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라보 베르가못 22

by김경훈

지난 여덟 편을 돌아보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다.


가죽 세 편. 오우드 두 편. 담배와 벽난로와 아이리스. 팔월의 대구에서 할 짓이 아니었다. 이 도시의 여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침 아홉 시에 이미 아스팔트가 데워져 있고 정오가 지나면 공기가 액체처럼 무거워진다. 그런 날에 자작나무 타르 향수를 손목에 올리는 건 학대에 가깝다.


그래서 오늘은 병을 바꿨다.


봉무공원 산바카라로는 나무가 많아서 그나마 낫다. 아침 일곱 시에 나섰는데도 셔츠가 등에 붙었다. 탱고는 나보다 더위를 탄다.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 그늘진 구간에 들어서면 속도가 조금 붙고 볕이 드는 구간에서는 눈에 띄게 느려진다. 개는 사람보다 정직하게 더위를 표시한다.


손목에서 오늘의 면담 상대가 열기를 만나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연구자: 이름이 베르가못 22입니다. 22가 무슨 뜻입니까.


베르가못 22: 재료의 개수입니다. 저희 집 규칙이에요. 주인공 재료의 이름과 전체 재료 수를 붙여 이름을 짓습니다.


연구자: 상당히 건조한 작명법이군요.


베르가못 22: 실험실 표기법에 가깝죠. 르라보라는 이름 자체가 실험실이라는 뜻이니까요. 향수에 낭만적인 이름을 붙이는 대신 성분표처럼 부르기로 한 겁니다.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났다. 자료를 다루는 사람에게 이건 익숙한 방식이다. 서지 기술도 그렇다. 바카라의 인상을 적지 않고 저자와 서명과 판차와 발행 사항을 순서대로 적는다. 감상은 배제하고 식별에 필요한 것만 남긴다. 르라보의 작명은 그 원리를 향수에 적용한 셈이다. 상포드 콜로뉴가 아니라 그냥 베르가못 22. 이 안에 스물두 개의 재료가 있고 그중 첫째가 베르가못이다. 그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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