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전에

by김경훈

[작업 일지]


일 · 간판 제작 및 철거

경력 · 20년

직원 · 나 포함 셋

차 · 1톤 사다리차

문제 · 상가 한 자리

쓰는 이유 · 나중에 보려고



간판


간판 다는 일을 20년 했다.


이 일은 두 가지다. 새로 다는 거하고 떼는 거다.


떼는 일이 더 많다. 이건 좀 서글픈 얘기인데 가게가 망하면 간판을 떼야 하니까 그렇다. 새로 여는 집보다 닫는 집이 많다.


한 자리에 간판을 세 번 단 적도 있다. 처음 단 사람이 2년 하고 나갔고 다음 사람이 1년 하고 나갔고 그다음 사람은 여덟 달 했다.


그 자리 얘기를 하려고 이걸 쓴다.


우리 동네 상가 1층 모퉁이 자리다.


목이 나쁘지 않다. 버스 정류장이 앞에 있고 유동인구가 있다.


권리금도 세다.


그런데 가게가 안 된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다 하는 얘기다.


저 자리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권리금은 세다.


안 되는 자리에 권리금이 센 건 앞뒤가 안 맞는다.


부동산 사장님한테 여쭤보니까 목이 좋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목이 좋으면 되어야 하는데 안 된다.


이 두 문장을 20년 동안 같이 들었다.



그 자리


내가 그 자리에 간판을 몇 번 달았느냐 하면 이게 좀 웃기다.


세어보려고 앉았다가 못 셌다.


장부가 있다. 우리는 작업하면 장부에 적는다. 요즘은 컴퓨터에 넣는데 옛날 건 종이다.


주소로 검색해봤다.


컴퓨터에 있는 건 11건이다. 2012년부터다.


종이 장부는 그 전 거다. 2005년부터 있다.


종이 장부를 다 넘겨봤다. 같은 주소 찾는 데 한나절 걸렸다.


9건이 나왔다.


합하면 스무 번이다.


20년에 스무 번이면 1년에 한 번이다.


이건 좀 심하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자주 바뀌는 자리다.


두 번째로 자주 바뀌는 자리가 여섯 번이다.


세면서 이상한 걸 하나 봤다.


우리 장부는 날짜 순이다.


그 자리 작업을 날짜 순으로 늘어놓으면 뗀 날하고 단 날이 번갈아 나와야 한다.


떼고 달고 떼고 달고 이렇게 간다.


두 번 어긋난다.


2009년에 뗀 기록이 있고 그다음에 또 뗀 기록이 있다.


중간에 단 기록이 없다.


2016년에도 그렇다.


안 단 걸 뗐다는 말이 된다.


우리 직원이 잘못 적었을 수도 있다. 20년치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뗀 건 돈을 받는다. 폐기물 처리비도 나간다. 영수증이 있다.


두 건 다 영수증이 있다.



떼는 날


간판 떼는 날은 분위기가 안 좋다.


새로 다는 날은 사장님들이 커피도 사주시고 그러는데 떼는 날은 아무도 안 나오신다.


혼자 와서 차 세워놓고 사다리 올려서 떼고 간다.


그 자리는 좀 다르다.


떼러 가면 사장님들이 나와 계신다.


스무 번 중에 열몇 번을 그러셨다.


가게 안에 앉아서 기다리시거나 밖에 서 계시거나 하신다.


떼는 걸 보신다.


내가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런가 했는데 아니다. 다른 자리에서는 안 그러신다.


한 분한테 여쭤봤다. 왜 나와 계시냐고.


그분이 이러셨다.


이거 떼는 거 봐야 될 것 같아서요.


왜 그러시냐고 여쭤봤다.


그분이 이러셨다.


안 보면 안 떼어진 것 같아서요.


떼는 건 내가 떼는데요 했다.


그분이 웃으시더니 이러셨다.


그러니까요. 이상하죠.


그러고 끝까지 보셨다.


차에 싣는 것까지 보시고 들어가셨다.



새 사장님들


새로 여는 분들하고는 얘기를 좀 한다.


간판 달러 가면 몇 시간 걸리니까 그동안 얘기를 하게 된다.


다들 비슷한 얘기를 하신다.


여기 목이 좋더라구요.


권리금이 좀 세더라구요.


이런 얘기들이다.


그러다 꼭 이 얘기가 나온다.


여기 전에 뭐였어요.


내가 그 자리에서 몇 번 일했는지 아시니까 물으신다.


나는 알려드린다. 전에 뭐 하던 자린지는 알고 시작하시는 게 낫다.


그러면 그분들이 이러신다.


아 거기 전에.


여기서 멈추신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분들도 아시는 거다. 부동산에서 들었거나 동네 사람한테 들었거나 했을 거다.


그래서 아 거기 전에 하고 말을 꺼내신다.


그러고 안 이으신다.



멈추는 자리


처음에는 몰랐다.


사람이 말하다 마는 건 흔하다. 생각이 안 나서 그럴 수도 있고 말하기 싫어서 그럴 수도 있다.


작년쯤에 알았다.


멈추는 자리가 같다.


아 거기 전에.


여기까지 하고 멈추신다.


한 분이 아니라 여러 분이 그러신다.


내가 스무 번 중에 열 몇 번을 이 얘기를 들었다.


다 똑같다.


거기 전에까지 나오고 그다음이 없다.


그래서 내가 이어서 여쭤봤다.


전에 뭐요.


그러면 이러신다.


아 아니에요.


아니면 이러신다.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난다는 게 아니다. 방금 말을 꺼냈는데 기억이 안 날 리가 없다.


말을 꺼낸 사람이 그다음을 모르는 거다.


한 분은 좀 달랐다.


재작년에 들어오신 분인데 이분은 안 멈추셨다.


거기 전에 하고 이으셨다.


전에 옷가게였다면서요.


맞다고 했다.


그분이 또 물으셨다.


그 전에는요.


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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