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비 오는 밤

끝내 돌아오지 못한 너, 그날 밤의 비

byHelia

자신이 서하를 밀어낸다고 해서, 도진의 마음까지 밀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닫힌 방문을 한동안 바라봤다.

도진은 분명하게 말했다. 서하를 좋아한다고. 두 번이나 헤어지고도 다시 만난 사람이라고. 졸업하고 서로 자리를 잡으면 결혼할 생각이라고.

그리고 다시는 서하를 따로 만나 헤어지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앞으로 만날 사람도 많고, 경험할 일도 많은 나이였다. 그런데 벌써 한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다니.

아들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서하를 받아들일 자신도 없었다.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겠지.

지금은 저렇게 좋아 죽어도 언젠가는 현실을 알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그날 밤에는.

---

다음 날 아침.

도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에서 나왔다.

"엄마, 나 학교 갔다 올게."

"밥은?"

"서하랑 먹기로 했어."

어머니의 손이 잠시 멈췄다.

"매일 만나니?"

"같은 학교잖아."

"그래도..."

도진이 어머니를 바라봤다.

"엄마."

"..."

"어제 얘기는 끝난 거 아니었어?"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진도 더 묻지 않았다.

"다녀올게."

현관문이 닫혔다.

어머니는 식탁에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평소처럼 인사했고,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다만 서하에 관한 일만큼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게 못내 서운했다.

자신이 아들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

"한도진!"

국문과 건물 앞에서 서하가 손을 흔들었다.

도진은 멀리서부터 서하를 발견하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수업 끝나고 바로 왔는데."

"3분 늦었어."

도진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2분인데."

"내 시계는 3분이거든."

"그럼 네 시계가 빠른 거지."

서하가 눈을 흘겼다.

"말대꾸하지 마."

"네."

도진이 웃었다.

"죄송합니다."

"성의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서하가 손을 내밀었다.

"손."

도진이 피식 웃었다.

"강아지냐?"

"빨리."

도진은 순순히 손을 잡았다.

"됐어?"

"응."

서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도진은 그런 서하를 가만히 바라봤다.

며칠 전 카페에서 울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눈이 붉게 부어 있었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었다는 것을.

도진은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왜?"

서하가 물었다.

"아니."

"뭔데."

"그냥."

서하가 웃었다.

"너도 그냥이라는 말 하네?"

"그러게."

도진은 굳이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서하가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모른 척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서하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배고파?"

"응."

"뭐 먹을래."

"아무거나."

도진이 걸음을 멈췄다.

"또?"

"왜. 아무거나 좋다니까."

"그 아무거 나가 제일 어려워."

"그럼 네가 골라."

"크림우동."

"좋아."

"진짜?"

"응."

도진이 서하를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왜 이렇게 순순해."

"너랑 먹으면 다 맛있으니까."

도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와."

"왜. 설렜어?"

"조금."

"조금?"

"많이."

서하가 웃었다.

도진도 따라 웃었다.

그날 두 사람은 평범한 연인들처럼 데이트를 즐겼다.

점심을 먹고, 서점에 들렀다가, 카페에서 각자 과제를 했다.

서하가 쓰고 있는 글을 도진이 읽어보겠다고 하자 서하는 노트북을 황급히 닫았다.

"안 돼."

"왜."

"아직 다 안 썼어."

"그럼 다 쓰면 보여줘."

"재미없으면?"

도진이 웃었다.

"재미있다고 할게."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거 거짓말이잖아."

도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서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윤서하."

"왜."

"너 진짜 평생 놀릴 거냐."

"응."

도진이 고개를 저었다.

"알았다."

"뭘."

"평생 놀려."

서하가 웃었다.

"자신 있어?"

"응."

도진은 서하를 바라봤다.

"내 옆에서 놀리면 되니까."

서하는 괜히 고개를 돌렸다.

"너 요즘 왜 이렇게 말을 잘해."

"원래 잘했어."

"아니거든."

