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한국 대학 지원을 준비하면서 공식 서류가 필요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서류를 발급해 주는 기관의 담당자가 여름휴가를 갔다고 했다.
한 달 동안!
대학 원서 접수 기간과 딱 겹쳤다.
그래도 직접 찾아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기관을 찾아갔다.
입구에 앉아 있던 직원은 안내자라기보다 문지기에 가까웠다.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아이의 대학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사정이 급하니 한 번만 들어가게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독일어는 그 절박함을 전달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예약이라도 해 달라고 하니 이메일로만 받는다고 했다.
이메일을 보냈다. 하루하루가 귀한데 며칠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다시 찾아가도 담당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다른 기관에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고, 학교 당국에 문의하니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어디에서도 해결바카라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점점 화가 났다.
아니, 서류 하나 받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결국 내 사연을 알게 된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지인의 남편은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법무사였는데, 마침 그 기관의 바카라임자를 알고 있었다. 지인은 직원들과 함께 기관을 찾아가 우리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내 앞에서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그들 앞에서는 어이없이 열렸다. 꼼꼼히 서류를 확인한 뒤 어렵사리 서류에 도장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못 연 문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몇 마디 말로 열리다니.
공증과 아포스티유 비용은 페이지마다 몇만 원씩 들었다.
서류는 두툼했고, 지갑은 얇아져 갔다.
한국까지 등기로 보내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서류 하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행정비용과 등기비로 백만 원 가까이 썼다.
모든 서류가 준비된 날, 한국 대학의 원서 접수 마감까지는 사흘이 남아 있었다.
우체국에서는 아무리 빠른 등기라도 마감일까지 도착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학에 문의하니 마감 시간까지 접수되지 않으면 탈락이라고 했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걸어 등기를 보냈다. 대학에는 서류를 보냈으니 도착하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날부터 하루 종일 우체국 앱과 이메일만 들여다봤다.
그리고 마감 한 시간 전.
우체국 앱에 ‘전달 완료’라는 알림이 떴다.
서류가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동안 가슴을 졸였던 시간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무사히 원서 접수를 마치고 나자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이가 현지 학교에 다니면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고.
엄마와 서류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던 아이도 처음엔 한국 대학을 원했는데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엄마, 우리 유럽에 사는데 굳이 한국까지 가야 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아이를 좀 더 수월한 환경에서 공부시키고 싶은 마음이 앞서, 정작 유럽과 한국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아이에게 어디에서 공부하고 싶은지 충분히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좋다고 여기는 길을 아이에게 열어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들려고 그토록 애를 썼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나도 남편의 생각에 동의했고, 아이는 현지 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남편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남았다.
남편은 원래 자기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늘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지.” “그럴 수 있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웬만하면 내 생각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그래”를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와 딸이 한국 대학에 원서를 내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남편이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으니 같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은 그저 내 생각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마음을 알아주었다고 해서, 남편도 같은 것을 원한다는 뜻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남편이 내 말을 이해해 주는 것과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현지어가 서툴러 기관의 문 앞에서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데 같은 모국어를 쓰는 남편의 “그래”조차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를 위해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과정에서 남편의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충분히 읽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래도 마감 한 시간 전에 도착한 서류가 무용지물이 되는 건 너무 아까웠다.
그 안에는 백만 원 가까운 돈과 수많은 서류, 문 앞에서 발을 돌려야 했던 시간, 답 없는 이메일을 기다리던 날들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대학에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부디 버리지 말아 주세요. 제가 꼭 찾으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