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厥)

21부

by김경훈

무릇 궐이란 음양의 기가 서로 이어지지 못하여 생기니 궐이란 손발이 거꾸로 차가운 것이다. — 《상한론》



1


권미옥의 손은 원래 따뜻했다.


손님들이 먼저 그 얘기를 했다. 처음 오는 사람은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긴장하고 있다가 풀리는 숨이었다. 그러고 나서 대개 한마디씩 했다.


"선생님 손이 참 따뜻하네요."


권미옥은 그 말을 20년 넘게 들었다.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안마원을 했다. 건물 2층이었다. 방이 3개였고 침대가 3개였다. 혼자 하다가 5년 전부터 후배 하나를 들였다. 권미옥은 48살이었다. 23살에 안마사 자격을 땄고 28살에 자기 가게를 열었다.


손님은 소리로 먼저 왔다.


계단 올라오는 발소리가 사람마다 달랐다.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은 한 발 올리고 한 발 모았다. 허리가 굳은 사람은 난간을 짚는 소리가 먼저 났다. 급한 사람은 두 칸씩 올라왔다. 권미옥은 문이 열리기 전에 누가 오는지 대충 알았다.


화요일 오후 3시의 발소리는 15년 동안 같았다.


느렸다. 한 칸마다 쉬었다. 난간을 짚는 소리가 탁 탁 났다. 지팡이 끝의 고무가 계단에 닿는 소리가 그 사이에 끼었다. 문을 열기 전에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배상철 할아버지였다.


81살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66살이었다. 오른쪽 어깨가 늘 왼쪽보다 높았다. 젊을 때 인쇄소를 해서 그렇다고 했다. 무거운 종이 뭉치를 오른쪽으로만 들었다고. 권미옥은 그 어깨를 15년 동안 매주 한 번씩 만졌다. 780번쯤이었다.


그 어깨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근육이 빠지는 게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뼈가 점점 가까워졌다. 권미옥은 그걸 가족보다 먼저 알았다. 할아버지 자신보다도 먼저 알았다.


할아버지는 누워서 말을 많이 했다.


인쇄소 얘기를 했고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를 했고 딸 얘기를 했다. 딸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간 얘기를 했다. 손주가 대학에 간 얘기를 했다. 권미옥은 대꾸를 많이 하지 않았다. 손을 움직이면서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게 좋다고 했다. 듣기만 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8월 첫째 주 화요일에 할아버지가 안 왔다.


권미옥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여름에 한 번씩 감기를 앓았다. 둘째 주에도 안 왔다. 셋째 주에도 안 왔다.


셋째 주 화요일 저녁에 권미옥이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 번호였다. 받은 건 여자 목소리였다. 50대쯤이었다. 서울 말씨였다.


"아 안마원이요."


"네. 할아버님이 3주째 안 오셔서요."


전화기 너머에서 숨소리가 잠깐 멈췄다.


"아버지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권미옥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수화기를 쥔 손이 이상했다.


"7월 말에요. 갑자기 그러셨어요. 자다가요."


"……그러셨구나."


"죄송해요. 안마원에도 연락을 드려야 되는 줄은 몰랐네요."


딸이 그렇게 말했다. 나쁜 뜻은 없는 목소리였다. 정말 몰랐던 목소리였다.


권미옥은 괜찮다고 했다. 명복을 빈다고 했다.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부터 손이 차가워졌다.



2


처음엔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첫 손님이 어깨에 손이 닿자마자 몸을 움찔했다.


"어우 선생님 손이 왜 이렇게 차요."


권미옥은 손을 떼고 비볐다.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다시 했다. 10분쯤 지나니 좀 나았다. 그런데 금방 다시 식었다.


그다음 손님도 움찔했다.


9월이 되면서 더 심해졌다. 손끝이 얼음 같았다. 발도 찼다. 양말을 두 켤레 신었다. 여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기장판을 켰다.


