 단가에 5백 붙은 거."


박 주임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아저씨 누구세요?"


"한의사입니더."


"한의사가 왜 숫자를 이렇게 해요."


김원효가 어묵 꼬치를 입에서 뺐다.


"숫자 보는 일을 좀 했습니더."


"무슨 일요?"


경매대 쪽에서 종이 울렸다. 다음 품목이었다.


"옛날 일이라예."


박나리가 옆에서 그 말을 들었다. 어묵 국물이 식어가고 있었다.


12


경매가 6시 반에 끝났다.


도창수가 마이크를 놓았다. 스피커가 툭 하고 꺼지는 소리가 났다.


딸꾹.


바로였다. 마이크 놓은 지 2초도 안 됐다.


도창수가 경매대에서 내려왔다. 발소리가 무거웠다. 4시간을 서 있던 발소리였다.


"원장님 진짜 오셨네예."


딸꾹.


"들었습니더."


"어떻습니꺼."


"경매 부르실 때는 기가 쭉 나갑니더. 막힘이 하나도 없습니더. 숨을 안 쉬는 것 같은데 실은 숫자 사이사이에 다 쉬십니더. 그래서 안 걸리는 겁니더."


"그건 26년 하니까 되는 겁니더."


딸꾹.


"그라모 축사도 경매처럼 하시면 됩니더."


도창수가 멈췄다.


"축사를 경매처럼요?"


"예."


"희정아 3만 3만 1 이렇게요?"


옆에서 박 주임이 커피를 뿜었다. 종이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김원효가 웃었다.


"그거 말고예."


김원효가 말했다.


"경매 부르실 때 다음 숫자 미리 생각하십니꺼."


"안 합니더. 버튼 소리 들리면 입이 먼저 나갑니더."


"지금 숫자가 몇인지는 압니꺼."


"알지예."


"그다음 숫자는예."


"모릅니더. 손님이 눌러야 압니더."


"그거라예."


김원효가 말했다.


"축사도 첫 줄 쓰고 그다음 줄을 미리 생각하시니까 안 나오는 겁니더. 첫 줄에 뭐라 할지 정해놓고 그다음 줄은 따님 얼굴 앞에서 나오는 대로 부르시이소. 버튼 소리 듣고 숫자 부르듯이예."


"따님 얼굴이 버튼입니꺼."


"예."


도창수가 아무 말도 안 했다.


딸꾹.


"근데 원장님. 그게 안 나오면요."


"그라모 첫 줄만 하이소."


"첫 줄만요?"


"희정아. 그거 한 마디에 26년이 다 들어 있습니더."


도창수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옆에서 드럼통 장작불 타는 소리가 났다. 탁. 탁. 나무가 터지는 소리였다. 상인들이 몰려들어 손을 쬐는 소리가 났다.


강 사장 목소리가 났다.


"창수야 아직이가."


"아직입니더."


딸꾹.


"그 원장 좀 이상하제."


"이상합니더."


딸꾹.


"근데 잘 보제."


도창수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잘 봅니더."


13


일요일과 월요일에 도창수는 정향시체탕을 먹었다.


쓴데 끝에 단내가 났다. 감꼭지 냄새였다. 마른 감 냄새였다.


월요일 밤에 딸꾹질 간격이 길어졌다. 1분에 몇 번 하던 게 몇 분에 한 번이 됐다.


화요일 새벽 경매가 끝나고 마이크를 놓았다.


기다렸다.


딸꾹.


30초 걸렸다.


수요일에는 1분 걸렸다.


목요일 저녁에 도창수가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했다. 물소리가 났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도창수가 종이를 꺼냈다. 나흘 동안 첫 줄만 쓰고 지운 종이였다. 지우개 가루가 손바닥에 묻었다.


첫 줄을 읽었다.


희정아.


그다음 줄을 쓰지 않았다. 원장 말대로 했다. 미리 안 썼다.


대신 소리 내서 말해봤다. 거실에서.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서.


"희정아."


딸꾹질이 안 났다.


"아빠는 니가 태어날 때 경매장에 있었다."


부엌 물소리가 멈췄다.


