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의 철학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비율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by김경훈

동성로 뒷골목에 융드립만 고집하는 카페가 있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아는 사람만 아는 곳으로 두고 싶은 이기심이 나한테도 있다. 낙트리도 그렇고 직립보행도 그런데 이 카페는 특히 그렇다. 자리가 몇 개 없고 주인이 커피 한 잔에 오 분씩 쓴다. 손님이 몰리면 감당이 안 되는 구조다. 그래서 나는 이 카페가 계속 한산하기를 이기적으로 바란다.


주인은 원래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물었다.


"고고학이면 땅 파는 거잖아요. 왜 커피를 해요?"


주인이 융에 물을 부으면서 대답했다.


"땅 파는 거랑 커피 내리는 거랑 비슷해요. 둘 다 시간을 다루거든요."


나는 이 대답이 좋았다. 그래서 단골이 됐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보보와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탱고는 내 발치에 엎드려 있었다. 이 카페는 탱고를 받아준다. 주인이 처음부터 "안내견은 당연히 되죠" 라고 했다. 이 말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걸 나는 알기 때문에 나는 이 카페에 오면 항상 융드립을 두 잔 시킨다.


주인이 커피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줄기 소리. 가늘고 규칙적이었다. 융드립은 물을 붓는 속도가 일정해야 한다. 너무 빠르면 밍밍하고 너무 느리면 쓰다. 그 사이의 어떤 지점. 나는 그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커피 맛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소리가 균일하면 맛도 균일하다.


"자기야." 보보가 말했다. "오늘 읽은 게 있는데."


"뭔데."


"황금비."


나는 잠깐 멈췄다.


황금비. 세상에서 가장 시각적인 개념 중 하나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의 수학. 나한테는 가장 먼 개념일 수도 있는 것.


"들어볼래?" 보보가 물었다.


"응."



보보가 읽어줬다.


선분을 가장 아름답게 나누는 비율. 1 대 1.618. 피라미드 파르테논 신전 로마네스크 성당이 이 비율로 지어졌다는 것. 르네상스 그림들이 이 비율을 따랐다는 것. 이 비율을 지키지 않은 건축물은 결국 무너진다는 주장도 있다는 것.


그리고 자연에도 황금비가 있다는 것. 나뭇잎이 서로 그늘을 만들지 않는 간격 사람 배꼽의 위치까지.


보보가 다 읽고 나서 말했다.


"근데 이거 자기한테는 좀 어려운 주제일까 봐 망설였어."


"왜?"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잖아. 파르테논 신전이 아름다운 걸 자기는..."


보보가 말을 멈췄다.


"못 보지." 내가 말을 이었다. "맞아. 못 봐."


카페가 잠깐 조용해졌다. 융드립 물줄기 소리만 났다.


"근데." 내가 말했다. "그게 재밌는 지점이야."



"내가 파르테논 신전을 못 보잖아." 내가 말했다. "근데 파르테논이 왜 아름다운지는 알아."


"어떻게?"


"비율이니까. 황금비는 사실 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야. 1 대 1.618. 이건 두 요소 사이의 관계잖아. 관계는 볼 필요가 없어. 느낄 수 있어."


보보가 잠깐 조용했다.


"예를 들면." 내가 말했다. "지금 이 카페 주인이 융드립 내리는 소리 들려?"


"응."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28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분리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