손님 둘이 안 오기 시작했다. 화요일 3시는 비어 있었다. 목요일 11시도 비었다. 권미옥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 차가운 손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물어볼 자신이 없었다.


내과에 갔다. 갑상선 검사를 했다. 정상이었다. 빈혈 검사를 했다. 정상이었다. 혈관 쪽도 봤다. 이상 없다고 했다. 수족냉증이 중년 여성한테 흔하다고 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했다.


권미옥은 원래 따뜻했다. 20년 동안.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목요일 저녁 7시 손님이었다.


대구시향 첼로 단원이었다. 손목과 팔꿈치를 풀러 왔다. 3년째 다녔다. 권미옥이 손을 대자 그 사람도 움찔했다.


"선생님 손 이거 오래됐어요?"


"한 달 좀 넘었어요."


"약령시에 한의원 하나 있어요. 저 손목 때문에 다녔는데. 원장이 좀 이상한데 잘 봐요. 우리 제2바이올린 수석도 거기서 귀 고쳤어요."


"이상하다는 게 뭐가요."


첼로 단원이 엎드린 채로 웃었다.


"가보시면 알아요. 일단 골목에 차 조심하세요."



3


10월 둘째 주 목요일에 권미옥이 약령시에 갔다.


택시에서 내렸다. 흰지팡이를 폈다. 마디가 딸깍 딸깍 이어지는 소리가 났다.


냄새가 먼저 왔다.


한약 냄새였다. 진했다. 한 가지가 아니었다. 쓴 냄새가 있었고 달큰한 냄새가 있었고 흙 같은 냄새가 있었다. 어디선가 뭔가를 볶는 냄새도 났다. 권미옥은 그 냄새들을 하나씩 떼어봤다. 당귀가 있었다. 계피가 있었다. 나머지는 몰랐다.


골목은 좁은 것 같았다. 소리가 양쪽 벽에 가까이 부딪혔다. 가게에서 라디오 소리가 났고 누가 약재를 빻는 소리가 났다. 쿵 쿵 하는 둔한 소리였다.


권미옥이 지팡이를 좌우로 저으면서 걸었다.


그때 뒤에서 소리가 왔다.


엔진 소리였다. 낮았다. 배 속까지 울리는 소리였다. 권미옥은 차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 소리는 흔한 소리가 아니었다. 실린더가 많은 엔진 소리였다. 흔한 차는 저렇게 안 울렸다.


소리가 골목으로 들어왔다. 권미옥이 벽 쪽으로 붙었다. 엔진 소리가 옆을 지나갔다. 뜨거운 바람이 종아리에 닿았다. 배기구 냄새가 한약 냄새를 잠깐 밀어냈다.


소리가 앞에서 멈췄다.


엔진이 꺼졌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무거운 문이었다. 닫히는 소리도 무거웠다. 발소리가 났다. 무거운 발소리였다. 몸집이 큰 사람이었다. 운동화 밑창이 끌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권미옥이 다시 걸었다.


지팡이 끝이 뭔가에 닿았다.


딱.


금속이었다. 매끄러웠다. 지팡이를 조금 옆으로 옮겼다. 또 금속이었다. 벽이 아니었다. 골목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다.


권미옥이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닿았다. 차가웠다. 매끄럽고 둥글었다. 방금 멈춘 엔진의 열기가 아직 올라오고 있었다.


차였다. 골목을 거의 다 막고 서 있었다.


"아이고."


뒤에서 사투리 목소리가 났다. 굵고 느린 목소리였다. 아까 그 무거운 발소리였다.


"괜찮으십니꺼."


권미옥이 지팡이를 거뒀다.


"이거 선생님 차예요?"


"예."


"골목 한가운데 대시면 어떡해요."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


"제가 여기로 지나가야 되는데요. 벽 따라 걸어왔는데 여기서 길이 없어졌어요. 차 옆으로 돌아가면 저쪽 가게 좌판이 있을 거고요. 아까부터 뭐 빻는 소리가 저쪽에서 났으니까."


권미옥이 말했다.


