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by김경훈

[배달 수첩]


일 · 집배

구역 · 언덕 동네 한 구역

경력 · 15년

하루 · 400통 안팎

바이크 · 110cc

쓰는 이유 · 나중에 확인하려고



순서


집배는 순서가 전부예요.


우편물을 받으면 먼저 정리를 합니다. 이걸 구분이라고 해요.


동선 순서대로 쌓습니다. 첫 집 것이 위에 오고 마지막 집 것이 아래로 갑니다.


그래야 가면서 위에서부터 꺼내 쓰죠.


이게 안 맞으면 하루가 망합니다. 골목에서 우편물 뒤지고 있으면 시간이 두 배로 가요.


15년 하면 구분하는 게 손입니다. 주소를 안 읽어도 손이 자리를 압니다.


제 구역은 언덕이에요.


대구에서도 오르막 심한 동네예요. 바이크로 못 가는 골목이 많아서 세워놓고 걸어 올라갑니다.


그래서 순서가 더 중요해요.


한 번 올라가면 그 위쪽은 다 하고 내려와야 하니까요.


두 번 올라가면 무릎이 나갑니다.


제 무릎은 이미 좀 나갔어요.



다리가 안다


제 동선을 설명하자면 이래요.


우체국에서 나와서 큰길을 타고 올라가다가 세탁소 앞에서 왼쪽으로 꺾습니다.


거기서부터 골목이에요.


골목을 돌아서 올라가면 꼭대기에 교회가 있어요. 거기가 제일 높은 데예요.


교회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오면 시장 뒷골목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큰길로 붙습니다.


그러니까 한 바퀴 도는 거예요.


왼쪽으로 돕니다.


15년 왼쪽으로 돌았어요.


이게 몸에 어떻게 남느냐면 다리에 남습니다.


올라갈 때 쓰는 근육하고 내려올 때 쓰는 근육이 달라요.


제 오른쪽 종아리가 왼쪽보다 굵습니다. 이건 병원에서도 확인했어요.


왼쪽으로 돌면서 오르막을 타면 오른쪽에 힘이 더 들어가거든요.


15년 그랬습니다.



언제부터


작년 여름부터예요.


어느 날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에 들어왔는데 다리가 이상했어요.


왼쪽이 아팠습니다.


저는 오른쪽이 아픈 사람이에요. 15년 오른쪽이 아팠어요.


그날은 왼쪽이 아프더라고요.


처음엔 잘못 걸었나 했어요. 넘어질 뻔한 적도 있고 그러니까요.


다음 날도 왼쪽이 아팠어요.


일주일쯤 그러다가 제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그날 동선을 떠올려봤습니다.


떠올려보니까 반대로 돌았더라고요.


세탁소에서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꺾었어요.


시장 뒷골목부터 시작해서 교회로 올라갔다가 세탁소 쪽으로 내려왔습니다.


15년 동안 한 번도 안 그랬어요.


그런데 그날 배달은 다 됐습니다.


민원이 없었어요.


한 통도 안 빠졌습니다.


그게 제일 이상해요.


방향을 바꾸면 반드시 빠집니다. 15년 하면 압니다. 순서가 꼬이면 한두 통은 놓쳐요.


안 놓쳤습니다.


그다음 날도 반대로 돌았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정신 차리면 그렇게 가 있습니다.


세탁소 앞에서 몸이 오른쪽으로 꺾어요.


제가 꺾는 게 아니라 다리가 꺾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안 빠지고 반대로 돌았어요.



앞사람


제 앞에 이 구역 하던 분이 계셨어요.


제가 들어왔을 때 인수인계를 해주셨습니다.


한 주 같이 돌았어요.


그분이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순서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때 그분이 세탁소에서 왼쪽으로 꺾으셨어요.


저는 그걸 보고 배웠습니다.


지도에는 오른쪽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분이 왼쪽으로 가셨어요.


제가 그때 여쭤봤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여쭤봤으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그분은 그해에 그만두셨어요.


인수인계 끝나고 한 달쯤 있다가 그만두셨습니다.


정년이 아직 남으셨는데 그만두셨어요.


국에 계신 분들한테 물어보니까 다리가 안 좋으셔서 그러셨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 안 좋으셨는지는 아무도 모르세요.



시간


시간이 같아요.


이게 제일 이상해요.


제 구역은 네 시간 반쯤 걸립니다. 15년 하면 오차가 15분 안쪽이에요.


반대로 돌아도 네 시간 반이에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우편물은 순서대로 쌓여 있잖아요. 첫 집 것이 위에 있고요.


반대로 돌면 마지막 집부터 가는 거니까 맨 아래 것을 먼저 꺼내야 해요.


그러면 가방을 계속 뒤져야 하고 시간이 훨씬 걸려야 합니다.


안 걸려요.


그날도 위에서부터 꺼냈어요.


꺼내면 그 집 거예요.


반대로 도는데 순서가 맞아요.



몸


작년 가을에 정형외과에 갔어요.


무릎 때문에 갔습니다.


의사가 사진을 보더니 이러더군요.


오른쪽이 많이 닳으셨네요.


저는 왼쪽이 아프다고 했어요.


의사가 이러더군요.


왼쪽은 깨끗한데요.


닳은 쪽은 안 아프고 깨끗한 쪽이 아픕니다.


의사가 이런 경우가 가끔 있다고 했어요. 반대쪽이 무리해서 그렇다고요.


그 말이 좀 이상했는데 그때는 넘어갔어요.


이제 생각해보면 제 오른쪽 무릎은 15년치가 닳은 거예요.


왼쪽은 작년 여름부터 쓰기 시작한 거고요.


그러니까 왼쪽이 아픈 게 맞습니다.


새로 쓰는 쪽이 아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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