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견적은 3천만 원이 좀 넘었다.
한국식으로 하는 포장이사를 하려면...
이 돈이면 낡은 물건들은 다 버리고 웬만한 것을 새로 사도 되는 금액이 아닌가!
그래서 포장은 우리 손으로 하기로 했다. 업체에는 싣고 옮기는 일만 맡겼는데, 빈 상자값까지 합쳐 약 500만 원이 들었다.
빈 상자 200여 개는 이삿짐센터에서 샀는데 한 개에 3유로, 합쳐서 약 600유로. 비엔나에서 빈 박스를 이런 큰돈을 주고 사게 될 줄은 몰랐다.
옷, 그릇, 바카라, 서랍 속 자잘한 것들. 가족들의 물건들이 바깥으로 모두 나와 버리니 집이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천천히 종이 상자 숲이 되어갔다.
이삿날은 큰 차 몇 대로 짐들을 무사히 잘 옮겨 주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우리는 새집에 머물지 못하고 청소용품을 챙겨 다시 옛집으로 돌아갔다.
살던 집에 '집 검사'가 있었기에 입주 전의 새집처럼 다시 청소를 해두어야만 했다.
전 집주인은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직업이 부동산 변호사였다. 그러다 보니 '집 검사'라는 말이 마치 재판을 받는 일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우리 측은 피고였고, 증거물 1호는 집주인의 부인이 그렇게 아낀다는 식탁등이었다.
그 집에 이사 오던 날 길게 아래까지 내려온 식탁등이 인부들에게 거슬리더니 조금씩 부딪혔고 마지막에 아들이 그 아래서 짐을 풀다가 일어나는 바람에 살짝 부딪혔다. 충격이 쌓인 거울공 모양의 식탁등은 3개 중 1개가 파사삭 깨지고 말았다. 다행히 아들의 머리는 무사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사건.
어떤 판결이 날것인지 두근거렸다.
다섯 식구가 종일 청소했다. 쓸고, 닦고, 지우고, 씻고, 말렸다. 떼어둔 붙박이를 제자리에 끼우고 패브릭을 다시 씌웠다. 흠집 난 곳도 보기 좋게 메꾸어주었다.
새집에서는 이삿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곧 남의 집이 될 그곳에서 더 열심히 걸레를 빨았다.
이사를 가는 건지, 청소업체가 된 건지 기운이 빠져 갈 때쯤,
현관 문고리에 김밥 봉지가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비슷한 시기에 빈에 이사 온 동갑내기 한국 친구였다.
전 날부터 이삿짐에 시달리고 박스도 못 푼 채 옛집을 닦던 우리는, 김밥을 먹고 나니 마음의 여유와 함께 청소할 힘도 더 생겼다.
여덟 시간 정도 지나자 3년을 살았던 집은 첫날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나는 전 집주인의 환한 웃음과 보증금 1만 유로를 고스란히 건네받는 장면을 상상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집주인이 왔다. 나는 손을 펼치며 보란 듯이 둘러보기를 권했다. 여덟 시간짜리 작품 공개였다.
집주인은 내 안내를 따라 평소답지 않게 대충 둘러보더니 말했다.
"2주간 살펴보고 보증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이런, 그 자리에서 돌려받는 줄 알았는데
재판장이 "4주 후에 뵙겠습니다" 하며 다음 기일을 잡듯, 집주인도 우리를 2주 뒤에 뵙자고 했다.
불안은 다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재판의 결과가 나왔다.
1,100유로, 약 180만 원 차감이었다.
식탁 위 둥근 조명 값만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차감이 없었다고 집주인이 인심 쓰듯 말했다.
그 거울공 조명은 집주인의 프랑스인 아내가 어렵게 구한 디자이너 브랜드란다.
세 개 중 한 개를 깨서 다행이지...
1,100유로짜리 조명 청구서를 보며, 문득 한국의 내 집을 떠올렸다.
큰맘 먹고 집수리를 내 맘에 들도록 하고 1년쯤 살다 내어준 집.
세입자가 이사 나가는 날 지인이 보내온 사진 속 집은 바닥이 군데군데 찍히고, 벽은 얼룩덜룩해졌고 타일은 여러 곳이 금가고 수전은 삐뚤어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뭐 하나 따져 묻지 않은 채 이삿짐이 다 옮겨가기도 전에 전세금을 고스란히 송금하고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라는 문자를 남겼었다.
우린 왜 그렇게 쉽게 전세금을 돌려줬을까…
아마 내 집을 선택해 주고 그 기간 동안 큰 탈 없이 잘 살아주었던 게 고마웠던 거 같다.
소소한 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우리가 아는 예의 아닌가?
그래서였나 보다. 잘못은 우리가 했어도, 세 개 중 두 개가 멀쩡히 남아 있던 식탁등 정도는 넘어가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다. 한국에서의 우리가 그랬듯이.
우리는 새집에서 천천히 상자를 하나씩 풀었다. 아직 찾지 못한 물건이 있고, 이 서랍 저 서랍 다 열어야 필요한 도구 하나를 겨우 찾는다.
하지만 이 도시의 낯설고 까만 밤에도 그날 문고리에 걸려 있던 김밥의 온기가 또 우리를 견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