"이 골목 쓰는 사람 중에 눈 안 보이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셔야죠."


한참 조용했다.


"맞습니더."


목소리가 말했다.


"죄송합니더. 바로 빼겠습니더."


다시 문 소리가 났다. 엔진 소리가 났다. 차가 뒤로 빠졌다. 한참 걸렸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했다. 어디선가 다른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 든 목소리였다.


"원효야 니 드디어 혼나네."


차가 골목 밖으로 나갔다. 엔진 소리가 멀어졌다.


권미옥이 지팡이를 다시 저었다. 길이 있었다.


좀 걷다가 나이 든 목소리 쪽에 물었다.


"심의당이 어디예요?"


"이 앞 건물 2층이오. 아가씨 방금 그 차 주인이 그 집 원장이오."


권미옥이 걸음을 멈췄다.


"……아."



4


계단 입구를 찾았다. 지팡이 끝이 턱에 걸렸다.


나무 계단이었다. 첫 칸을 밟으니 삐걱 하고 울었다.


권미옥은 계단을 셌다. 버릇이었다. 둘 셋 넷. 소리가 칸마다 달랐다. 5번째 칸에서 소리가 한 음 낮아졌다. 나무가 한 번 갈라졌다가 붙은 소리 같았다. 7번째 칸은 소리가 안 났다. 누가 최근에 손을 본 것 같았다. 8번째부터 다시 삐걱거렸다.


14칸이었다.


위에 문이 있었다. 유리문이었다. 손잡이가 차가웠다. 밀었다.


따뜻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냄새가 더 진했다. 뭔가 끓고 있었다. 물 끓는 소리가 낮게 보글거렸다. 그 위로 폰에서 나오는 작은 소리가 있었다. 누가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20대 후반쯤. 폰 소리가 멈췄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예약은 안 했어요."


"괜찮아요. 들어가시면 되는데요."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권미옥의 오른팔 위쪽을 손이 확 잡았다.


권미옥이 잠깐 몸을 굳혔다.


"제가 잡을게요."


"네?"


"팔꿈치 살짝만 빌려주세요. 제가 잡고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갈게요."


손이 떨어졌다. 조금 머뭇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 나서 팔꿈치가 권미옥 손 쪽으로 왔다. 권미옥이 그 팔꿈치 바로 위를 가볍게 쥐었다.


가늘었다. 그리고 떨렸다. 아주 조금.


"이렇게요?"


"네. 좋아요. 문 지날 때만 말해주세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여자가 천천히 걸었다. 권미옥이 반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팔꿈치가 조금 뒤로 오는 게 느껴졌다.


"문이요."


"네."


"저 3년 여기 있었는데 이렇게 하는 거 처음 알았어요."


"다들 모르세요. 끌고 가시는 분이 제일 많아요."


"죄송해요."


"괜찮아요. 방금 배우셨잖아요."


여자가 작게 웃었다.



5


진찰실은 대기실보다 조금 서늘했다.


냄새가 달랐다. 한약 냄새 밑에 나무 냄새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였다. 그리고 달콤한 냄새가 있었다. 군고구마였다. 방금까지 누가 먹은 냄새였다.


의자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무거운 사람이 일어서는 소리였다.


"어서 오이소."


골목의 그 목소리였다.


권미옥이 여자 안내로 의자에 앉았다. 여자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맞은편 의자가 다시 삐걱였다. 무게가 실리는 소리였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더."


"차 빼셨어요?"


"뺐습니더. 골목 밖에 댔습니더."


"앞으로도요?"


잠깐 조용했다.


"앞으로도 그러겠습니더."


권미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까 화내서 죄송해요. 원장님인 줄 모르고요."


"원장인 줄 알았으면 안 내셨겠습니꺼."


권미옥이 잠깐 생각했다.


"……냈겠죠."


앞에서 짧게 웃는 소리가 났다. 숨이 코로 빠지는 웃음이었다.


"그라모 잘하신 겁니더."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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