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五味)

20부

by김경훈

오미자는 껍질과 살이 달고 시며 씨는 맵고 쓰고 전체에 짠맛이 있어 오미(五味)라 한다. 흩어진 기를 거두어들인다. — 《본초강목》



1


심의당이 문을 닫은 건 시월 첫째 주 토요일이었다.


박나리가 그 공고를 붙였다. A4 용지에 프린트해서 유리문에 테이프로 붙였다. 십월 사일 토요일 휴진합니다. 그렇게만 썼다.


붙이면서 박나리는 좀 이상했다.


삼 년 동안 심의당이 문을 닫은 날은 명절과 일요일뿐이었다. 토요일에 닫은 적이 없었다. 김원효가 아파서 쉰 적도 없었다. 감기에 걸려도 나왔다. 한번은 발목을 접질려서 절뚝거리면서도 나왔다.


그런 사람이 토요일에 쉰다고 했다.


이유는 봉화였다.


시작은 화요일이었다. 노만수가 이 층에 올라왔다. 후각을 잃고 나서 심의당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가끔 올라왔다. 진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올라와서 앉아 있다 갔다.


그날은 앉지도 않고 말했다.


"원장님 토요일에 봉화 갈 낀데."


"봉화요."


"오미자 사러. 매년 이맘때 간다."


김원효가 진찰실에서 나왔다.


"올해도 가십니꺼."


"가야지."


노만수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같이 갈래?"


김원효가 노만수를 봤다.


"손으로 하는 거 배운다며. 가게에서 보는 거는 한계가 있다. 밭에서 봐야 안다."


박나리가 옆에서 그 대화를 들었다.


"토요일은 진료가 있는데예."


"그럼 말고."


노만수가 돌아섰다.


"가겠습니더."


박나리가 고개를 들었다.


노만수가 돌아봤다.


"진료는."


"닫겠습니더."


노만수가 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닫는다꼬?"


"예."


"니 십 년 동안 토요일에 닫은 적 없다 아이가."


"오늘 처음 닫습니더."


노만수가 잠깐 김원효를 봤다.


"그래라 그럼. 아침 여섯 시에 출발한다."


"여섯 시요."


"밭일은 아침에 한다."


노만수가 계단을 내려갔다.


박나리가 김원효를 봤다.


"진짜 닫아요?"


"어."


"환자들 어떡해요."


"월요일에 오면 된다."


박나리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응."


"저도 가면 안 돼요?"


김원효가 박나리를 봤다.


"니가 왜."


"저 봉화 안 가봤어요."


박나리가 말했다.


"그리고 심의당 닫는 날 저 혼자 뭐 해요."


김원효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여섯 시다."


"알아요."



2


토요일 아침 여섯 시에 약령시 골목에 차가 서 있었다.


람보르기니 우루스였다.


노만수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작업복 차림이었다. 장화를 들고 있었다. 차를 보고 잠깐 서 있었다.


"이걸 타고 간다꼬."


"예."


"봉화를."


"예."


"밭에."


"예."


노만수가 차를 한 번 더 봤다.


"포르쉐는."


"짐이 많이 실린다고 하셨잖습니꺼."


"그래서 이걸 가져왔나."


"이게 더 실립니더."


노만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나리가 골목 안쪽에서 걸어왔다. 후드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차를 보고 멈췄다.


"오늘 이거예요?"


"어."


"트럭 아니고요?"


"트럭이 어딨노."


박나리가 차에 탔다. 뒷자리였다. 노만수가 조수석에 탔다. 장화를 발밑에 놓았다.


시동이 켜졌다.


노만수가 좌석에 앉아서 잠깐 가만히 있었다.


"이게 얼마꼬."


"안 가르쳐드리겠습니더."


"그래 안 가르쳐줘도 된다."


차가 골목을 나섰다.



3


중앙고속도로를 탔다.


일곱 시가 좀 넘어서 안동을 지났다. 창밖으로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구는 분지라서 산이 멀리 있는데 여기는 산이 가까웠다. 도로 옆에 바로 산이 붙어 있었다.


박나리가 뒷자리에서 창밖을 봤다.