두 사람은 또 웃었다.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리고 며칠 동안은 정말 평온했다.

서하는 더 이상 도진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받지 않았다.

도진 역시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

금요일 오후였다.

도진은 예상보다 일찍 수업을 마쳤다.

서하에게 연락하려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직접 찾아가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다.

학교 앞 카페가 모여 있는 거리로 향하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하 학생."

도진의 걸음이 멈췄다.

어머니였다.

카페 옆 골목 입구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어머니와 서하.

도진의 표정이 굳었다.

또?

어머니는 서하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진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몇 걸음 남겨두었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직도 생각이 안 바뀌었어요?"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잖아요."

"..."

"도진이 앞길 생각해서라도 헤어져 달라고."

도진의 발걸음이 멈췄다.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목소리가 지쳐 있었다.

"저도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

"저 도진이랑 못 헤어져요."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요?"

"죄송해요."

"도진이는 아직 어려요."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어머니."

서하가 말을 끊었다.

"저도 도진이 좋아해요."

"..."

"도진이도 저 좋아하고요."

서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저희가 서로 좋아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누가 잘못됐다고 했어요?"

"그런데 왜 자꾸 헤어지라고 하세요?"

"..."

"제가 부족한 게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했잖아요."

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고치겠다고도 했고요."

"..."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뭘 해도 안 된다고만 하시잖아요."

도진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서하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듣고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만하겠습니다."

서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지만 더는 이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서하 학생."

"저 먼저 가볼게요."

서하는 돌아섰다.

그때 도진이 골목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반대편 길로 걸어갔다.

도진은 서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붙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할 일이 있었다.

도진은 천천히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엄마."

어머니가 놀라 돌아봤다.

"도진아?"

도진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여기서 뭐 해."

"그게..."

"서하 왜 또 만났어?"

어머니는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봤다.

"너 언제부터 있었어?"

"내가 물었잖아."

도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하 왜 또 만났냐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돌아봤다.

도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도진아, 진정하고..."

"서하한테 헤어지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엄마는 너 생각해서..."

"그 말 좀 그만해!"

도진은 결국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내가 언제 엄마한테 서하랑 헤어지고 싶다고 했어?"

"..."

"내가 힘들다고 했어?"

"그런 게 아니라..."

"엄마가 왜 자꾸 내 마음을 대신 정하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늘 무뚝뚝해도 자신에게만큼은 큰소리를 내지 않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도진아."

"엄마가 서하한테 무슨 자격으로 헤어지라고 해."

"..."

"서하가 엄마한테 무슨 잘못을 했는데."

"나는 그냥..."

"그냥 뭐!"

도진의 눈가가 붉어졌다.

"서하 부모님 없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어머니의 입이 다물어졌다.

"서하가 그러고 싶어서 혼자 살아?"

"..."

"엄마가 걔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지."

잠시 숨을 골랐다.

"내가 모르니까 더 화가 나."

"..."

"서하는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거든."

도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엄마랑 나 싸울까 봐."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애를 왜 자꾸 울려."

"..."

"엄마."

도진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나 서하 없으면 안 돼."

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제발."

도진이 이를 악물었다.

"이제 그만해."

말을 끝낸 도진은 서하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봤다.

이미 한참 멀어져 있었다.

도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졌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도진은 고개를 들었다.

멀리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가는 서하의 뒷모습이 보였다.

"서하야!"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도진은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윤서하!"

서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주변의 차량 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에 목소리가 묻혔다.

도진은 더 빨리 뛰었다.

그저 서하를 붙잡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제는 혼자 참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

"서하야!"

도진은 골목 끝을 돌아 큰길로 나왔다.

서하는 건너편 인도 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도진은 숨을 몰아쉬었다.

"윤서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서하였다.

도진은 급히 전화를 받았다.

"서하야!"

― 도진아?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도진은 조금 안심했다.

"너 어디야."

― 나? 학교 앞인데.

"알아. 나도 봤어."

