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ver
회사에서 짤렸다. 내 발로 나온 적은 있어도 타의로 내쳐진 것은 처음이었다. 외국계 기업이라 약간은 마음의 준비라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이건 먼저 준비가 될 수 있는 류의 일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회사에 있는 몇 안 되는 개인 물품들을 박스에 담아 뒤뚱뒤뚱 회사 문을 걸어 나왔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나 이제 내일부터 이 건물로 안 나와도 된다고? 비현실적인 느낌에 꿈인가 의심도 해보았다. 갑자기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시트콤 같기도 했다. 퇴근 시간 전이라 제법 한적한 지하철에서, 무거운 박스를 들고서 혼자 피식피식 웃었다.
해고 통보를 하면서 팀장이 한 말이다.
"요즘 열심히 했던 거 인정해요. 그래서 더 명확해졌어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게."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중년의 여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못생겨 보이는 입술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들로 나를 후벼 팠다. 무슨 양심의 가바카라이라도 느끼는 건지 내 눈이 아닌 얼굴 어딘가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인수인계 없이 하던 일 그대로 두고 챙겨서 나가시면 됩니다."
인수인계도 필요 없다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자기 입으로 증명한다. 갑작스레 찾아온 새로운 자극에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젊음을 갈아가며 회사에 기여한 바들을 몽땅 가져와서 그 여자 눈구멍에 귓구멍에 쑤셔 넣어주고 싶었다. 1년도 안된 사람이 대체 뭘 보고 나를 함부로 평가한 건지, 인수인계도 받지 않은 팀원들이 갑자기 내 업무를 나눠가지면 뒷감당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진심으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한 것이 맞는지. 엉뚱한데 그만 쳐다보고 내 눈을 보며 똑바로 대답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다. 적어도 어른인 척하는 법은 터득한 사람이다.
구구절절 물어봤자,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아니, 그런 대답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알겠습니다. 팀장님께서 팀을 위해 현명한 판단 내리셨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나름 해고당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대답을 했다.
덤덤한 내 태도에 오히려 한 방 맞은 건지
팀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안해요. 정말."
턱끝까지 차오른 쌍욕을 삼켰다.
사과할 거면 애당초 미안할 짓을 대체 왜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