"산이 많네요."


"경북 북쪽이 다 산이라."


노만수가 말했다.


"봉화는 더하다. 거기는 논이 별로 없어. 밭도 다 비탈이고."


"그럼 뭐 해요?"


"산에서 나는 거 한다. 송이 나오고 약초 나오고 오미자 하고."


박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미자가 왜 봉화예요?"


"추워야 되거든."


노만수가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오미자는 밤낮 온도 차가 커야 색이 진해지고 맛이 든다. 봉화가 산골짜기라 밤에 푹 떨어진다. 그래서 봉화 게 좋다."


"온도 차가 나면 왜 좋아져요?"


"고생하면 진해진다."


노만수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깐 있었다.


"사람도 그런가 모르겠다마는."


김원효가 운전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덟 시쯤에 휴게소에 들렀다.


김원효가 우동을 두 그릇 시켰다. 노만수가 그걸 봤다.


"두 개 시켰나."


"예."


"누구 주는데."


"제가 먹습니더."


노만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나리는 호두과자를 샀다. 차에 타서 먹었다. 김원효가 뒤로 손을 내밀었다. 박나리가 두 개 줬다. 김원효가 손을 안 거뒀다. 박나리가 세 개 더 줬다.



4


춘양에 도착한 건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읍내를 지나서 산길로 들어갔다. 길이 좁아졌다. 아스팔트가 끝나고 콘크리트가 됐다가 그것도 끝났다. 흙길이 나왔다.


박나리가 창밖을 봤다.


"여기 차 들어가요?"


"들어가야지."


노만수가 말했다.


"매년 트럭으로 왔다."


김원효가 속도를 줄였다. 길 양쪽으로 풀이 자라 있었다. 차 옆구리에 풀이 스쳤다.


"긁힐 낀데."


노만수가 말했다.


"괜찮습니더."


"안 괜찮을 낀데."


차가 흙길을 올라갔다. 바퀴가 한 번 헛돌았다가 잡혔다. 김원효가 뭔가를 눌렀다. 차가 조금 높아졌다.


노만수가 그걸 봤다.


"이거 높아지나."


"예."


"이런 차가 이런 길을 가나."


"이 차가 원래 이런 길 가는 차라고 하던데예."


"진짜가."


"광고에서 봤습니더."


노만수가 창밖을 봤다.


"광고 만든 사람이 봉화는 안 와봤을 낀데."


박나리가 뒷자리에서 웃었다.



5


밭이 나왔다.


비탈이었다. 산 중턱을 깎아서 만든 밭이었다. 오미자 덩굴이 줄줄이 서 있었다. 지지대에 덩굴이 올라가 있고 그 아래로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박나리가 차에서 내려서 그 광경을 봤다.


붉었다.


포도처럼 송이로 달려 있었는데 포도보다 알이 작고 색이 더 붉었다. 아침 햇빛에 붉은 게 반짝였다.


"예쁘다."


박나리가 말했다.


"예쁘지."


노만수가 장화를 신으면서 말했다.


"딸 때는 안 예쁘다."


밭 안쪽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노인이었다. 일흔 넘어 보였다.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있었다. 손에 붉게 물든 장갑을 끼고 있었다.


"만수 왔나."


"예 형님."


노인이 노만수한테 손을 들었다. 그러다가 차를 봤다.


멈췄다.


"저기 뭐꼬."


"차입니더."


"저기 무슨 차꼬."


"저도 잘 모릅니더."


노인이 차를 한참 봤다. 그러고는 김원효를 봤다.


"이 사람은."


"대구 약령시에서 한의원 하는 사람입니더. 김원효라고."


김원효가 인사했다.


"김원효라 캅니더."


노인이 김원효를 위아래로 봤다.


청바지에 회색 티셔츠였다. 흰 가운이 없었다.


"한의사가."


"예."


"한의사가 이런 차 타나."


"예."


노인이 노만수를 봤다.


"만수야 이 사람 진짜 한의사 맞나."


"맞습니더."


"그라모 됐다."


노인이 밭 쪽으로 손을 저었다.


"들어와라. 일손 모자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28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49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부정(扶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