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과 상태의 기록 中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은, 흔하디 흔한 단어.
하지만 누구나 느끼는 우울한 감정과 비슷한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쉽게 치부되어 버리는 무거운 질병.
나는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말한다.
요즘 심리와 관련된 전문용어들이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만큼 마음의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벼이 여겨지는 경우도 대다수인 것 같다.
나는 이 질병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시작부터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까지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겨볼까 한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분명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 보일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우리 형제들은 각자의 생존에 힘을 썼다. 나 또한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시작했고 그 이후에도 줄곧 일만 했다. 물론 급한 성격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욱함, 거기에 영웅심리까지 장착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음…… 참! 다사다난했구나 싶다.
하여튼 그렇게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자랐고, 그러한 성격 때문에 이직도 많이 해야 했다. 반면 이런 성향으로 인해 이용도 많이 당한 편이다.
딱 성깔 있고 골격이나 체격도 좋아서인지 누군가 내게 직접 싸움을 걸어온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불의를 보면 또 참지 못하는 성향이었으니, 누군가에게는 아주 맛있는 먹잇감이었던 것 같다.
안쓰럽고 불쌍한 피해자를 보면 참지 못했다. 대신 나서주거나 싸워주기도 했다. 총대를 메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입에 풀칠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기에 사고를 치기 전에 미리 이직할 곳을 알아본 후 터뜨리기도 했다.
음…… 철두철미하다고 해야 할까.
참 별난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두려울 것 없이 지냈지만 역시 나도 사람인지라 사람에게 상처받고, 다시 사람에게 치유받기를 바랐다. 하지만 상처받고 또 상처받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관계와 인간, 사랑에 대한 상처에 아주 깊고 깊은 트라우마라는 딱지가 앉게 되었다.
지금 그 딱지 속은 더 이상 곪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딱지가 떨어진다 해도 크고 깊은 흉터가 남을 것들뿐이다.
나만 힘든 것도,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 집의 가정환경이 평범하지 않았다고 말했듯이 나는 이성에 대한 혐오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편에서는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사랑했고,
언니와 나를 때리는 오빠들에게 돌봄 받는 동생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클수록 받을 수 없는 마음 또한 컸던 걸까. 그 두 마음의 충돌은 평생 내 안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의심했다. 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면 나를 떠날까 걱정했고, 그러면서도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우정인지 사랑인지 매번 확인해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정말로 상처받으면 걷잡을 수 없었고 감당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커져버린 상처를 다른 사람으로 메우려고 애썼던 기억도 많다.
반면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을 괴롭히는 상황도 생겼다. 나를 떠보는 일이 단순한 악취미였던 사람이라면 내가 질리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떠나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그런 사람들은 꼭 다른 사람을 만나 보란 듯이 내 앞에 걸어놓고 큰소리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나는 연인들을 통해 아빠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인지, 엄마의 삶을 내 삶에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몇십 년에 걸쳐 내가 엄마의 삶을 닮아가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빠에 대한 원망과 모든 불만을 자식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엄마의 원망으로만 듣지 않았다. ‘아빠는 나쁜 놈’이라는 인식으로 내 안에 새겨왔다.
하지만 나도 아빠의 자식이었다.
내게 아빠는 점점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분류되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불효라는 단어에 갇혀 스스로를 지옥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는 엄마라서 인지,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오 남매라도 각자의 기질이 다르고, 부모 또한 서로 다른 기질과 성장환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니 같은 상황이었어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이해가 없었다.
나는 사랑하는 아빠를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여기면서도, 그 모순에서 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나를 나쁜 년이라고 인정하며 그 괴로움을 달랬던 것 같다.
그냥 내가 나쁜 년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냥 그런 년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었던 것 같다.
···
몇십 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함부로 대우받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렸고, 그렇게 괴로움과 통증을 완화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누구나 한계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수십 년 동안 거부감과 모순, 혼란과 두려움을 나름대로 견디며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흘러넘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댐이 되었다.
나의 댐은 감정을 가두기만 했고, 가끔 조금씩 넘쳐흐르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평생 혼자 살기로 했던 내가 늦깎이 신부가 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수문을 열어보기도 전에 댐이 터져버렸다.
시어머니의 이간질로 남편과의 불신은 깊어졌다. 선을 넘는 참견과 통제가 이어졌고, 나라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했다. 남편은 나를 낮게 평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험담했다. 그의 지인들마저 나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행동에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남편은 어김없이 시어머니의 편에 섰다.
이미 한계에 닿아 있던 나는 그 사람을 선택한 나 자신만큼은 원망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것마저 무너졌다.
나는 원래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소리를 질렀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저 숨을 쉬고 싶었다.
시원한 공기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어디론가 가겠다고 결정한 적도 없었다. 문득 ‘여기가 어디지?’ 하고 둘러보았을 때 그곳이 계단이었다.
