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찰자에서 동료가 되기까지
오십대.
여부장은.
무능하다.
당신의 말을 듣고
쓸쓸히
그곳을 나와
이곳에 왔습니다.
단 세 명을 향해 쏜 말의 화살이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눈이 침침해져 글 읽기가 조금 어렵지요
그래서 때로는 오타를 남기기도 하고
귀여운 오해를 만들기도 하고요
기억력이 흐릿해 메모를 자주 하지요
그런데 메모장이 보이지 않아 한참 찾다가
젊은 교사에게 살짝 물어보면 되고요
건강 검진일이 무서워 피하고 싶지요
그래도 약과 운동을 숙제로 내주는
똑똑한 의사가 있어 안심이고요
마음이 약해져 작은 실수에도 눈물이 나요
게다가 나이와 성별로 선을 그으면
마음이 금세 부서져요
지금 50대 여부장은 이런 마음을 그대로 옮겨
젊은 교사를 바라보았어요
형식에 맞지 않는 회의록 앞에서도
출장을 올리지 않고 출장 다녀온 신규 교사 앞에서도
엄격함보다는 다정함으로 품어준 어른 교사를 기억하면서
또렷한 눈과 귀는 점점 줄어가지만
닳아진 입은 당당하게 고백합니다.
고단한 젊은 교사의 하루를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기에
그 외로운 순수함이
언젠가는 꽃피울 것을 알기에
기꺼이
피어날 순간을 기대하며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봅니다.
그때 당신이 말했던
지금,
오십대 여부장은요.
꽃보다
꽃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기사문 좀 써 주세요."
고등학교에 있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었습니다.
행사를 기획하고, 학생들을 만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은 즐거웠지만
행사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보고서. 그리고 보도기사.
아이들을 위해 일한 시간보다 결과를 정리하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늘 생각했지요.
'교육은 아이들과 하는 것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종이 위에서 또 한 번 교육을 해야 할까.'
중학교로 옮기고 가장 신기했던 것은 아무도 저에게 기사문을 쓰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홀가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계속 보고서를 쓰는 제가 보였습니다.
학생 만족도를 정리하고, 사진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돌아보며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을까'를 적고 있었지요.
보고서는 누군가에게 제출하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저를 성장하게 하는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문만큼은 쓰지 않았지요. 굳이 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바로 학생 자치를 맡은 과학 선생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젊고 똑똑한 과학 선생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께서 만들어가는 정성스런 하루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나와 하나씩 준비하고,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남아 자료를 만들고,
학생들과 회의를 하고, 학부모와 만나고, 교사들과 의견을 나누고, 또다시 학생들과 토론 구조를 수정하는 모습. 그렇게 학교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새롭게 옮긴 학교는 디지털 선도 연구학교이자 질문이 있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업 속에는 디지털 시민성을 녹여야 했고, 자치활동 시간마다 학급 토의를 해야 했으며,
교사들은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운영하고, 워크숍을 통해 함께 공부하고 있지요.
저는 솔직히 조금 의아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의문을 품은 사람은 대부분 저처럼 조금 연륜이 있는 교사들이었습니다.
저는 학교가 흘러가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는 사람. 그저 잠시 있다 사라질 관찰자였던 거지요.
그 안에서 저는 진로교사로서 제가 맡은 일을 했고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분히 바빴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 진로체험이 두 차시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문득 생각이 스쳤습니다.
'우리 학교가 디지털 시민교육 연구학교라면, 진로교육도 그 흐름 안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질문하는 힘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고 마침 그러한 내용으로 바카라을 쓰신 미래전략가 최서연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해보았지요. 작년에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작가님의 바카라을 1학년 학생들이 제대로 읽지 못한 상태로 들은 특강이었기에 강연으로만 끝내기 아쉬워 도전 골든벨도 만들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도왔습니다. 다행히 만족도가 높았지요.
프로그램을 마치고 이상하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몰랐지요.
그 작은 선택이 학교 교육과정이라는 큰 퍼즐 속에 한 조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며칠 뒤에는 미래교육 관련 학부모 특강도 열었습니다.
학부모 대상 고입 설명회를 해 오던 상황에서 몇 몇 학부모님의
"아이들이 너무 일찍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시 최서연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면, 부모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많은 분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강연을 들은 학부모님들은
"이제야 학교가 왜 이런 교육을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이 참 오래 남았지요.
그리고 대토론회의 날.
체육관 가득 학생들이 모였고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걱정부터 했을 테지만 그날 스마트폰은 누군가를 공격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
학생 자치 담당인 그 젊은 과학 선생님은 학생들과 약속부터 확인했습니다.
비난하지 않기. 욕설하지 않기.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
학생들은 게임을 통해 규칙을 익혔고 드디어 토론을 위한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생각이 실시간으로 무대 스크린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손을 들고 직접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이에 학부모가 답했고
이어서 교사가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또 생각을 보탰습니다.
그 두 시간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마치 오래 준비한 공연을 무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스승의 마음 같았지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대토론회는 하루 만에 만들어진 행사가 아니라는 것을요.
일주일에 한 번 이어진 학급 토의. 교과 속에 스며든 디지털 시민교육.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함께 만든 토론 구조.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묵묵히 견뎌 온 교사들의 노력이 모여 피어난 꽃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꽃만 보고 있었던 거지요.
꽃을 피우기 위해 누군가가 매일 물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끄럽게도 보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던 젊은 교사들의 순수한 마음이 그곳에 있었던 거지요.
행사가 끝난 뒤, 담당 선생님은 교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남겼는데 참 가슴뭉클했습니다.
모든 분이 함께해 주셔서 가능했다고.
준비가 부족했던 것만 보여 마음이 무거웠다고.
그 글을 읽는 순간, 작년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홀로 보고서를 쓰던 밤. 아무도 모르는 허탈함.
그리고 다음 행사를 또 준비해야 했던 마음. 저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쓰고 싶은 기사문을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한 일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젊은 교사들의 땀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이 어떻게 한 송이 꽃을 피워 내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의 부끄러움과 젊은 교사를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정성껏 기록하고 싶었지요.
관찰자였던 제가 비로소 동료가 되어 가는 과정을.
스물네 해 동안 저는 학생들을 많이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젊은 교사들에게 배웠지요.
교육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좋은 교육과정은 한 사람의 열정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모여 완성된다는 것을.
그래서 앞으로 저는
학교 안에서 피어나는 가능성을 더 오래 바라보려고 합니다.
선배 교사이기 전에,
한때 저의 제자였던 젊은 교사들의 가능성을.
그리고 그들이 피워 낼 또 다른 꽃을,
조용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꽃을 피우는 사람이 아니라,
꽃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