― 뭐?

"잠깐만 기다려."

도진은 걸음을 재촉했다.

― 왜? 무슨 일 있어?

"할 말 있어."

― 무슨 말?

도진은 길 건너편을 바라봤다.

"우리 엄마..."

말끝이 흐려졌다.

서하가 잠시 조용해졌다.

― 어머니?

도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 다 알아."

―... 뭘?

"엄마가 너 찾아간 거."

수화기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하야."

― 응.

"미안해."

도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 때문에..."

― 도진아.

서하가 말을 끊었다.

― 네가 왜 미안해.

"..."

― 너 잘못 아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도진은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도진은 서하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너 안 울게 할게."

― 도진아?

"앞으로는 진짜..."

그때였다.

짧고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울렸다.

빠아앙!

도진이 고개를 돌렸다.

옆 차로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차량이 보였다.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브레이크 소리.

누군가의 비명.

그리고,

쿵!

휴대폰이 도로 위로 떨어졌다.

화면이 바닥을 굴렀다.

통화는 끊기지 않았다.

― 도진아?

수화기 너머에서 서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한도진?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

서하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걸음을 멈췄다.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거지.

경적.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도진아?"

대답이 없었다.

"한도진!"

서하는 급히 뒤를 돌아봤다.

조금 떨어진 큰길 쪽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설마..."

서하는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잠깐만요."

아무도 비켜주지 않았다.

"저기요. 좀 비켜주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비켜주세요!"

그리고,

그곳에서 도진을 발견했다.

도로 위에 쓰러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과 통화하던 사람이었다.

오늘 점심에도 장난을 치고,

손을 잡고,

웃던 사람이었다.

"도진아?"

서하의 입술이 떨렸다.

믿을 수 없었다.

"한도진."

도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진아!"

누군가 119에 신고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서하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일어나."

서하가 울먹였다.

"도진아, 일어나."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어디를 만져야 할지조차 몰랐다.

"나 여기 있잖아."

눈물이 쏟아졌다.

"나 왔어."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도진!"

서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한테 할 말 있다며!"

"..."

"무슨 말인데!"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서하는 도진의 얼굴만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을 감고 있었다.

"제발..."

서하가 울음을 삼켰다.

"눈 좀 떠 봐."

---

응급실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구급대원들이 도진을 침대에 옮겼다.

의료진이 빠르게 상태를 확인했다.

서하는 그 뒤를 따라 뛰었다.

"보호자세요?"

"네."

대답부터 나왔다.

"남자친구예요."

"가족분께 연락해 주세요."

서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누구에게 먼저 전화해야 할지 몰랐다.

도훈.

도진의 동생.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

― 누나?

"도훈아."

― 네?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진이가..."

말이 나오지 않았다.

― 형이 왜요?

"사고가 났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네?

"교통사고."

― 무슨 소리예요?

"지금 병원이야."

서하의 목소리가 무너졌다.

"도훈아, 빨리 와."

전화기 너머에서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어느 병원이요?

서하는 병원 이름을 알려줬다.

도훈은 더 묻지 않았다.

― 지금 갈게요.

전화가 끊겼다.

서하는 휴대폰을 쥔 채 벽에 기대 섰다.

눈앞이 흐렸다.

조금 전 도진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나 다 알아.

미안해.

내가 너 안 울게 할게.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바보야..."

눈물이 흘렀다.

"네가 왜 미안한데."

---

도진은 급히 수술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출혈이 심하고 상태가 위중하다고 설명했다.

서하는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저 수술실 문이 닫히는 것만 바라봤다.

잠시 후 도훈이 도착했다.

"누나!"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도훈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형은요?"

서하는 수술실을 가리켰다.

"안에..."

"많이 다쳤어요?"

"..."

"누나."

서하의 눈물이 다시 흘렀다.

"나도 몰라."

도훈은 그대로 굳었다.

"의사 선생님이..."

서하는 겨우 말을 이었다.

