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해야 한다
다음 주 롱위켄에 함께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2박 3일이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캐나다에 비슷한 시기에 온 한국인 가족이었다. 아이들도 잘 놀았고, 어른들과 나도 잘 맞았다. 연휴며 방학에는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반가웠다. 그렇게 함께 적응하며 돈독하게 지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딸이 그 집 친구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딸은 그 친구와 계속 놀고 싶어 했다. 그게 답답했다. 친구가 좋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속상한 일을 매번 감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에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도 된다는 걸 알았으면 했다. 딸의 마음을 존중하고 싶었지만, 속상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2박 3일 여행은 더 내키지 않았다. 아이들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 마음에 걸리는 일이 더 생길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집 엄마에게 애들끼리의 일을 꺼내기도 거북했다. 그 엄마와의 사이까지 불편해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좋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싫다고 말하려니 난감했다. 적당한 핑계를 대야 하나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니 상대가 상처받을 것 같고, 아무 일 없는 듯 여행을 가자니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여행을 거절했다가 지금까지 쌓아 온 친분이 서먹해질까 봐 걱정됐다.
딸이 친구 사이에서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런데 나 역시 난처해질까 봐 내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딸에게 화가 난 부분은 그 구석에 있었다. 나를 닮은 모습.
나는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금방 정을 쏟는다. 하기 어려운 말을 꺼내기 전에는 내가 조금 참으면 될 일인지부터 생각한다. 그런 선택이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모든 마음을 다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감추고 양보하는 일도 필요하다. 다만 내가 배려하는 것인지, 이 사이가 끝날까 봐 두려워서 말을 삼키는 것인지는 가끔 나도 헷갈린다.
딸은 분명 나와 닮은 구석이 있지만, 나와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딸에게는 딸만의 마음이 있고, 그 마음으로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배워 갈 시간도 필요하다.
문제는 내게 있다. 딸에게 다른 모습을 바라기 전에, 내가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부터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한다.
(얼마 뒤, 그 집 엄마가 먼저 이번에는 따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안도했다. 굳이 거절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우선 해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