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킬로그램

by김경훈

[운전 일지]


장비 · 타워크레인 1기

높이 · 지상 118미터

경력 · 22년

현장 · 아파트 신축 공사

교신 · 무전기 1대

상태 · 운전 중



높은 데


타워크레인 기사는 하루에 두 번만 땅을 밟는다.


아침에 올라갈 때 한 번. 저녁에 내려올 때 한 번.


그 사이엔 118미터 위에 있다.


사다리로 올라간다. 마스트 안쪽에 철 사다리가 붙어 있다.


마스트는 크레인 몸통이다. 철골로 짠 네모난 기둥을 블록처럼 한 칸씩 쌓아 올린 거다. 건물이 한 층 올라가면 마스트도 한 칸 더 끼운다. 건물 따라 키가 크는 기둥이라고 보면 된다.


25분쯤 걸린다. 젊을 땐 15분이었다.


올라가면 조종석이다. 전화 부스만 한 유리 상자다. 의자 하나에 레버 두 개. 발밑도 유리다.


점심은 싸 들고 올라간다. 화장실은 없다. 페트병이 있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웃는데 나는 22년째 안 웃긴다.


높은 데서 일하면 좋은 점은 아무도 안 올라온다는 거다.


나쁜 점도 그거다.



바람


118미터 위에서는 바람을 몸으로 잰다.


계기판에 풍속계가 있긴 한데 나는 잘 안 본다. 엉덩이가 먼저 안다.


초속 5미터면 조종석이 숨 쉬듯이 흔들린다. 들숨 날숨. 그 정도는 졸린다.


초속 10미터면 의자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든다. 커피를 반만 따른다.


초속 15미터 넘으면 철골이 운다. 마스트 이음새에서 끼이익 하고 긴 소리가 난다. 그러면 작업 중지다. 내려갈 수도 없다. 사다리 타다가 날아간다. 그냥 앉아서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겨울엔 유리 상자 안이 냉동고다. 히터를 틀어도 발밑 유리로 냉기가 올라온다. 발가락이 먼저 죽는다.


여름엔 찜통이다. 쇠 냄새가 난다. 달궈진 철판 냄새에 그리스 녹는 냄새가 섞인다.


22년 맡으면 그게 집 냄새가 된다.



듣는 일


사람들은 크레인 기사가 다 보면서 일하는 줄 안다.


아니다.


절반은 안 보인다.


자재를 매다는 곳이 건물 뒤편이면 조종석에서는 벽만 보인다. 훅이 건물 너머로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깜깜이다.


훅은 크레인 끝에 매달린 쇠갈고리다. 거기다 자재를 건다. 낚싯바늘 큰 거라고 보면 된다. 낚싯대가 118미터짜리고 물고기가 철근 다발인.


그래서 신호수가 있다.


신호수는 땅에서 크레인 눈 노릇을 해주는 사람이다. 훅 밑에 서서 내 대신 보고 내 대신 말해준다.


땅에서 무전으로 불러준다.


선회 우로. 천천히. 하강. 하강. 스톱.


나는 그 목소리대로 레버를 민다.


선회는 크레인 윗도리를 빙 돌리는 거다. 우로 하면 오른쪽으로 돌리라는 소리. 하강은 훅을 내리라는 거고 스톱은 말 그대로 멈추라는 거다. 들어 올리는 건 인양이라고 한다. 이 몇 마디로 22년을 먹고살았다.


그러니까 이 일은 보는 일이 아니라 듣는 일이다.


이 현장 신호수는 김 반장이다. 예순이다. 목소리가 낮고 굵다. 쉰 소리가 섞여서 무전기로 들으면 자갈 굴러가는 소리 같다.


3년째 같이 한다.


나는 김 반장 목소리 높낮이만 들어도 훅이 땅에서 몇 미터 떠 있는지 안다.


스톱을 짧게 하면 아직 여유가 있고 길게 끌면 거의 닿은 거다.


신호수가 하강이라고 하면 나는 내린다. 왜냐고 안 묻는다. 밑에 뭐가 있는지 안 묻는다.


