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프롤로그, 봄날의 첫 만남

기다림의 시작

byHelia

첫사랑은 대개 이름도 모른 채 시작된다.

눈이 먼저 기억하고, 마음이 먼저 알아본다.

그 사람이 웃는 모습 하나에 하루가 달라지고, 우연히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열일곱 살의 한도훈에게도 그런 봄이 찾아왔다.

---

봄비가 내린 다음 날이었다.

아침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햇살만큼은 따뜻했다.

도훈은 늘 그렇듯 영진예고 교복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창가 쪽 맨 뒷자리가 비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창가에 먼저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긴 생머리를 단정히 늘어뜨린 여학생.

이어폰을 낀 채 무릎 위에 바카라을 펼쳐 읽고 있었다.

버스가 흔들려도 시선은 바카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햇살이 창문을 타고 그녀의 옆모습을 비췄다.

도훈은 순간 숨을 삼켰다.

'... 예쁘다.'

그 짧은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도훈은 조용히 그녀의 두 칸 뒤에 앉았다.

괜히 앞자리로 가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버스가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그녀는 창밖을 한 번씩 바라보다 다시 바카라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눈에 밟혔다.

버스는 한성여고 앞에 멈춰 섰다.

여학생은 바카라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메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도훈은 창문 너머로 그녀의 뒷모습이 교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 한성여고."

그날 처음 알았다.

그녀가 자신보다 두 살 많은 선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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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도훈은 같은 시간 버스를 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카라을 읽는 날도 있었고,

창밖을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가끔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도훈은 그녀의 이름도 몰랐다.

목소리도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했다.

아침마다 그녀를 보면 하루가 괜히 즐거웠다.

'오늘도 있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친구들은 첫사랑이 생기면 고백부터 하라고 떠들었지만,

도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데 무슨 고백이란 말인가.

그저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아침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

"야, 도훈."

학교에 도착하자 친구가 어깨를 툭 쳤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일찍 오냐?"

"아, 그냥."

"공부하려고."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버스를 놓치면 그녀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피식 웃었다.

"네가 공부?"

"오늘 비 온다."

도훈은 따라 웃었지만,

속으로는 딱 하나만 생각했다.

'내일도 버스에서 만날 수 있겠지.'

---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도훈의 마음도 조금씩 자라났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은 챙겼을까 걱정했고,

더운 날이면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지 않을까 신경 쓰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말 한마디 나눠 본 적 없는 사람인데도,

자꾸만 마음이 갔다.

어느 날은 버스가 만원이 되어 그녀가 서 있게 되었다.

도훈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저기."

그녀는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들었다.

"... 네?"

도훈은 얼굴이 빨개진 채 창가 자리를 가리켰다.

"... 앉으세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

그 미소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도훈에게는 오래도록 남았다.

그날 하루 종일 그는 실없이 웃고 다녔다.

친구들은 무슨 좋은 일 있냐며 물었지만,

도훈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었다.

그날 이후,

도훈의 하루는 그녀를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름도.

나이도.

취미도.

아무것도 몰랐다.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

매일 아침 같은 버스를 타는,

한성여고 교복을 입은 예쁜 선배라는 것.

그때의 도훈은 몰랐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가장 오래 흔들어 놓을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친형이 사랑하게 될 여자라는 사실도.

열일곱 살 봄.

그의 첫사랑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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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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