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안부를 묻는 나의 제자 장미에게
- 가끔씩 안부를 묻는 나의 제자 장미에게
뿌듯한 그날처럼
오늘도 안부를 묻는구나
평온한 쉼을 일구기 위해
푸른 숲으로 찾아왔단다
번뇌로 얽힌 덩굴, 죄다 뽑아
흙내음 속으로 파묻었지만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미련에
꼼짝없이 묶이어
가슴 구슬피 쪼그라드는 날엔
햇살의 결을 닮은 눈들이 덜어낸 말의 조각을 찾아
마음의 길따라 하나하나 수 놓으면
온통 가시였던 대지가
벌들이 가득 취하는 꽃으로 일어나지
안부를 묻는 너의 말에
스르르 기지개가 켜지고
차오른 어둠 속에서도
빛이 다가왔어
장미야,
너가 나를 기억하듯
무심한 오늘도
붉게 눈 데워주는 손님이 있어
나는 내내 가슴 설레지
안부를 묻는다면
장미를 보여줄게
나의 제자, 장미
너에게 말이야
오십 중반으로 가는 나이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중학교 진로 교사,
처음에는 어리둥절 어수선했지만, 6월쯤이 되자 ‘내가 생각하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중학교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혼자 지내는 진로상담실, 처음에는 퍽 외로웠습니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징징거릴 수도 없고 그저 새롭게 옮긴 학교에 잘 적응하기만을 바랐지요.
아무리 말로 다그쳐도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들과 계속 엉뚱한 말로 수업의 흐름을 끊는 아이도 있어 부끄럽게도 수업 시간에 계속 헤맸습니다. 워낙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아이들을 뭐라 탓하기보다 생활지도에 약한 저의 무능함만 커다랗게 보여 참 부끄러웠습니다. 또 요즘 아이들의 관심사나 흥미에 대해 잘 모르는 탓에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는 것이 어려워만 보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스스로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지요. 참을성이 대단하다는 것과 차별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루는 4반 반장 아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요.
“선생님, 이런 상황에서 화 안 나세요?”라고요.
아직은 버틸 수 있는 선까지, 딱 그 경계를 우리 아이들이 다행히 넘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 저 오늘 태도 괜찮지요? 저희 담임 선생님께 꼭 말씀해 주세요”
담임 선생님께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꽤 얌전히 자리를 지켜줍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안전하게 6월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진로실은 원래 창고였다고 합니다. 교직원 화장실 옆이다 보니 화장실 방문길에 저를 스치게 되는 거지요. 처음에는 어색한 마음에 문을 닫고 있었는데 날이 더워지자 너무 답답해 문을 약간 열어놓고 지냅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벌컥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지금은 그런 방문이 저를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좁은 교무실인데 그 안에서도 제 바카라상은 칸막이로 둘러있어 누가 문을 열어도 자리에 앉아있으면 제가 보이지 않았지요. 그 답답함을 참고 있다가 어느 날 아침 시설 주무관님께 정중히 말씀드려 칸막이를 다 떼어놓았습니다.
이제는 문을 열면 제가 환하게 보이는, 가슴이 탁 트이는 상담실이 되었습니다.
이런 공간에 오늘도 다정이(가명)가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옵니다. 처음엔 노크해달라고 말해주었는데 자꾸 까먹는지 이젠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저도 그냥 편하게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벽이 없어진 느낌이 저에겐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배고픈데 먹을 거 없어요? 선생님 수업 없으면 다음 시간에 상담해 주세요. 친구랑 싸워서 기분이 나빠요” 등 진로상담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이는 아이들의 말을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아이들이 먼저 저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줍니다. 전자칠판 작동이 잘 안 되면 예전엔 요청해야 나와서 살펴 주었는데 지금은 자발적으로 나와서 점검해 주니까요.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아이들이 반에 한 명씩 있어서 이젠 든든하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를 찾아온 다정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다정이는 어떤 진로를 생각하고 있니?”
“결혼을 빨리하고 싶은데 아직은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우선 돈을 벌고 싶어요. 그러려면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야겠지요? 그리고 아기들을 너무 좋아해서 유치원 선생님도 되고 싶고요.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제과제빵도 배우고 싶고, 미용에 관심 있어서 메이크업 쪽으로도 배우고 싶고, 조금 더 안정적인 직업인 간호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다정이, 그런데 이 아이의 관심사를 죽 듣다 보니 옛 제자의 모습이 왜 이렇게 겹치던지요.
“네가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 돈도 모일 거야. 내 제자가 그랬거든”
이렇게 저는 옛 제자를 그리워하면서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제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정이도 자신감이 생겼는지 어떻게든 용기 내서 해보겠다고 합니다.
바로 ‘장미’라는 제 예쁜 제자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담임이 아닌 국어교사로 만났지요. 그때부터 저는 장미의 손재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바카라상 위에는 종이로 만든 장미꽃이 있었고, 연습장에는 누군가의 모습을 그리다 만 그림이 있었고, 겨울에는 뜨개질까지 하는 장면도 기억납니다. 간혹 저에게도 꽃을 예쁘게 접어주던 그런 장미를 고3 때는 담임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공부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지만, 생활을 꾸려가는 힘이 있는 아이였지요.
지금 같으면 위탁교육을 통해 미용 기술을 배울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엔 그런 제도가 없어서 혼자서 도시까지 나가 미용 기술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때는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장미의 힘듦이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그때 고생했을 아이의 마음이 자주 헤아려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장미가 미용실을 개업하는 날 찾아가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특히 잊지 못하는 건, 둘째 아이를 낳은 장미에게 제 둘째 딸과 함께 찾아간 날입니다.
“선생님이 엄마보다 먼저 와주셨어요. 고맙습니다”
장미의 첫째 딸과 제 둘째 딸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중학생 학부모가 된 장미를 보면서 제가 맡고 있는 학부모 업무에 대해 특별히 애착이 생기게 되었지요.
학부모님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더 생각하다 보니 생전 하지 않던 특강까지 하게 된 거지요. 그런 용기가 장미 덕분에 생긴 것입니다.
미용실이 잘 돼서 2호점을 냈고 바쁜 가운데도 아이들을 위해 해외여행도 매년 다녀오고 어머님을 정성으로 모시는 제 제자를 보면서 저는 또 한참 부끄럽기만 하네요.
몇 년 전에는 다른 친구들까지 연락해 그동안 말로만 소식을 전해 들었던 제자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지요.
그날의 따뜻함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같은 지역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기에 오랜 기간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골 마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전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오십이 넘으면 정말 여유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저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봅니다. 상황은 넉넉하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넓게 품으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메시지에 바로 답장도 못 하고 만나자는 약속도 선뜻 못해 서운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종종 안부를 묻는 제자가 있어 참 행복합니다.
오늘도 제자의 안부 하나가
제 마음을 오래 밝히고 있습니다.
-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온 나의 장미
(2026.6월의 어느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