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이 미야케 로 디세이

by김경훈

아침에 창을 여니 공기가 이상했다.


폭염경보는 어제와 똑같이 걸려 있는데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마르고 뜨겁기만 하던 며칠과 달리 뭔가 축축한 것이 얹혀 있었다. 살에 닿는 감촉이 미지근한 수건 같았다. 팔을 내밀어 보니 바람은 부는데 시원하지가 않다. 이런 날은 예보를 확인하지 않아도 안다. 어딘가에서 비가 준비되고 있다.


실제로 오늘 대구는 폭염 속에 소나기가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밤새 열대야가 이어졌고 낮 최고기온은 34도 언저리다. 이틀 전 입추에는 폭염중대경보까지 발령됐다. 절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이 축축함이 절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 끝나는 방식은 대개 이렇다. 갑자기 시원해지는 게 아니라 먼저 습해진다.


오늘의 면담 상대는 이런 공기를 위해 만들어진 향수다.



한 가지 미리 밝혀둘 것이 있다. 이 향수를 만든 사람은 향수를 싫어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비행기나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향에 시달리는 일에 지쳐 있었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 갇혀 남의 취향을 강제로 들이마시는 경험. 그 불쾌를 해결하려고 그가 택한 방법이 흥미롭다. 향수를 거부하는 대신 향수를 만들었다.


"싫어하는 것을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사라지게 하거나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이 대답이 이 향수의 전부라고 해도 좋다.



1992년에 나온 이 향수는 아쿠아틱이라는 계열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으로 꼽힌다. 조향사는 자크 카발리에. 이 연재 여덟 번째 편에서 만난 메종 마르지엘라 플라워 마켓을 공동 조향한 사람이다. 꽃시장의 젖은 바닥을 병에 담은 그 손이 이십 년 전에는 물 자체를 담으려 했던 셈이다.


물 냄새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물은 무취다. 정확히 말하면 순수한 물에는 냄새가 없고 우리가 물 냄새라고 부르는 것은 물에 섞인 다른 것들의 냄새다. 젖은 흙 젖은 돌 젖은 콘크리트 젖은 나뭇잎. 물은 냄새를 옮기는 매체이지 냄새의 주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물에서 냄새가 난다고 느낀다. 이 착각을 향수로 옮긴 것이 칼론이라는 합성 분자다.


칼론에는 재미있는 이력이 있다. 1951년 화이자가 개발했는데 원래 목적은 약이었다. 약으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고 대신 특유의 냄새가 주목받았다. 1966년에 판매가 시작되고 1970년에 특허를 받았다. 실패한 약이 새로운 감각의 문을 연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의도한 목적에서 벗어난 물건이 전혀 다른 자리에서 쓸모를 찾는 일. 자료의 세계에서도 자주 벌어진다. 세금 징수를 위해 작성된 장부가 몇백 년 뒤에 인구사 연구의 핵심 사료가 되고 검열을 위해 남긴 기록이 검열의 증거가 된다. 만든 사람의 의도는 자료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



한 가지 더 짚어둘 것이 있다. 물 향이 향수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성별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꽃은 오랫동안 여성의 것으로 나무와 가죽은 남성의 것으로 분류됐다. 근거는 빈약했고 시대마다 기준도 달랐지만 그 구분은 꽤 오래 유지됐다.


물은 그 구분에서 벗어나 있다. 전 세계 어디서나 맡을 수 있고 누구의 것도 아니다. 로 디세이가 나온 지 2년 뒤에 남성용 버전이 나왔는데 사실 원래 것을 남성이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 분류는 마케팅의 산물이지 향의 속성이 아니다.


첫 향은 서늘하다. 로터스와 멜론과 프리지아가 함께 올라오는데 어느 하나가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물에 희석된 것처럼 옅다. 여기에 시클라멘과 로즈 워터가 섞이면서 꽃이라기보다 꽃이 담겨 있던 물에 가까운 인상을 만든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플로럴 향수는 꽃을 보여주려 한다. 로 디세이는 꽃을 물에 담근다. 그래서 향의 윤곽이 흐릿하다. 또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데 잡으면 없다.


