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귀한 분께 드리는 선물
‘가장 귀한 분께 드리는 선물’
이라고 검색했더니
값비싼 약들이 줄지어 다가옵니다.
몸에 좋은 약도 좋지만
그건 왠지 누구나 생각하는
익숙한 선물이 될 것 같아
추억을 그리며 깊이 찾아봅니다.
눈은 점점 흐려지고
맘은 점점 깊어지고
저속 노화에 좋다는 잡곡은
애써 밥 짓는 노동시간이 요구되고
먹고 나면 기억도 버려질 것 같아
다시 창을 닫아버리고
한순간만 피어나는 꽃도
기어이 아쉬워 다시,
‘가장 귀한 분’을
불러봅니다.
흔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고
시들지도 않을
오래 남을 선물
밤새워
따뜻하게 구워낸
종이에 흐르는 순수 속에서
눈은 빨갛게 취하고
맘은 고요히 가라앉는
추억으로 돋아난
글입니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데 이번만큼은 오랫동안 고민합니다.
저는 동료 선생님들께 신세를 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머리가 자주 아팠습니다. 코피도 자주 났지요.
힘들었던 10대의 방황과 6번의 실패 끝에 20대 끝자락에 교사가 돼서인지 교사가 된 후로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몸은 약한데 말이지요.
이건 또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정돈이 잘 된 결과를 ‘짜잔’ 하고 보여주고 싶지 어수선한 준비 과정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행 과정 내내 혼자 애써서 만드는 일이 많았지요. 그러다 보니 한 개의 업무가 끝날 때쯤이면 그동안 참았던 두통이 한꺼번에 찾아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 년 전에는 졸업식 담당이라 학년말 업무를 모두 마치고 졸업식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내일이 졸업식. 이제 다 마무리하고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팠지요.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는데 화장실까지 못 가고 복도에서 그만....... 바로 그 앞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바닥을 모두 치워주셨지요. 제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근도 하지 않고 두 선생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여교사 휴게실로 저를 끌고 가서는 몸 전체를 주물러주고 따뜻한 차를 마시게 해 주었지요. 한 시간 내내 제 곁을 지켜주시는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분들과 긴 시간 함께 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갚아야 했는데 저는 다른 학교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만남과 헤어짐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떠나고 나면 그 고마운 마음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옮긴 중학교에서 특별한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큰아이를 기르던 30대 중반,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지요. 아이가 어린 상황이었지만 모교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 늦게까지 남아 학교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엔 아픈 아이를 어머니께 맡기고 출근했지요. 그날 점심시간에 어머니께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약을 먹여도 열이 떨어지지 않고 아이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도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차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지요.
그때 옆 반 담임 선생님께서 제 사정을 아시고는
“선생님, 저 수업이 지금 없으니까 제 차로 함께 가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죄송했지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지요. 집에 도착해 아이를 업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그 선생님께서는 병원까지 함께 가주셨습니다. 진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다시 집까지 데려다주셨지요.
그분은 기술 선생님이십니다.
그런데 올해 옮긴 중학교에서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부끄럽게도 그분께 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옮긴 중학교에서는 3월 신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부장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오전에 발령 통보를 받았는데 그날 오후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모레 워크숍이 있으니 준비해 주세요.”
새로운 학교에서 나만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1박 2일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떠나기 전날 밤부터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 저는 그 기술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강원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차에는 저를 포함해 네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가는 내내 눈은 점점 감기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분위기를 깨는 게 두려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고 있었지만, 결국 조용히 약을 먹으며 말씀드렸습니다.
“부장님들, 제가 조금 아픈 것 같아요.”
저를 잘 아시는 기술 선생님께는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처음 보는 부장님들 앞에서는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부장님, 저 지금 토할 것 같습니다. 어떡하지요…….”
교감 선생님께서는 저를 보시더니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일단 방으로 올라가 쉬고 계세요.”
저는 부장 워크숍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호텔 방에 혼자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통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부장님께서 저녁 식사 후 짐을 풀러 오셨다가 제 상태를 보시더니 곧바로 나가셨습니다.
잠시 후 교감 선생님께서 급하게 들어오셨습니다.
“내가 아까 보니까 잔뜩 체한 것 같아요. 체할 때는 따는 게 제일이거든. 우리 애들 어릴 때 이렇게 침으로 따주었는데 효과가 있을 것 같으니까 손 한번 줘봐요. 뭐 썩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공이 생명과학이니까 믿어봐요.”
그러고는 제 손을 살펴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휴, 이것 봐. 검은 피가 줄줄 나오는 것 좀 보라고.”
옆에 계신 부장님께 제 상태를 설명하시면서 한참을 살펴주셨습니다.
“잔뜩 체한 게 맞았어.”
그리고 약을 먹고 조금 괜찮아지면 먹으라며 죽을 건네주셨습니다.
“우리 나갈 테니까 푹 쉬어요. 걱정하지 말고.”
“참, 소화제 하고 죽 하고 침하고 작년 교무부장님께서 사 오셨어요. 인근에 약국이 없어서 읍내까지 다녀오셨어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기술 선생님께 또 한 번 엄청난 신세를 졌다는 것을요.
새로 옮긴 학교의 교장, 교감 그리고 부장님들과의 첫 만남을 저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잊을 수 없는 엄청난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왠지 엄마 같았던 교감 선생님과 말이지요.
3월부터 여름방학 전까지 두 분은 제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분들이었습니다. 마침 기술실은 진로상담실 맞은편에 있어서 오다가다 자주 뵐 수 있었지요. 텃밭에 심은 작물들로 아이들과 음식을 만드시는 다정한 모습이 제 교무실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교감 선생님께서도 종종 찾아와 안부를 묻고 가시면서 저의 건강을 염려해 주셨지요.
처음으로 건너온 중학교 교사의 하루.
익히 알고 있는 업무가 아니었기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하루가 참 많았지만, 그 안에는 저를 아는 기술 선생님이 계셨고 바늘침으로 저를 회복하게 해 준 교감 선생님과 아픈 저를 걱정해 주신 부장님들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다행히 저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두통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두통으로 힘들어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최근 건강에 신경 쓴 것도 그렇지만 아프지 않을 만큼 이곳이 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머물게 하나 봅니다.
6개월.
푸근하게 정을 쌓아가고 있었는데 또다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기술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으로 승진해 지역을 옮기게 되었고, 교감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교감 선생님께서는 인근 학교로 발령을 받으셨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때때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두 분께 무슨 선물을 해드릴까 고민이 참 깊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지요.
제가 쓰는 글에 두 분과의 추억을 남긴다면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래도 참 많이 부족합니다. 두 분께 받은 정성에 비하면 말이지요.
고마운 마음, 온전히 다 드릴 수 없는 게 퍽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저 역시 아픈 이들의 곁을 지켜줘야겠다고도 생각해 봅니다.
받은 마음을 그대로 돌려드릴 수는 없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진로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선생님, 저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게 싫어요. 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그럴 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너의 부족함을 채워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네가 누군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단다.”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혼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순간이 옵니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다시 누군가의 곁에 설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도 이 두 분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신 분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그 이야기를 글로 남겨봅니다.
글 속에 담긴 훈훈한 마음이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길.
언젠가 이 글을 읽으신다면,
저도 당신들과 같은 마음으로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쁘게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 좋은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