"위험하대."

도훈은 수술실 문을 바라봤다.

믿기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형과 연락했었다.

어머니와 서하의 문제를 알고 화가 난 형이었다.

그래도 결국 잘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다.

형은 늘 그랬으니까.

한번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형이 수술실 안에 있었다.

"엄마한테 연락했어요?"

도훈이 물었다.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못 했어."

도훈은 휴대폰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몇 번이나 번호를 잘못 눌렀다.

겨우 통화가 연결됐다.

― 도훈아?

"엄마."

― 왜?

도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

"형 사고 났어."

― 뭐?

"교통사고."

― 무슨 소리야.

도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수술 중이야."

수화기 넘어가 조용해졌다.

― 어디야.

목소리가 떨렸다.

"병원."

― 어느 병원.

도훈이 병원 이름을 말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도훈은 휴대폰을 내렸다.

그리고 서하 옆에 앉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수술실 앞 시계는 유난히 느리게 움직였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났다.

도진의 어머니가 도착한 것은 수술이 진행되는 도중이었다.

"도진이는?"

어머니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 중이야."

"어떻게 된 거야?"

"..."

"왜 사고가 났는데!"

도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시선이 서하에게 향했다.

서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서하 학생."

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도진이가 왜 사고가 난 거냐고요."

서하는 입술을 떨었다.

"저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를 따라오다가..."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요?"

서하는 눈물을 흘렸다.

"저를 부르다가..."

"..."

"차가..."

그 뒤로는 더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날 도진이 왜 그 길에 있었는지.

누구를 붙잡으려고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

수술실 문이 열린 것은 한참 뒤였다.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세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도진의 어머니가 가장 먼저 다가갔다.

"우리 아들 괜찮죠?"

의사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다.

그 짧은 침묵이 너무 길었다.

"환자분은 사고 당시부터 상태가 매우 위중했습니다."

서하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수술 중 최선을 다했지만 출혈이 심했고, 여러 장기의 손상이 컸습니다."

"그래서요?"

어머니가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은 괜찮은 거죠?"

의사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순간 세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환자분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는 의사를 멍하니 바라봤다.

"네?"

"..."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

"우리 아들 아직 스물두 살이에요."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학교 간다고 멀쩡하게 나갔는데 무슨 소리예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수술 끝났으면 이제 회복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머님..."

"아니, 잠깐만요."

어머니가 의사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 아들 다시 한번 봐주세요."

"..."

"아직 살아 있잖아요."

도훈이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았다.

"엄마."

"너 가만히 있어."

어머니가 도훈의 손을 뿌리쳤다.

"선생님. 우리 도진이 좀 살려주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다른 병원으로 옮겨도 되고, 수술 다시 해도 되니까..."

"어머님, 죄송합니다."

"왜 자꾸 죄송하다고만 해요!"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살려달라고요! 우리 아들 살려달라고!"

도훈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살리지 못했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도진이가 죽었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통화했는데.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서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눈물이 흘렀다.

"도진이가 왜..."

그때였다.

도진의 어머니가 서하를 돌아봤다.

울고 있는 서하를 발견한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달라졌다.

슬픔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에 다른 감정이 떠올랐다.

원망이었다.

"너."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 어머니."

어머니가 천천히 다가왔다.

"너 때문이잖아."

서하의 입술이 굳었다.

"네?"

"우리 도진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 따라가다가 사고 났다며."

"..."

"너 붙잡으려고 뛰어가다가 그랬다며!"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왜!"

날카로운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왜 우리 아들을 따라오게 만들었어!"

"어머니..."

"네가 그냥 헤어졌으면 됐잖아!"

서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그렇게 헤어져 달라고 했잖아!"

어머니는 이미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렇게 부탁했는데도 끝까지 안 헤어진다고 버티더니!"

"..."

"결국 우리 아들까지 죽게 만들어?"

"엄마!"

도훈이 다급하게 불렀다.

하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았다.

