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를 살린 감탄사

공명

by미지의 세계

조금 쑥스럽지만 나는 사실 과학 해설을 하다가 춤을 춘 적이 있다. 관람객들의 반응이 잘 따라오는 날이었다. 열정적으로 팔도 휘젓고 질문을 던지다 보니 나중엔 무슨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는 것처럼 마무리가 되었다. 해설을 들은 관람객들이 "오! 재미있었다." 하며 박수를 치고 나갔다. 그날 내 모습을 본 동료는 이렇게 증언했다.


"선생님, 거의 택견을 하고 있던데요."


나는 부정하지 않고 웃으며 덧붙였다.


"택견만 했게요? 마지막에 목성 공전 얘기하면서는 제자리에서 돌아버렸어요."



준비한 해설 내용은 늘 비슷하지만, 어떤 날은 유독 신나고 어떤 날은 무척 힘들 때가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관람객의 반응이다. 해설을 시작할 때 힘이 없었더라도 준비한 농담에 웃어주시거나 적극적인 반응이 오면 말도 술술 나온다. 하지만 무언가 지루해하는 기류가 느껴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몸이 무거워지고, 준비한 내용이 생각 안 나 버벅댄다. 기류라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멀리 떨어진 내게 영향을 준다. 이처럼 인류가 증명해 온 여러 사실들을 알려주는 과학관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더 믿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론 타이밍과 주파수를 맞추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만들 때가 있다. 과학에서는 그것을 공명이라고 한다. 공명은 큰 힘으로 밀어붙이는 현상이 아니다. 아주 작은 진동도 같은 주파수를 만나면 점점 더 크게 증폭된다​. 그런데 나는 과학 원리를 알기 전부터 공명의 힘을 체감했었다. 수영 덕분이었다.


수영은 저항을 줄여야 앞으로 잘 나아간다. 그런데 운동 좀 해봤다 하는 수영 초보자들은 일단 힘으로 밀어붙인다. 잠시나마 물살을 이기는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영법으로는 오래 물을 가르지 못한다. 25m의 풀장을 한번 가는 것도 버겁다. 반면 수영을 오래 한 사람들은 몸으로 익힌 리듬이 있다. 다리와 팔이 어떤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저항은 줄어들고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몸이 좋은 청년이 헥헥 대는 풀장을, 흰머리 성성한 노인이 몇 바퀴씩 돌 수 있다.


마치 큰 진리를 다 깨달은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나도 그걸 안 지 얼마 안 됐다. 불행히도 나는 처음 수영을 할 때 '운동 좀 해봤다'하는 젊은이였다. 그래서 처음엔 힘으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자꾸 한계에 부딪혔다. 열심히는 하는데 거의 늘 제자리였다. 그날도 물을 잔뜩 먹고는 풀장 한쪽에 기대 숨을 고르는데, 나를 눈여겨보던 수영 고수 언니가 한마디 했다.


"언니, 언니는 힘이 너무 들어갔어. 그 리듬이 있거든? 마음속으로 세어봐. 하나, 둘, 셋, 넷 세면서 발을 차고 팔도 일정하게 저어. 그러면 몸이 훨씬 수월해."


그날 나는 처음으로 25m 풀장을 무사히 건넜다. 그리고 다다음날은 25m 왕복에 성공했다. 심장 소리와 발차기가 비슷한 리듬으로 맞아떨어지는 수준까지 오자, 소위 뺑뺑이라고 하는 풀장 왕복 수영도 가능해졌다. 발차기와 호흡, 심장이 하나 된 순간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수영장에서의 깨달음은 얼핏 손과 발의 타이밍만을 맞춰 이뤄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옆에서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수영 언니의 말 한마디, 그것이 나를 한 단계 더 밀어 올리는 ​주요한 힘이었다. 내 안에서 계속 엇박자를 내던 리듬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신들린 듯 해설을 했던 그날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의 감탄과 호응, 끄덕임, 눈빛이 내 해설 주파수와 맞았다. 수영 언니의 조언과 관람객의 반응 모두 작은 것들이었지만 내게는 울림이 컸다.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해설사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해설하기 위해 지식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런 노력은 중요하지만 결국 해설을 완성하는 건 관람객의 반응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 웃어주는 사람, 눈을 맞춰주는 사람 앞에서 나는 좀 더 나은 설명을 내놓고 싶어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과학 지식을 공부한 다음에는 말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관람객을 상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어린아이들은 언제 눈을 반짝일까.' '어른들은 어느 대목에서 웃을까.' 그런 질문을 오래 품고 다녔다.


해설을 하면서 춤을 췄던 날을 다시 떠올려본다.​ 사실 그날은 소화해야 할 해설 프로그램이 많아 전날 밤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오전과 오후 모두 천문 해설을 15분 동안 하고, 15분 정도 쉰 다음 다시 20분 동안 다른 해설을 해야 하는 강행군의 일정이었다. 고함량 비타민을 털어 넣고 커피를 마셔가며 나름대로 기민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날이었다. 하지만 기적 같은 공명의 15분 이후, 나는 거의 날아다니듯 웃으며 일정을 소화했다. 같은 주파수를 만나 춤추며 훨훨 날았던 그날, 나를 끝까지 움직인 것은 커피도, 비타민도 아닌 작은 감탄사들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럼에도 생각보다 멀리 닿는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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