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부
사기가 몰려드는 것은 그 기운이 이미 허하기 때문이다. 병이 깊으면 사기를 치려 하지 말고 정기를 붙들어라. — 《황제내경》 소문편
1
한영식은 나무를 삼십 년 만졌다.
대구 서구에서 목공소를 했다. 상호는 없었다. 간판도 없었다. 그냥 작업장이었다. 아는 사람만 찾아왔다. 가구를 짜기도 했고 고치기도 했다. 요즘은 고치는 일이 더 많았다. 새로 짜는 건 공장에서 나오는 게 싸니까.
한영식은 그게 서운하지 않았다.
고치는 게 더 어려웠다. 새로 짜는 건 도면대로 하면 되는데 고치는 건 남이 만든 걸 읽어야 했다. 어떻게 짰는지 왜 그렇게 짰는지 어디가 먼저 상했는지. 그걸 읽고 나서야 손을 댈 수 있었다.
한영식은 삼십 년 동안 남이 만든 걸 읽었다.
배가 아프기 시작한 건 봄이었다.
등도 같이 아팠다. 명치에서 등으로 뚫고 가는 것 같았다. 한영식은 처음에 자세 때문인 줄 알았다. 목수는 허리를 구부리고 일한다. 삼십 년이면 어디든 나간다.
파스를 붙였다. 나아지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서 살이 빠졌다. 밥맛이 없었다. 먹으면 더부룩했다. 두 달에 팔 킬로그램이 빠졌다. 아내가 병원에 가자고 했다.
칠월에 대학병원에 갔다.
CT를 찍었다. 다시 찍었다. 조직검사를 했다.
췌장이었다. 이미 간으로 갔다고 했다. 수술은 안 된다고 했다. 항암을 해보자고 했다.
한영식이 물었다.
"항암 하면 얼마나 삽니까."
의사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평균적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평균이라도 말해주세요."
의사가 숫자를 말했다.
"안 하면요."
의사가 다른 숫자를 말했다.
두 숫자 사이가 몇 달이었다.
한영식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
집에 와서 아내한테 말했다.
아내가 울었다.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딸도 왔다. 넷이 앉아서 얘기했다. 아들이 서울 병원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딸이 아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아내가 뭘 먹어야 좋은지 찾아봤다.
다들 싸우자고 했다.
한영식은 그 자리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에 아내가 잠들고 나서 한영식이 거실에 나와 앉았다. 불을 안 켰다. 어두운 데 앉아 있었다.
한영식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든 순간 한영식은 스스로 좀 놀랐다. 싸우고 싶지 않다는 게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살고 싶었다. 살고 싶은데 싸우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가 않았다.
한영식은 그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포기한 사람이 되니까. 가족들이 무너지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도 그 말을 하고 나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팔월에 항암을 시작했다.
첫 번째 사이클을 하고 나서 한영식은 사흘을 앓았다. 토하고 못 먹고 못 잤다. 입안이 다 헐었다. 손끝이 저렸다. 손끝이 저린 게 제일 무서웠다.
한영식은 손으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 사이클 전에 한영식이 목공소에 나갔다. 오랜만이었다. 대패를 잡아봤다. 손이 저려서 결이 안 느껴졌다. 나무를 밀었는데 결을 못 읽었다.
한영식이 대패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한참 앉아 있었다.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목공소에 가구 고치러 오는 단골이었다. 약령시에 이상한 데가 있다고 했다.
"거기 가면 암 고쳐줍니까."
"그건 아닐 낀데요."
"그럼 왜 갑니까."
단골이 잠깐 생각했다.
"거기 원장이 좀 다르다는데요."
한영식은 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3
약령시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한영식이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팔월 마지막 주였다. 더웠다. 한영식은 더위를 예전만큼 못 견뎠다. 몇 걸음 걷고 나니 숨이 찼다.
골목 입구에 차가 있었다. 짙은 남색이었다. 한영식이 그 차를 잠깐 봤다.
계단을 올랐다. 삐걱 끼익.
한영식이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숨을 고쳤다. 그러면서 계단을 봤다. 나무였다. 오래된 나무였다. 한영식이 손으로 난간을 짚었다.
느티나무였다.
한영식은 그걸 손끝으로 알았다. 손이 저린데도 알았다. 삼십 년이면 그 정도는 남았다.
이 층에 올라왔다. 유리문에 나무 현판이 붙어 있었다. 한영식이 그 현판을 봤다. 붓글씨였다. 나무는 오동나무였다.
문을 밀었다.
대기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폰을 보고 있었다.
"진료 받으러 왔는데요."
"들어가시면 돼요."
한영식이 진찰실 문을 열었다.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뚱뚱했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창밖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이소."
한영식이 앉았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꺼."
한영식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
"췌장암입니다. 사기고요. 간으로 갔습니다."
한의사가 한영식을 봤다.
"항암 중입니꺼."
"한 번 했습니다. 다음 주에 두 번째입니다."
한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말씀드릴 게 있습니더."
"말씀하세요."
"저는 암 못 고칩니더."
한영식이 그 말을 들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한약 먹고 암 나았다는 얘기 들어보셨을 낍니더. 저는 그런 거 못 합니더. 여기 오시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셨으면 지금 말씀드리는 게 낫습니더."
한영식이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뭘 하실 수 있는데요."
"그건 좀 있다 말씀드리겠습니더."
한의사가 말했다.
"먼저 하나 여쭤보겠습니더."
"뭔데요."
"여기 왜 오셨습니꺼."
한영식이 그 질문을 들었다.
한의사가 기다렸다.
한영식이 손을 봤다. 손끝이 저렸다.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는데 오셨습니꺼."
"……네."
4
"손이 저리십니꺼."
한의사가 물었다. 한영식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아세요."
"아까부터 손을 계속 보시길래예."
한영식이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항암 부작용입니다. 말초신경병증이라고."
"직업이 뭡니꺼."
"목수입니다."
한의사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십 년 했습니다."
"손으로 하셨겠네예."
"손으로 했죠."
"지금은예."
한영식이 대답하지 않았다.
한의사가 한영식의 손을 보자고 했다. 한영식이 손을 내밀었다. 한의사가 손바닥을 봤다. 굳은살이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저번 주에 대패를 잡아봤습니다."
한영식이 말했다.
"결이 안 느껴지더라고요."
한의사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삼십 년 동안 손으로 결을 읽었습니다. 눈으로도 보긴 하는데 눈은 속아요. 손이 정확합니다."
한영식이 말했다.
"근데 지금은 안 됩니다."
한의사가 손을 놓았다.
"맥 좀 보겠습니더."
한의사가 맥을 짚었다. 오래 짚었다. 혀를 보라고 했다. 배를 눌렀다. 한영식이 명치 근처에서 숨을 참았다.
"많이 아픕니꺼."
"참을 만합니다."
"진통제는예."
"먹습니다."
한의사가 손을 뗐다.
"몸이 많이 허합니더."
"당연하죠."
"밥은 드십니꺼."
"조금요. 넘어가질 않아요."
"몇 킬로 빠졌습니꺼."
"십이 킬로요."
한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5
"한의학에 부정거사(扶正祛邪)라는 말이 있습니더."
한영식이 고개를 들었다.
"부정(扶正)은 바른 기운을 붙들어준다는 뜻이고 거사(祛邪)는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뜻입니더. 병을 볼 때 이 두 가지를 같이 봅니더."
"네."
"병이 얕고 사람이 튼튼하면 거사를 합니더. 나쁜 걸 치는 기라예. 몰아내면 낫습니더."
한의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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