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산조각 이후의 배움
지금까지 질질 끌고 온
비릿하게 꽁꽁 감아둔 시간들
그날은 흐릿한 구름도 없이
햇살이 노오랗게 밝은 오후였지요
눈빛으로 주고받는 언어의 사이에서
날카로운 초침으로 성급히 찔려
드디어 산산조각 부서졌습니다
한 발 디딜 수도 없이
꼼짝 없이 정지해 있는 마음
텅 빈 숲,
부드러운 기억을 담아내지 못한
헝클어진 숲의 미로에서
애써 꺼내지 않은 시간에 고개 숙입니다
흙먼지 사이에서
다시 시작하는 부끄러운 고백
오랜 시간 흐르다
정직하게 다다르는 숲을 따라
무릎을 일으키겠습니다
‘나로와서당 별숲지기 시소샘’
그 이름이 한동안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작년 한 해, 무거운 일들에 떠밀려 ‘부적응 내신’이라는 이름으로 중학교에 오게 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후배 교사들 앞에서 제가 꺼낸 말은 고작 이것이었습니다.
“중학교가 처음이라서 많이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중학교에서의 세 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나로와 서당’이라는 문패를 걸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별숲지기’였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불편했지만, 그 마음을 천천히 걷어내며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지리교육과를 나와 국어교사가 되었고, 국어교사에서 진로교사가 되었으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하다 중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중학교는 제 계획에 없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계획에 없던 일이 저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의 한계와 어리석음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기억들은 오래 머물며 저를 가만히 바라보게 했습니다.
어쩌면 오십이 넘은 제가 이 작은 시골 중학교에 오게 된 이유는 오래 붙들고 있던 낡은 생각들을 내려놓으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 떠올랐습니다.
.....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 불쌍한 내 머리를 /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 정호승 「산산조각」 중에서
여러 부분에서 산산조각이 나자 처음에는 참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그 시가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는 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생활지도가 비교적 어렵지 않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저는 오래 대입 지도를 해왔습니다.
그 안에서 보람과 성취감도 느꼈고, 제가 바라보는 세계가 꽤 단단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오자 그 단단하던 세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있을 때 저는 아이들을 대학을 준비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나누어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내에서 학교를 다니는 중학생들은 대체로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몇 개의 고등학교를 비교하며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곳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어차피 교통이 불편한 환경이라 그런지 오히려 시야를 넓혀 전국의 학교들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라 내신 성적에 따라 선택의 폭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더 일찍, 더 멀리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는 어디가 좋아요?”
“이 분야로 가려면 어느 지역 학교를 가야 해요?”
아이들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지역을 넘어섰습니다.
한 학생은 반려동물 산업에 관심을 보이며 경상도에 있는 펫고등학교를 물어왔습니다.
그 질문을 받고서야 저는 우리나라 곳곳의 반려동물 관련 학교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패션모델과를 찾는 학생도 있었고, 성우·웹툰·로봇·제과제빵처럼 제가 잘 알지 못했던 세계를 먼저 꿈꾸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 앞에서 저는 자주 멈춰 섰습니다.
진로교사라고 말하면서도 제가 알고 있던 것은 대부분 ‘대입’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저보다 더 넓은 세계를 먼저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계고 상담에서는
“등급 따기 괜찮을까요?”
“인서울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직업계고를 고민하는 아이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취업과 창업, 아르바이트와 노동에 대해 훨씬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단순히 진학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노동으로 자기 삶을 꾸릴 것인가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 질문들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인권 교육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특성화고에서 오래 근무하신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수능이 끝나면 슬롯는 ‘킬러문항’을 이야기하지만, 특성화고 학생들 중에는 그 말의 의미조차 낯선 경우가 많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안에서 무언가가 또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겨온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했습니다.
그 선생님은 국가의 관심이 소수의 학생들을 가려내는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도 조금 더 향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오래 생각했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교실.
어쩌면 오래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 아이들의 질문과 선택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인권 교육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성화고와 다양한 진로에 대해서도 하나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수업을 했고, 일주일 뒤에는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기대와 달리 또 한 번의 ‘산산조각’이었습니다.
공개수업에서는 보여주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과정 속에서 천천히 쌓아야 할 배움을 너무 빨리 결과로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부모 특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중학생 학부모님들보다 제가 익숙한 언어를 앞세우고 있었습니다.
설명은 많았지만, 정작 듣는 분들의 자리에는 충분히 서 있지 못했습니다.
특강이 끝난 뒤 한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것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배워가다 보면 저 역시 아이들 곁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진로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얼마 전에는 3학년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고입 담당인데요. 인근 고등학교 정보 아시면 공유해 주실 수 있으세요?”
쌍둥이를 키우며 바쁘게 지내는 중3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고등학교 자료들을 검색하고 모으면서
그제야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조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교정에는 아카시아 향이 가득합니다.
쑥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크고 작은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피어 있습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 하나씩 채워가면 되겠다고.
늦은 봄 아카시아 향이 머무는 교정에서
저는 오늘도 다시 나로와서당의 불을 켭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중학교 진로교사가 되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