도창수가 그다음을 기다렸다. 버튼 소리를 기다리듯이. 그다음 말이 왔다.


"새벽 4시였다. 사과 부르고 있는데 니 엄마 진통 온다고 전화가 왔다. 근데 아빠가 마이크를 못 놨다. 대신 불러줄 사람이 없었다."


부엌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났다.


"6시 반에 끝나고 병원 가니까 니는 벌써 나와 있었다. 그때부터 아빠는 니 일에 늘 2시간 반씩 늦었다."


도창수가 숨을 쉬었다.


"입학식에도 늦었고 졸업식에도 늦었고. 니가 아파서 응급실 갈 때도 경매 끝나고 갔다."


딸꾹.


났다. 한 번.


도창수가 멈췄다. 기다렸다.


안 났다. 한 번으로 끝났다.


"그래서 토요일은 안 늦을라꼬. 토요일은 경매 쉬는 날로 바꿨다. 26년 만에 처음이다."


부엌 쪽에서 코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도창수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 와 우노."


"안 운다."


아내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당신 그거 그대로 해라. 종이에 쓰지 마라. 그대로 해라."


"딸꾹질 나면 어쩌노."


"나면 나는 거지."


아내가 말했다.


"26년 동안 당신 그 말 한 번도 안 했다. 딸꾹질 몇 번 섞여도 된다."


14


토요일 낮 12시였다. 수성구의 결혼식장이었다.


식장 안은 따뜻했다. 너무 따뜻했다. 꽃 냄새가 났다. 백합 냄새였다. 사람 200명의 숨과 코트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의자 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누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가 났다. 뒤쪽에서 하객들이 늦게 들어오는 발소리가 이어졌다.


도창수는 혼주석에 앉아 있었다. 양복 안 셔츠가 목을 조였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손바닥이 젖었다.


경매장에서는 손바닥이 젖은 적이 없었다.


"신부 아버님 말씀이 있겠습니다."


슬롯자 목소리가 스피커로 나왔다.


도창수가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 단상까지 걸었다. 7걸음이었다. 경매대까지는 12걸음이었다. 경매대보다 가까운데 더 멀었다.


누가 마이크를 건넸다.


손에 쥐었다. 경매장 마이크보다 가벼웠다. 손잡이가 매끄러웠다. 경매장 마이크는 26년 손때가 묻어서 손잡이가 끈적했다.


식장이 조용해졌다. 200명이 조용해지는 소리가 있었다. 의자 소리가 하나씩 멈췄다. 아이 소리도 멈췄다. 천장에서 히터 바람 소리만 남았다.


도창수가 앞을 향했다. 희정이가 거기 있었다. 신랑 옆이었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희정이가 몸을 조금 돌리는 소리였다.


버튼 소리가 들리면 입이 먼저 나간다. 원장이 그랬다.


드레스 소리가 버튼이었다.


"희정아."


목소리가 스피커로 나갔다. 식장 벽에 부딪혔다가 돌아왔다. 경매장 스피커보다 부드러웠다.


"아빠는 니가 태어날 때 경매장에 있었다."


딸꾹.


스피커가 그 소리를 그대로 키웠다. 식장 끝까지 갔다.


200명이 조용했다. 1초. 2초.


뒤쪽에서 누가 풉 하고 웃었다. 강 사장 목소리였다. 그다음에 옆에서 웃었다. 그 옆에서 웃었다. 웃음이 식장을 한 바퀴 돌았다.


희정이가 웃었다. 드레스 입은 채로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도창수는 알았다. 4살 때 경매장에 처음 데려갔을 때 지게차 경고음을 듣고 웃던 그 소리였다.


도창수가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뺐다.


원장이 그랬다. 숫자 사이사이에 다 쉬신다고.


도창수가 숨을 쉬었다. 웃음소리가 가라앉는 사이에 쉬었다.


"새벽 4시였다."


목소리가 나갔다. 걸리지 않았다.


"사과 부르고 있는데 니 엄마 진통 온다고 전화가 왔다."


식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까보다 더 조용했다. 웃고 난 다음의 조용함이었다. 200명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소리가 났다. 의자가 일제히 아주 작게 삐걱였다.