"네가 뭔데!"

서하는 눈물만 흘렸다.

"네가 뭔데 우리 도진이를 이렇게 만들어!"

그리고 다음 순간.

**짝!**

날카로운 소리가 병원 복도에 울렸다.

서하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서하는 자신이 뺨을 맞았다는 사실조차 바로 깨닫지 못했다.

화끈거리는 통증이 뒤늦게 밀려왔다.

"엄마!"

도훈이 황급히 어머니를 붙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놔!"

어머니가 도훈의 손을 뿌리쳤다.

"저 애 때문에 네 형이 죽었어!"

"엄마, 그만해!"

"뭘 그만해!"

어머니는 다시 서하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우리 아들 살려내!"

서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

"살려내라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네가 그렇게 좋다고 붙잡고 있었잖아!"

"..."

"도진이가 너 아니면 안 된다고, 너랑 절대 못 헤어진다고 했어!"

어머니는 가슴을 쳤다.

"그렇게까지 좋아하던 애가 결국 너 때문에 죽었잖아!"

도훈이 어머니 앞을 막아섰다.

"엄마! 형 사고 난 게 왜 누나 때문이야!"

"네 형이 저 애 따라가다가 그랬잖아!"

"그렇다고 누나가 형한테 차에 뛰어들라고 했어?"

"한도훈!"

"누나도 지금 형 잃었잖아!"

도훈의 목소리도 떨렸다.

"엄마만 힘든 거 아니라고!"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의 서하가 원망스러웠다.

서하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처음 반대했을 때 헤어졌다면.

오늘도 만나지 않았다면.

도진이 서하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지금쯤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저녁은 먹었냐고 물었을 것이고,

먹었다고 짧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이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탓해야 했다.

누군가 잘못했다고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원망의 끝에는 서하가 있었다.

"네가 우리 도진이 인생 망쳤어."

어머니가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너만 안 만났어도..."

"..."

"우리 아들 지금 살아 있었어."

서하의 눈빛이 무너졌다.

그 말은 뺨을 맞았을 때보다 더 아팠다.

"죄송해요..."

서하의 입술에서 겨우 말이 흘러나왔다.

"제가..."

숨이 막혔다.

"제가 정말..."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죄송하면 우리 아들이 살아 돌아와?"

서하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그럼 뭘 죄송하다는 거야!"

"..."

"네가 대신 죽었어야지!"

순간 도훈의 얼굴이 굳었다.

"엄마!"

복도에 있던 사람들까지 놀라 돌아봤다.

도훈은 어머니의 두 어깨를 붙잡았다.

"그런 말까지 해야겠어?"

어머니의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 도진이..."

목소리가 무너졌다.

"우리 도진이가 죽었잖아..."

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주저앉았다.

"아침에 분명히 다녀온다고 했는데..."

흐느낌이 터졌다.

"엄마한테 다녀온다고 했는데..."

도훈도 눈물을 흘렸다.

형이 죽었다.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서는 어머니가 서하를 원망하고 있었다.

도훈은 어머니를 부축하면서도 서하를 바라봤다.

서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뺨을 맞은 쪽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감싸지도 않았다.

그저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훈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누나."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나, 괜찮아요?"

그 말에 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괜찮냐고.

어떻게 괜찮을 수 있을까.

도진이가 죽었다는데.

자신에게 평생 함께하자고 했던 사람이,

조금 전까지 전화로 이야기했던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데.

서하는 입술을 떨었다.

"도훈아."

"네."

"나..."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진짜..."

눈물이 쏟아졌다.

"도진이 죽으라고 한 적 없는데..."

도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알아요."

"..."

"누나 잘못 아니에요."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나 때문에 따라온 거잖아."

"누나."

"나 붙잡으려고..."

서하는 결국 얼굴을 가렸다.

"내가 전화만 안 받았어도..."

"그런 말 하지 마요."

"그냥 기다리라고 했으면..."

"누나!"

