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는 말이 조금 늦된 아이였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한 듯 묻곤 했습니다.
"아직 말 안 해요?" "엄마는 부르나요?"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살며시 저었습니다.
처음엔 그 질문들에 마음이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나만의 답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미나는 지금 마음속에 말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중이에요."
아이의 말은 숫자로 재는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자주 조바심을 내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조바심을 오래 붙잡아두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미나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는 분명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요.
미나는 말 대신 눈으로 말하던 아이였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 손을 가만히 잡아 이끌었고, 싫으면 고개를 천천히 돌렸습니다.
그 표현들은 나름대로 아주 분명했습니다.
나는 그 눈빛과 몸짓을 읽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아이의 언어보다 엄마의 해석이 더 빨리 자라야 했고, 신기하게도 그건 그것대로 우리만의 대화법이 되어갔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나는 미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건 사과야."
"빨간색이지."
"따뜻해."
"이건 진짜 맛있단다."
"이 길 지나면 자동차가 나온단다."
미나가 알아듣건 말건, 그 말들이 그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믿었습니다.
이 말들이 분명 아이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거라고. 마트에 갈 때도, 산바카라을 할 때도, 목욕을 시킬 때도 나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남편은 종종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 라디오 디제이 같아." 그 말에 나도 함께 웃었습니다.
맞아요, 나는 매일 미나만을 위한 방송을 하고 있었던 셈이니까요.
미나가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나는 그 기다림을 서두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매일을 그 자체로 충분히 즐거운 하루로 채우려 했습니다.
그날도 특별한 날은 아니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들었고, 나는 평소처럼 아이 이름을 부르며 곁에 앉았습니다.
그때, 아주 작은 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그 단어가 나왔습니다.
"엄…마."
나는 바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기쁨이 너무 커서 순간 몸이 먼저 멈췄습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아이를 보며 물었습니다.
"미나야? 방금 뭐라고 했어?"
아이는 나를 빤히 보며 같은 단어를 조금 더 크고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그 자리에서 미나를 번쩍 안아 올리고 온 집 안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나는 문 앞까지 뛰어나가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보! 미나가 오늘 엄마라고 불렀어!"
남편은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미나를 가운데 두고 몇 번이고 그 순간을 다시 이야기하며 웃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말은 먼저 나오는 아이의 것이 아니라, 끝까지 정성껏 기다려준 사람과 그 시간을 함께 채워온 아이의 것이라는 걸.
미나의 단어들은 대체로 조금 늦게 왔습니다.
대신 한 번 오면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더 이상 속도를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의 개수보다, 그 말이 얼마나 단단하게 머무는지를 천천히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미나의 말은 적었지만, 결코 가벼운 말은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정확하게 나왔습니다.
지금도 미나는 말을 아끼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에는 언제나 진심 어린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엄마보다 늦게 온 단어들은, 그래서인지 한 번 자리 잡으면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에게 말을 겁니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아도, 그 말을 건네는 일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말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말이 편안히 찾아올 자리를 넉넉히 비워두는 일이라는 걸,
나는 미나를 통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