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by김경훈

[적어두는 것]


일 · 요양보호사

경력 · 9년

지금 · 주간보호센터

어르신 · 스물두 분

나 · 쉰셋

쓰는 이유 · 뒤에 적음



이름


우리 일 하는 사람들은 이름으로 안 불려요.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어르신들도 그렇게 부르시고 보호자분들도 그렇게 부르시고요.


가끔 여사님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아가씨라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쉰셋인데 아가씨라고 불러주시면 그것도 좋죠 뭐.


이름으로 불릴 일이 별로 없어요.


이게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이 일이 원래 그래요.


9년 하다 보면 자기 이름을 며칠씩 안 듣는 날도 있어요.


집에 가면 애들이 엄마라고 하고 남편은 여보라고 하고요.


그러니까 제 이름은 요즘 어디에도 안 쓰여요.


이 얘기를 왜 먼저 하냐면 그래서 늦게 알아챘거든요.



부르는 말


치매 어르신들은 사람을 헷갈리세요.


이건 우리 일에서 제일 흔한 일이에요.


저를 딸로 아시는 분이 계세요. 며느리로 아시는 분도 계시고 동생으로 아시는 분도 계세요.


그러면 우리는 맞춰드려요.


아니라고 하면 어르신이 불안해하세요. 그게 더 안 좋아요.


그래서 딸이라고 하시면 네 하고 대답하고 며느리라고 하시면 또 네 해요.


9년 그렇게 했어요.


이름도 그래요.


어르신들이 저를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부르세요.


김 할머니는 저를 영자라고 부르세요. 그분 언니 이름이래요.


박 할아버지는 저를 경숙이라고 부르세요. 그분 딸 이름이에요.


이 할머니는 저를 순이라고 부르세요. 누군지는 말씀 안 하세요.


다 다르잖아요.


다르니까 정상이에요.


각자 자기 사람을 저한테 보시는 거니까요.



작년 가을


작년 10월쯤이었어요.


김 할머니가 저를 부르시는데 영자가 아니었어요.


정숙아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또 다른 분이랑 헷갈리셨나 했어요. 그럴 수 있거든요.


네 하고 갔어요.


그날 오후에 박 할아버지도 저를 정숙이라고 부르셨어요.


이건 좀 이상했어요.


두 분이 서로 얘기를 안 하시거든요. 김 할머니는 여자 어르신들이랑만 계시고 박 할아버지는 창가에 혼자 계세요.


그래도 그날은 넘어갔어요.


일주일쯤 지나서 이 할머니도 그러셨어요.


순이가 아니라 정숙이라고요.


그때부터 좀 세어봤어요.


세어봤다는 게 숫자를 적었다는 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봤다는 거예요.


11월 되니까 거의 다 그러셨어요.


스물두 분 중에 열몇 분이요.



정숙이


저는 정숙이가 아니에요.


우리 센터에 정숙이라는 사람도 없어요.


직원이 여섯인데 다 이름을 알아요.


혹시 전에 계시던 선생님인가 싶어서 물어봤어요.


센터장님한테 여쭤봤는데 그런 분 없었대요.


센터가 문 연 지 7년인데 7년 동안 거쳐 간 사람 다 기억하신대요. 열몇 명 되는데 정숙이는 없대요.


그래서 어르신들 가족 중에 있나 싶었어요.


이것도 알아봤어요. 상담 기록에 가족관계가 다 적혀 있거든요.


스물두 분 가족 중에 정숙이가 두 분 계세요.


한 분은 어느 할머니 며느리고 한 분은 어느 할아버지 조카딸이에요.


그런데 저를 정숙이라고 부르시는 분들 중에 그 두 분 가족은 없어요.


관계가 없는 거예요.


인터넷에도 찾아봤어요.


우리 동네 이름이랑 그 이름을 같이 넣어서 검색해봤어요.


아무것도 안 나와요.


옛날 신문 같은 것도 찾아봤어요. 도서관 가서 사서 선생님한테 여쭤봤어요.


그분이 친절하게 알려주셨어요. 옛날 지역 신문 검색하는 법도 가르쳐주셨고요.


한나절 찾았는데 없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좀 우스웠어요.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어서요.


쉰셋 먹은 아줌마가 도서관에서 없는 사람을 찾고 있잖아요.


집에 와서 남편한테는 친구 만나고 왔다고 했어요.



안 헷갈리시는 분


우리 센터에 치매 아니신 분들도 계세요.


주간보호는 치매만 오는 게 아니에요.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혼자 계시기 어려운 분들도 오세요.


최 할머니가 그런 분이세요.


정신이 아주 맑으세요. 신문 읽으시고 텔레비전 뉴스 보시고 저랑 정치 얘기도 하세요.


그분이 12월에 저를 정숙아 하고 부르셨어요.


저는 그때 좀 놀랐어요.


할머니 저 정숙이 아니에요 했어요.


그분이 이러셨어요.


어 그래. 미안해.


그러고 몇 분 있다가 또 정숙아 하셨어요.


제가 또 아니라고 했어요.


그분이 자기 손을 보시더니 이러셨어요.


내가 왜 이러지.


그 말씀하실 때 목소리가 좀 떨리셨어요.


그분은 자기가 이상하다는 걸 아세요.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치매 어르신들은 모르시니까 괜찮은데 아시는 분이 그러시면 그건 다른 얘기잖아요.



동료


1월에 동료가 그랬어요.


같이 일하는 선생님인데 저보다 세 살 어려요. 4년 같이 했어요.


점심 먹는데 저를 부르는데 정숙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웃었어요.


무슨 소리야 하고요.


그 선생님이 어 하더니 미안하다고 했어요.


방금 왜 그렇게 불렀냐고 물었어요.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이러는 거예요.


언니 원래 이름이 뭐였죠.


4년 같이 일한 사람이 제 이름을 물어요.


제가 이름을 말해줬어요.


그 선생님이 아 맞다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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