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의 알래스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침대에 누워 있어도 여전히 배에 탄 듯 머리가 일렁였다. 옅게 흔들리는 진짜 까닭은, 어쩌면 내 마음속을 지나가는 연어 때문인가.
눈앞에서 굉음을 내며 무너지던 빙하나 바다를 호쾌하게 가르던 범고래, 밤하늘을 수놓던 오로라 같은 장엄한 풍경도 기억에 남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새카맣게 모여 있던 연어 떼가 여전히 헤엄치고 있다.
알래스카의 마지막 기항지였던 케치칸(Ketchikan)은 연어로 유명한 도시다. “연어를 낚아채는 곰이나 한 마리 볼 수 있으려나?”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별다른 기대 없이 배에서 내렸다. 우르르 내리는 수많은 관광객의 뒤를 따라 유명하다는 다리 위로 올라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둥둥 떠 내려오는 죽은 연어들이었다. 물가 곳곳에도 썩은 내를 풍기며 널려 있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거친 물소리를 따라가 보니, 세차게 몰아치는 강물 한가운데 붉은 연어 떼가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태어난 고향의 냄새를 기억해 낸 것일까. 본능 깊숙이 저장된 내비게이션이 손짓하는 그곳을 향해, 연어들은 온 힘을 다해 세찬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굵은 자갈에 입이 파이고 지느러미가 갈라져 몸이 엉망진창이 되면서도 가야만 하는 곳을 향해 솟구쳤다. 튕겨 나가떨어지고, 또다시 떨어지면서도 수없이 반복하며 몸을 던지는 연어 떼의 몸짓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주검이 되어 떠내려가는 연어와 마지막 숨을 쥐어짜며 애쓰는 연어들을 보는 마음은 복잡했다. 일생의 단 한 번뿐인 소명을 다하고 사그라드는 것은 자연의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건만, 마음이 무겁게 아리면서도 동시에 또 너무 감상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네 인생도 원래 좀 쓰니까.
인간들이 연어를 배려해 조금 더 쉽게 올라가라고 만들어 놓은 시멘트 어도가 눈에 들어왔다. 편하고 탄탄한 길을 놔두고, 굳이 목숨을 걸고 자갈과 폭포가 터지는 거친 강줄기로 제 몸을 내던지는 연어들. 그 고집스러운 생명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가슴 한구석이 꾹 눌린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길을 바라고 있었지?’
시련 없이, 남들보다 조금 더 쉬운 길로 가기를 바랐던 엄마로서의 욕심이 연어의 너덜 해진 몸 위에 부끄럽게 올라탄다. 위험을 무릅쓰고 거친 물살을 깨뜨리며 제 힘으로 고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 연어의 삶이듯, 내 아이들 역시 자신만의 물살을 헤치며 제 힘으로 삶을 배워야 함에도 아이 앞에 다정한 시멘트 길만 놓이길 바랐다.
강물은 거칠게 흐르고, 연어들은 오늘도 몸을 던진다. 나는 그 물살 속에 오래 들여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