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새를 가르쳐 준 아이에게

by별숲지기

새의 선물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떼를 지어 오가며 울더니

가장 먼저 새벽빛을 나르며

시끄럽게 아침을 짓는 것이

사랑인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 자식 앞에서는

자유로운 날개가 포근한 이불이 되고

지저귀는 입이 푸짐한 밥상이 되고

작디작은 눈은 넓은 가슴이 되는

어미 새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흙바닥으로 추락한 오후

아기새의 푸른 하늘빛이 어둠으로 접히는 순간

그 나뭇가지를 서럽게 흔들던 어미새의 한이

이 산 저 산을 넘어 저녁 노을로 찾아와

나무 둥지를 붉게 쓰다듬어주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오늘밤 부터

우리는 모두


까끌까끌한 어머니의 손길로

아침을 부드럽게 열겠습니다








오늘도 야무지게 우는 새들이 아침을 깨우는 알람보다 먼저 찾아왔습니다.

전에도 주변에 새들이 많았겠지만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올해 들어 새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생긴 것은 학교에서 ‘새박사’로 인정받는 한 학생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음 발령받은 중학교입니다.

고등학교에서만 오래 가르친 제 말투와 농담이 아이들에게는 조금 멀리 느껴졌을 테고, 저 역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이 낯설었습니다.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몇 번 실없는 소리를 건넸지만 그럴 때마다 새박사 학생은 제 말의 허점을 귀신같이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아이 앞에서는 괜히 조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요.

그 아이가 좋아하는 새를 저도 조금씩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제 삶에 새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였지요.

남편과 딸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사이 뒤뜰로 난 창문에서 난생처음 보는 아주 작은 새가 보였습니다. 가냘픈 긴 다리와 작은 몸통이었는데 그 작은 새 주위에 정말 아주 작은 새가 한 마리, 두 마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한 차에 뒤뜰로 나갔는데 상추밭 옆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죽은 줄 알고 놀랐는데 제가 저만치 발을 옮기자 그제야 조금씩 움직이는 거였습니다. 이때 갑자기 울타리 너머에서 굵은 소리를 내는 덩치 큰 새가 날아왔지요. 그러자 작은 것들이 하나둘씩 어미 새의 날갯죽지 사이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날개 안쪽으로 다섯 마리의 새끼들이 차례차례 들어가는 게 정말 신비로웠어요.

사진 찍어 검색해 보니 이름이 꼬마물떼새였습니다. 하천에서 산다는 그 새들이 저희 집 뒤뜰에서 어떻게 번식을 한 건지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 사실을 수업 시간에 이야기했지요.

“선생님,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언젠가 제가 까마귀를 독수리로 말한 적이 있는 터라 제가 또 잘못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즉각 부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아니야, 이번에는 정말 맞아. 내가 사진을 찍었는데 보여줄까”

제 사진을 차분히 보더니

“오, 저 여기 알아요. 선생님 댁이 하천 근처인가 보네요. 저희 회원들과 함께 이곳에서도 새들을 관찰하기도 했는데 요즘 이 지역에서 공사를 하느라 아마도 터를 잠시 옮겼나 보네요.”

새박사 학생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드디어 나를 믿어주는구나.... 하면서요.

또 새박사와 친한 아이도 제가 찍은 사진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아! 귀엽다. 선생님, 사진 정말 잘 찍으셨네요”라는 말까지 해주니 칭찬받아 기뻐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하루 종일 들떠있었지요.


그런데 다음 날 계획된 처마 공사가 이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공사로 하루 종일 집 주변이 흔들릴 것이니까요. 조금 걱정은 했지만 역시나 집에 와보니 아장아장 돌아다니던 새들이 모두 보이지 않았지요. 너무 서운하고 슬퍼서 옆 산으로 가봤는데 특이한 그 새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그 슬픈 사연을 학생에게 말했지요.

“선생님, 어차피 그 아이들은 다시 하천으로 갔을 거예요. 선생님 댁에 잠시 머문 거였지 오래 살 수는 없는 거였어요. 그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요.”

새박사는 그저 아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말했을 뿐인데 저는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와닿았습니다.

아이의 설명을 듣고 나니, 떠나간 새들을 조금 덜 서운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날 이후 저는 마당의 새들을 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새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쓰레기통 옆에 날개가 반쯤 꺾인 아기새가 웅크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이건 뭐지?’ 싶어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갔는데 그만 저희 집 강아지가 공격을 했지요.

차마 기억하기 싫은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하고 슬펐지요.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데 그 새를 치워야 해서 남편에게 말을 했지요. 남편은 주위를 한참 둘러보더니 상황파악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소나무 위를 보았지요. 둥지가 있었고 그 안과 나뭇가지에 새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최근에 부쩍 저희 집 마당에 새들이 자주 오고 갔습니다. 남편 말로는 새끼를 낳기까지 꽤 오랫동안 우리 집에 있었을 거라고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속상했습니다. 새를 나무 곁에 묻어두고 남은 아기새들은 정말 잘 지켜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새들을 살펴주었습니다.

어미새는 늠름했고 아기새들은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모습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쿵!’...

떨어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또 한 마리의 새가 잔디 위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얼른 남편을 불렀지요. 그랬더니 그 순간 또 저희 집 강아지가 달려오고 맞은편 나무 주변에서는 어미새가 엄청 큰 소리를 내면서 낮게 날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빠르게 다가와 아기새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옮겨 둥지가 있는 나뭇가지 위에 사뿐히 올려주었지요.

다음날 새들은 이나무에서 저나무로, 전깃줄까지 닿아 앉아있었습니다.

이제 새들은 모두 날아갔지만 생명을 지켜낸 그 순간은 오래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겠지요.

끔찍한 사건을 만든 우리 집 강아지 ‘산이’를 무조건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녀석도 여기로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여주비행장에서 어미랑 함께 살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털을 부드럽게 쓸어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사인 제가 아이들에게 세상을 가르치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한 걸음 다가갔을 뿐인데, 아이들은 제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새를 좋아하는 마음, 작은 생명을 오래 바라보는 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가 보이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나무 위 둥지를 올려다보게 되었으니까요.

개학하면 새 이야기로 2학기 진로 수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이야기를 새박사와 아이들은 어떻게 해설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선생님, 그 새는요…….”

아마 또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겠지요.


저는 아이들이 건네는 작은 세계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싶습니다.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 아이의 관심 하나를 오래 바라보면서요.

그렇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부끄럽지 않게 나이 들어가며

아이들이 꿈꾸는 것을 오래 응원하는 교사이고 싶습니다.



KakaoTalk_20260809_080551701.png학생에게 칭찬받았던 그 사진 속 주인공 꼬마물떼새 '어미새와 아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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