도창수가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버튼 소리를 기다리듯이.


왔다.


"근데 아빠가 마이크를 못 놨다."


에필로그


다음 주 화요일 오후였다.


계단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올라왔다. 삐걱. 끼익. 그 사이에 딸꾹 소리가 없었다.


유리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박나리가 고개를 들었다.


"딸꾹질 멈추셨어요?"


"일요일에 멈췄습니더."


"결혼식 다음 날요?"


"예. 아침에 일어났는데 안 나더라꼬예. 저녁까지 안 났습니더."


도창수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보자기였다. 보자기 매듭 푸는 소리가 났다. 떡 냄새가 났다. 찹쌀떡이었다. 그리고 곶감 냄새였다.


"답례품입니더. 떡은 결혼식 거고 곶감은 강 사장이 원장님 드리라꼬."


진찰실에서 의자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무거운 발소리가 나왔다.


"오셨습니꺼."


"원장님."


"축사는 하셨습니꺼."


"했습니더. 4분 했답니더. 집사람이 쟀습니더."


"딸꾹질은예."


"한 번 났습니더. 2번째 줄에서요."


박나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서요?"


"다들 웃었습니더. 희정이도 웃었습니더. 근데 웃고 나니까 다들 경매장보다 조용히 듣더라꼬예."


도창수가 보자기를 테이블에 올렸다.


"희정이가 끝나고 와서 그러더라꼬예. 아빠 그 얘기 처음 들었다고. 그러고는 딸꾹질 한 번 한 거 영상에 다 찍혔다고 평생 놀릴 거라꼬."


박나리가 웃었다.


김원효도 웃었다.


도창수가 계단 쪽으로 돌아섰다. 가다가 멈췄다.


"원장님."


"예."


"토요일에 도매시장에서요. 박 주임이 아직도 그 얘기합니더."


"무슨 얘기예."


"한의사가 낙찰가를 단말기보다 빨리 더했다꼬예. 2천 원 끝자리까지예."


김원효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원장님 옛날에 무슨 일 하셨습니꺼."


진찰실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한의사 되기 전에예."


"예."


김원효가 보자기 매듭을 만졌다.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숫자로 사람 값 매기는 일 했습니더."


도창수가 그 말을 들었다. 26년 동안 숫자로 사과 값을 매긴 사람이었다.


"그게 무슨 일인데예."


"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더."


김원효가 곶감 하나를 꺼냈다. 말랑하고 쫀득한 감촉이 손끝에서 소리 없이 눌렸다. 단내가 진찰실에 퍼졌다.


"이거 꼭지는 떼고 주셨네예."


"강 사장이 꼭지는 따로 모은답니더. 딸꾹질하는 사람 주라꼬."


"잘하시네예."


도창수가 계단을 내려갔다. 삐걱. 끼익. 5번째 칸에서 한 음 낮았다.


박나리가 그 소리가 다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물었다.


"선생님."


"응."


"숫자로 사람 값 매기는 일이 뭐예요."


김원효가 곶감을 반으로 갈랐다. 쫀득한 속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반 무라."


박나리가 반을 받았다. 달았다. 혀에 단내가 오래 남았다.


"대답 안 하실 거죠."


"오늘은 안 한다."


"그럼 언제요."


"약속했다 아이가."


김원효가 진찰실로 들어갔다. 의자가 삐걱였다.


박나리가 곶감을 씹으면서 대기실 창가로 갔다. 창틀이 차가웠다. 12월 바람이 틈으로 들어왔다. 골목에서 노만수 목소리가 났다. 강 사장한테 곶감 잘 받았다고 전화하는 소리 같았다.


박나리는 바카라장 생각을 했다.


진찰실 바카라장 가운데 칸에 꽂혀 있는 바카라들. 한의학 바카라이 아닌 바카라들. 3년 동안 손댄 적 없는 칸이었다. 손끝으로 등을 쓸어보면 표지가 딱딱하고 두꺼웠다. 제목이 뭔지 박나리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숫자로 사람 값 매기는 일.


박나리는 곶감 마지막 조각을 삼켰다.


딸꾹질은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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