그게 22년 동안 내가 안 죽고 남도 안 죽인 비결이다.


듣는 대로 한다.



풍향계


퇴근할 때 크레인은 묶지 않는다.


선회 브레이크를 풀어둔다.


선회 브레이크는 크레인 윗도리가 못 돌게 꽉 잡아두는 브레이크다. 일할 때는 잡고 퇴근할 때는 푼다.


지브는 크레인 팔이다. 마스트 꼭대기에서 옆으로 길게 뻗은 철골. 훅은 그 팔 밑에 매달려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 이 크레인 지브는 60미터다. 반대쪽에는 짧은 팔이 하나 더 있고 거기 시멘트 덩어리를 매달아 놨다. 긴 팔이랑 무게 맞추라고. 놀이터 시소처럼.


풀어두면 밤새 지브가 바람 따라 돈다. 풍향계처럼.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면 크레인이 넘어갈 수 있으니까 바람 부는 쪽으로 몸을 돌리게 놔두는 거다.


아침에 올라가 보면 지브가 바람 부는 쪽을 등지고 있다.


22년 동안 늘 그랬다.


이 크레인은 안 그렇다.


올봄에 이 현장에 세운 크레인이다. 임대 장비다. 여기저기 현장을 돌다 온 놈이다.


이놈은 아침마다 북동쪽을 보고 있다.


바람이 북동풍이어도 북동쪽이고 남서풍이어도 북동쪽이다.


바람이 없는 날도 북동쪽이다.


처음엔 선회 브레이크가 덜 풀린 줄 알았다. 정비 기사를 불렀다.


정비 기사가 이랬다.


브레이크 다 풀려 있는데요. 손으로 밀어도 돌아가요.


그럼 왜 매일 같은 데를 보냐고 했다.


정비 기사가 지브 끝을 올려다보더니 이랬다.


거기 뭐 있어요?


북동쪽엔 강이 있고 강 건너에 큰 병원이 있다.



하중계


크레인에는 하중계가 있다.


훅에 매단 무게를 재는 거다. 조종석 계기판에 숫자로 뜬다. 정해진 무게를 넘으면 경보가 울린다.


훅 자체 무게는 영점으로 잡는다. 아무것도 안 매달면 0이 뜬다.


영점 잡는다는 건 저울 눈금을 0에 맞춘다는 소리다. 정육점 저울에 빈 접시 올려놓고 0 버튼 누르는 거랑 똑같다.


이놈은 70이 뜬다.


70킬로그램.


아무것도 안 매달았는데 70이다.


영점을 다시 잡았다. 0이 됐다.


다음 날 아침에 올라가 보니 70이었다.


또 잡았다. 또 70이 됐다.


정비 기사가 하중계를 바꿨다. 새 걸로.


70이었다.


정비 기사가 이랬다.


센서는 멀쩡해요. 진짜 뭐가 70킬로 매달려 있는 거예요.


훅을 끌어올려서 내 눈앞까지 가져왔다. 조종석 바로 아래까지.


훅은 비어 있었다.


쇠고리 하나에 와이어 네 가닥. 그게 전부다.


와이어는 쇠로 꼰 밧줄이다. 가는 철사 수백 가닥을 꽈배기처럼 꼬아 만든다. 맨손으로 쥐면 기름이 묻어나고 손바닥이 까슬까슬하다.


훅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날 바람이 초속 8미터였다. 빈 훅이면 그네처럼 흔들려야 한다.


꼼짝 안 했다.


사람 하나 매달려 있으면 그렇게 안 흔들린다.



밤 소리


그 주에 한 번 늦게까지 남았다.


자재가 늦게 들어와서 밤 9시까지 인양을 했다. 다 끝내고 김 반장이 먼저 퇴근했다. 나는 일지를 쓰느라 조종석에 혼자 있었다.


현장 불이 꺼지면 위는 정말 조용하다. 도시 소리가 멀리서 웅웅거리는 게 전부다.


그 사이로 소리가 들렸다.


삐걱. 삐걱.


와이어가 쇠고리에 쓸리는 소리였다. 그네 줄이 쇠막대에 감겼다 풀렸다 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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