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오월이면 우리는 다시 고등학생이 됩니다
그 때
노을이 번져오면
개구멍을 찾아 내달리던 녀석들
둑길 따라 이어지는 논두렁길
가을걷이가 끝난 자리에 둥글게 앉아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퍼지던 소리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달빛이 들어와
시무룩이 앉아 있는 응어리를
활활 태우고 있을 때
어둡게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가 번득여
뜨겁게 달궈진 심장을 다독이며
교실로 들어가던 녀석들
“화장실에 귀신이 있어나 보다”
선생님의 넉넉한 가슴이
포도송이만큼 달콤했던 시절
비밀의 소리가 메아리 되어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추어가며
저녁 어둠을 시원하게 빠져 나온 날들
지금은 어느 자리에 앉아
응어리를 건져 간
달빛의 향을 맡고 있을까?
수줍게 익어간 볼을 감싸주던
그리운 녀석들이
토닥토닥 구워 낸
서랍 속에 남은
이야기
해마다 오월이면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올해도 선생님 모시는 날 잊지 않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고등학생이 됩니다.
저는 어느새 시골 종합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앉아 있습니다.
돌아보면 ‘나로와서당 별숲지기’라는 이름도 어쩌면 그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곁을 오래 지켜봐 주는 마음.
그 마음을 저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서 먼저 배웠으니까요.
90년대 초 고등학생 때 쓴 일기장에는 하늘에 구멍이 나서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날은 우리 집 마당에 고무다라가 둥둥 떠다닐 만큼 비가 많이 왔습니다.
학교 근처에 사는 학생들에게 비상 연락이 왔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로 달려갔지요.
운동장 쪽에서는 축산과에서 기르는 소와 돼지들이 물에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돼지 꼬리를 만졌습니다.
허우적대는 돼지를 친구들과 함께 이층 교실로 밀어 올리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야자 시작 전 은행나무 숲에서 숨바꼭질하던 기억과 냇가에서 선생님과 함께 고기 구워 먹던 시간들.
오늘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마주하러 가는 시간 동안 그때 그 이야기들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어느덧 30년을 맞이하게 된 시간들, 저는 해마다 나가지 못했지만 늘 먼저 연락하고 모임을 챙기는 몇몇 친구들이 있어서 선생님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지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 앞에서 하나둘씩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난 선생님의 정성을 잊을 수가 없어. 우리 학교에서 내가 처음으로 미대입시를 준비했잖아. 아무런 정보가 없었는데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 주셔서 하고 싶은 꿈을 이룰 수 있었어. 선생님은 정말 나의 은인이셔”
금속 공예가 친구의 말도 들리고
“그래 맞아, 나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계속 방황했을 거야.” 실컷 혼났다던 친구의 말도 이어집니다.
저 또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내분은 간호사이었지요.
고 3병이었을까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잦은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저를 당신 신혼집에 데려가서 영양주사를 맞게 해 주셨으니까요.
친구들의 다양한 사연을 다는 못 들었지만 저마다의 빛깔로 스승과의 깊은 인연을 새겨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1학년과 2학년 때까지는 보통과 두 반이 함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며 한 반은 취업준비반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학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취업을 준비하는 아이들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때 등장하셨던 선생님. 제 담임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취업반을 선택한 아이들을 맡아 새로운 길을 알려주셨던 또 다른 담임 선생님.
대학준비반과 취업 준비반으로 보통과 두 반이 나뉘었지만 우리들의 소통은 갈라짐이 없이 두 선생님을 한 자리에 모시고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거지요.
선생님 두 분께서 깜짝 선물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상품권을 넣은 봉투를 제자들의 손에 하나하나 건네주시는 지리 선생님이자 우리반 담임 선생님이셨던 조기주 선생님과 친환경 계란과 오이를 정성껏 준비해 주신 농업교육에 헌신해오신 강승권 선생님.
두 분 모두 정년 퇴임을 하셨지만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우리들 곁에 남아있습니다.
옆반 친구들은 선생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자신의 결혼식 때 선생님이 직접 주례를 서주셨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도 주례 부탁은 했지만 그때 마흔이셨던 선생님은 부담스러워하셨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크셨던 걸까요.
선생님은 충청도의 작은 시골 예식장까지 잊지 않고 찾아와 축하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나이 드는 제자들의 건강과 그들의 자녀 교육까지 함께 마음 써주시는 영원한 담임 선생님이십니다.
친구들이 말합니다.
“선생님, 이런 자리 어디에도 없더라고요. 오늘도 온라인 게임에서 나올 때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도 이 모임에 간다고 하면 잘 다녀오라고 해요”
“얘들아, 내년에도 5월이다. 지금 이 친구들 꼭 다시 만나자. 부디 건강하게 말이야”
조금씩 아픈 친구들이 생기면서 이제는 서로의 건강을 걱정해 줍니다.
자리를 잠시 빠져나오자 멀리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선생님이나 우리들이나 다를 게 없었지요.
지금은 서로 살아가는 모습도, 자리도 달라졌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우리는 여전히 선생님 보호를 받는 그때 그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이 참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오래 남았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 누군가의 곁을 오래 지켜봐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로와서당 별숲지기’라는 이름도 그렇게 제 안에서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