그 순간 내가 정말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솔이가 떠올랐다.
꽃 같은 내 아이를 두고 내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 순간만큼은 솔이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혼자 남을 아이를 잊어버린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웠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주고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 길로 병원에 달려갔다.
나의 수문은 금이 가다 터져버렸다.
그렇게 우울증이라는, 내 인생의 첫 낯선 이름을 가진 질병을 경험하게 되었다.
예전에도 이 질병을 앓는 사람을 만나거나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안 하니까 안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내 감정조차 통제할 수 있는 사람!
내 몸도 통제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사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무수히 많은 독설을 내뱉었다.
그런 사람들은 나약해서 그래.
해볼 마음도 안 먹는 거겠지.
해보긴 뭘 해. 게을러서는.
그게 한 거라고? 하……
지금 생각하면 아주 극악무도한 인간이었다.
이 표현은 지금의 나이기에 할 수 있다.
이 질병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온다. 가끔 우울할 수도 있고 눈물이 날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매번 스스로를 통제하고 자신의 삶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만큼 떨어지는 깊이는 그 몇 배, 아니 몇백 배가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체감하기에는 그랬다.
그래서 더 아프고, 더 미치고, 더 환장할 것 같은 나날들이 아주 격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그때 내가 처한 환경이 나를 돌봐주거나 염려해주지 않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정도였다면 오히려 다행이었을 것이다.
왜냐고?
비난과 폭력, 질바카라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내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내뱉었던 것과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나는 첫 단계의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내 발로 직접 병원을 찾아가 모르는 사람 앞에서 울며 이야기한다?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한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나의 아이, 솔.
내가 바카라임지고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존재.
그렇게 나는 병원과 의사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 경험을 잊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은 첫 처방을 해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약은 분명히 듣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분명히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 당시 나는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답이 이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를 미치게 하고 있는 것은 남편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약을 복용하면서 요동치던 감정과 몰아치던 생각들이 잔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내 감정과 생각을 거세게 흔들어놓았다.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한바탕 연극 아닌 연극이 시작되었고, 결국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이혼 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남편과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환경을 백 퍼센트 바꾸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달라진 것은 분명히 있다.
나는 계속 발전하고 달라지고 있다. 외적인 모습도 달라졌고, 내면의 변화도 상당하다.
나의 아이는 자라면서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나와 함께 아이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의사 선생님이 내게 설명해 준 기준으로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를 거쳐 세 번째 단계까지 약을 복용하고서야 법적인 서류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딸아이와 살면서 많이 호전된 뒤에는 다시 두 번째 단계로 약을 낮추어 유지했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끊어질 수 없는 전남편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반복되면서 다시 세 번째 단계까지 약을 높여야 했다. 거기에 내면의 아이가 깨어나면서 다른 증상을 위한 약까지 추가로 처방받았다.
이것이 지금 현재의 나다.
···
이 글을 기록하는 이유는 잊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는 스스로 약을 줄이거나 끊지 않기 위해서.
한 번의 실수로 더 큰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나 역시 우울증 약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울증 약은 한번 먹으면 끊지 못하고 평생 먹는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 약에 의존하게 된다.
나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온 가정환경 속 습관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약을 먹는 엄마로 계속 사는 것이 싫었다. 내가 약에 의존하는 사람이라고 바라보는 전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처음에는 병원에 가는 것을 깜빡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다.
이 정도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약 없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 판단했다.
한두 달가량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을 끊자 오히려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다. 아이의 밥을 차리고 집안일도 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수월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더 자주 소리치고 화를 냈다. 아이를 울린 채 등원시키는 날이 이어졌다. 내 감정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솔이에게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이는 우울해 보였고, 나를 무서워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생각했다.
이건 아니다.
다시 상담을 받으러 갔다.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고 다시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정이 다시 잔잔해지는 것을 느꼈다.
약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의 차이를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괜찮아진 것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까지 괜찮아졌다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그 대가는 나 혼자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함께 치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되돌리기 어려운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약을 낮추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다시 약의 단계를 높여야 했고, 증상에 따른 약까지 추가로 처방받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평생 약을 먹는다고 해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의사 선생님과 상담선생님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약을 끊는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 그것은 자살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약을 먹지 않았던 당시, 운전대를 잡으면 마음속 답답함을 뚫어내기 위해 계속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달리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죽고 싶어서라기보다 그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위험한 일이었다.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타인의 시선과 오지랖 때문에 스스로 치료를 멈추는 일은 나만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말 소중한 내 아이와 내 가족의 미소까지 지워버릴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스스로 약을 끊지 않을 것이다.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다. 뭣도 모르는 타인의 말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그 말들에 상처받아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웃음까지 빼앗는 일은 다시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내 아이가 다시 마음 놓고 웃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