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 감지

by김경훈

[휴대전화 메모]


기기 · 회사원 개인 휴대전화

앱 · 기본 메모장

발견 · 오피스 빌딩 엘리베이터 바닥

신호 · 없음

배터리 · 1퍼센트

상태 · 저장됨



23시 47분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기록해둔다. 나중에 관리사무소에 따질 때 쓰려고.


야근하고 12층에서 탔다. 우리 회사 층이다. 이 건물은 지상 15층 지하 2층이다.


1층 누르고 탔는데 9층쯤에서 덜컹 하더니 멈췄다.


불은 켜져 있다. 환풍기도 돈다. 층 표시는 9에서 안 바뀐다.


비상벨 눌렀다.


관리실 연결됐다. 경비 아저씨 목소리다. 나이 좀 있으신 분.


기사님 부르겠다고 20분에서 30분 걸린다고 하셨다.


괜찮다고 했다. 사실 안 괜찮다. 나 오늘 아침 7시에 출근했다.


야근한 이유를 적어두겠다. 이것도 나중에 따질 거라서.


팀장님이 오후 6시 58분에 자료를 수정해달라고 했다. 내일 아침 회의용이라고.


6시 58분이다. 퇴근 2분 전이다.


팀장님은 이런 걸 잘한다. 타이밍의 장인이다.


그 자료를 11시 40분에 끝냈다.


팀장님한테 메일 보냈는데 읽음 표시가 바로 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답장은 안 왔다.


아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다.



23시 52분


같이 탄 사람이 있다.


남자고 정장이다. 서른 중반쯤. 넥타이를 반쯤 풀었다. 야근한 사람 얼굴이다.


언제 탔는지 모르겠다.


12층에서 내가 탔을 때 이미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위층에서 내려온 사람인가 보다.


13층부터 15층까지는 다른 회사들이다.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자주 이래요 이거.


나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이랬다.


저는 몇 번 있어요. 금방 와요.


목소리가 차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차분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좀 낫다. 나까지 차분해지는 척할 수 있으니까.



23시 58분


폰 신호가 없다.


엘리베이터 안이라 원래 잘 안 터진다. 그래도 한 칸은 뜨는데 오늘은 없다.


와이파이도 없다.


그 사람한테 폰 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이 폰을 안 꺼냈다.


저는 폰을 사무실에 두고 왔어요.


야근하고 나가는 길에 폰을 두고 나가는 사람이 있나.


있겠지. 피곤하면.


나도 오늘 회사에 텀블러 두고 나왔다.



0시 4분


층 표시가 바뀌었다.


9에서 8로.


움직임은 없었다. 몸이 아무것도 못 느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 배 속이 살짝 뜨는 느낌이 있다. 그게 없었다.


그냥 숫자만 8로 바뀌었다.


그 사람한테 봤냐고 했다.


그 사람이 층 표시를 보더니 이랬다.


내려가나 보네요.


근데 안 움직이잖아요 했다.


그 사람이 이랬다.


천천히 가는 거겠죠.


나는 이 사람이 너무 차분한 게 좀 거슬리기 시작했다.


차분한 사람 옆에서 혼자 불안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 같다.



0시 7분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영화에서 보면 손가락을 문틈에 넣고 양쪽으로 벌리잖아.


해봤다.


손톱이 들어갈 틈도 없다.


그 사람이 뒤에서 보고 있다가 이랬다.


그거 안 열려요.


해보셨냐고 했다.


그 사람이 이랬다.


많이요.


많이라는 말이 좀 걸렸다.


몇 번 갇혀 봤다고 아까 말했으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많이는 몇 번이 아니라 오래라는 뜻처럼 들렸다.


손톱 끝이 좀 까졌다. 따끔하다.


그 사람한테 손 좀 보여줄 수 있냐고 물을 뻔했다.


그 사람 손톱도 이런지 보고 싶었다.


안 물었다.


물어보면 보여줄 것 같았다.



0시 11분


7.


6.


5.


일 분에 한 층씩 내려간다.


몸은 여전히 아무것도 안 느낀다.


비상벨을 다시 눌렀다.


관리실 아저씨가 받았다.


지금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층 표시가 바뀐다고.


아저씨가 잠깐 조용하더니 이랬다.


모니터에는 9층 정지로 나오는데요.


나는 층 표시가 5라고 했다.


아저씨가 이랬다.


센서 오류일 수도 있어요. 움직이는 느낌 있으세요.


없다고 했다.


그럼 정지해 있는 거예요. 기사님 곧 도착하세요.


인터폰을 놓고 그 사람을 봤다.


그 사람이 층 표시를 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0시 17분


그 사람이 이름을 물었다.


통성명이나 하자고 했다. 어차피 같이 갇혔으니까.


나는 이름을 말했다.


그 사람이 그 이름을 한 번 따라 했다.


천천히 한 글자씩.


외우는 것 같았다.


그러고 이랬다.


좋은 이름이네요.


그 사람 이름을 물었다.


그 사람이 이랬다.


저는 여기 오래 있었어요.


그건 이름이 아니잖아요 했다.


그 사람이 웃었다.


그러고 이랬다.


이름은 좀 있다가 알려드릴게요. 제가 기억해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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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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