"제가 하려던 건 냄새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공기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이 향수는 뿌린 사람의 냄새를 바꾸기보다 그 사람 주변의 공기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남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는 향수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향수다. 향수를 싫어했던 사람이 만든 향수답다.



중반부에서 은방울꽃과 백합과 워터 피오니가 자리를 잡는다. 카네이션이 아주 옅게 섞여 있는데 이게 숨은 장치다. 카네이션은 클로브 같은 알싸함을 품고 있어서 물의 밋밋함에 미세한 각을 세운다. 이 각이 없었다면 로 디세이는 그냥 심심한 향수로 끝났을 것이다.


오후 두 시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탱고가 먼저 알았다. 거실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창 쪽으로 귀를 돌렸다. 몇 초 뒤에 소리가 왔다. 처음에는 실외기 위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였고 곧 창틀 전체를 두드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소나기다.


창을 조금 열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빗물이 닿으면서 올라오는 냄새가 훅 들어왔다. 페트리코라고 부르는 그 냄새. 달궈진 콘크리트와 흙이 물을 만나 한꺼번에 저장해 두었던 것을 뱉어내는 순간의 냄새다. 손목의 향과 창밖의 냄새가 잠깐 겹쳤다가 갈라졌다.


향수 쪽이 훨씬 깨끗했다. 바깥 냄새에는 흙과 먼지와 도시의 것들이 섞여 있었다. 로 디세이에는 그 부분이 빠져 있다. 물만 남기고 물이 지나온 자리를 지운 향이다.


이것이 이 향수를 두고 인공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근거이기도 하다. 실제 물 냄새에는 언제나 불순물이 있는데 이 향수에는 없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수영장 같다고 한다. 소독된 물. 사람이 관리한 물.


틀린 지적은 아니다. 다만 인공을 결점으로 볼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향수는 자연을 흉내 내려 한 게 아니라 자연에서 원하는 부분만 골라내려 했다. 편집에 가깝다. 그리고 편집은 결여가 아니라 선택이다.



저녁에 보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흥미로워했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없애려고 그 분야에 직접 뛰어드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비판만 하고 마는 사람과 대안을 만드는 사람 사이의 거리. 보보는 후자가 훨씬 어렵다고 했다. 싫다고 말하는 데는 근거만 있으면 되지만 대신 이걸 쓰라고 내미는 데는 바카라임이 따르니까.


병 이야기도 덧붙일 만하다.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는 향 자체뿐 아니라 병과 이름과 포장까지 전 과정을 감독했다고 한다. 손에 쥐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뿔에 가까운 형태다. 유리가 두껍고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어서 안정적이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어느 쪽이 위인지 손이 먼저 안다. 향수병은 대개 시각적으로만 설계되는데 이 병은 촉각까지 계산되어 있다.


베이스로 내려가면 화이트 머스크와 시더우드와 샌달우드가 아주 옅게 남는다. 오스만투스도 섞여 있다. 물이 마르고 난 자리에 남는 미네랄 같은 인상이다. 아침에 씻고 나온 사람의 피부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비누는 이미 씻겨 나갔고 향은 남지 않았는데 무언가 깨끗한 기척만 있는 상태.


지속력은 강하지 않다. 확산력도 크지 않다. 여름 향수로서 이 두 가지는 미덕이다. 폭염에 사람이 붙어 있는 지하철이나 강의실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향수는 폭력에 가깝다. 습도가 높으면 향 분자가 공기 중에 오래 머무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겨울처럼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로 디세이는 그런 실수를 하기 어려운 향수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비가 삼십 분쯤 내리다 그쳤다. 창밖에서 매미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잠시 멈췄던 소리가 한꺼번에 돌아오는 순간의 밀도가 굉장했다.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기온은 다시 오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삼십 분 동안은 다른 공기를 마셨다.


이 향수가 하는 일도 그 정도다. 더위를 없애 주지 않는다. 다만 삼십 분쯤 다른 공기를 마시게 해 준다. 그 정도로 충분한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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