도훈이 서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누나 잘못 아니라고요."

하지만 서하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어머니의 말만 계속 반복됐다.

**네가 대신 죽었어야지.**

서하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자신도 조금씩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내가 그 길에 있었더라면.

차라리 도진이가 아니라 나였더라면.

그랬다면 도진이는 살아 있었을 텐데.

서하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훈이 황급히 몸을 숙였다.

"누나!"

서하는 울면서 중얼거렸다.

"도진아..."

"..."

"나 어떻게 해."

대답은 없었다.

"나 이제 어떻게 살아..."

도훈은 서하를 끌어안았다.

형의 여자친구.

자신이 오래도록 좋아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은 형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사람.

도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서하가 더 이상 혼자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

얼마 후,

서하는 도진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도진은 눈을 감고 있었다.

서하는 천천히 다가갔다.

"도진아."

대답은 없었다.

"나 왔어."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서하는 그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너 나한테 할 말 있다며."

"..."

"아까 전화로."

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슨 말이었는데."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려고 했어?"

서하는 눈물을 닦았다.

"너 미안할 거 없어."

"..."

"진짜 없어."

한참을 도진의 얼굴만 바라봤다.

"내가 미안해."

눈물이 떨어졌다.

"나 때문에..."

서하는 말을 멈췄다.

도진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왜 네 잘못이라고 하냐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우리 결혼하기로 했잖아."

서하는 도진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았다.

"졸업하고."

"..."

"우리 둘 다 자리 잡으면."

울음이 터졌다.

"그때 결혼하자며."

도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하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도진의 손등에 이마를 댔다.

"나 아직 너 많이 좋아하는데."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

"너는 왜..."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나 두고 먼저 가."

---

그날 밤.

도진의 어머니는 아들이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놓인 도진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벗어놓은 신발이었다.

어머니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방문을 열면 도진이 있을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을 것 같았다.

"도진아."

조용히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한도진."

한 번 더 불렀다.

하지만 집 안은 조용했다.

그때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모를 비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도진의 방문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시 서하를 떠올렸다.

**그 애만 아니었어도.**

눈물이 흘렀다.

**그 애만 안 만났어도 우리 도진이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서하를 원망했다.

원망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날 아들이 자신에게 화를 내며 했던 말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왜 자꾸 내 마음을 대신 정하는데!**

그 말까지 생각하면 자신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도진아..."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엄마 두고 어디 갔어..."

---

한편, 서하는 병원 복도에 홀로 앉아 있었다.

도훈은 잠시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러 갔고, 서하는 아직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진이 사고를 당했을 때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었다.

그런데 도진이 죽고 나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비 오네..."

혼잣말이었다.

도진과 함께 걸었던 학교 앞 거리도 지금쯤 비에 젖어 있을 것이다.

오늘도 도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가 오면 도진은 분명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고 우산을 씌워줬을 것이다.

자기는 괜찮다면서.

그러면서 정작 자기 어깨는 다 젖었을 것이다.

서하는 작게 웃으려다 결국 울고 말았다.

"바보..."

눈물이 턱 끝으로 떨어졌다.

"너 비 맞는 거 싫어하잖아."

서하는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도진과 나눈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나 수업 끝났어.]**

**[카폐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당연했던 말들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계속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말들.

서하는 대화창을 열었다.

**[도진아.]**

잠시 망설이다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밖에 비 와.]**

그리고 한참 뒤.

**[나 아직 기다리고 있어.]**

메시지는 읽히지 않았다.

서하는 휴대폰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두 번의 이별 끝에 다시 만났던 사람.

세 번째 이별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던 사람.

그런데 이번에는 헤어지자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

서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 출입문 앞으로 걸어갔다.

자동문 너머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도 없었다.

데리러 올 사람도 없었다.

서하는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비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진아."

대답은 없었다.

"나 혼자 어떻게 가..."

서하는 끝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저 문 앞에 서서 울었다.

**도진이 없는 첫 번째 밤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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