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 아파서 먹은 게 아니라

아파도 멈출 수 없어서 먹었다

by응시

이야기

처음에는 어깨였다.


그 여자는 오래 앉아 일했다. 어느 날부터 오른쪽 어깨가 결렸다. 약국에서 진통제를 샀다. 먹으니 괜찮아졌다. 그날 일도 무사히 끝냈다.


그다음부터는 아프기 전에 먹었다. 오늘 회의가 길겠다 싶으면 미리 먹었다. 마감이 있는 주에는 아침에 먹고 나갔다. 아파서 먹는 게 아니라 아프지 않으려고 먹는 것이니, 그 편이 낫다고 여겼다.


병원에도 갔다. 의사는 자세를 고치고 쉬라고 했다. 그 여자는 알겠다고 하고 나왔다. 쉬라는 말이 제일 어려웠다. 그 주에도 넘겨야 할 일이 있었다.


두통이 온 것은 그다음 해였다. 잠을 못 자서인 것 같았다. 자려고 누우면 내일 할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잠드는 것을 도와주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통은 늘어났다. 가방에도 있고, 회사 서랍에도 있고, 차에도 있었다. 어디서든 손이 닿는 데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어느 날 그 여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안 먹고 하루를 보낸 게 언제였더라.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기가 무언가에 매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몰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 병원에서 받은 것이고, 다 약국에서 파는 것이었다.


들여다보기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약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아플 때 진통제를 먹는 일도, 잠을 못 자 병원을 찾는 일도 마땅한 일이다. 그런 약이 있어서 견디는 사람이 많고, 그건 좋은 일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복용 중인 약을 임의로 줄이거나 끊지는 마시기 바란다. 약에 따라 중단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복용을 바꾸려면 처방한 의사나 약사와 상의해야 한다.


이 글이 보는 것은 그 약이 무엇을 대신하고 있는가다.


먼저 한 겹. 그 여자가 줄인 것은 통증만이 아니었다.


통증은 때로 몸이 보내는 경고다. 자세를 바꾸거나, 치료를 받거나, 쉬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 신호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통증을 줄였다고, 통증을 만들어 낸 조건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 앉아 있는 시간도, 넘겨야 할 일도 그대로였다.


여기서 한 겹 더 내려가야 한다. 그 여자는 왜 쉬라는 말을 그렇게 못 들었나.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쉬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려면 하루를 빼야 하고, 하루를 빼면 그 일이 어디로 가는지 그 여자는 안다. 아무 데도 안 간다. 다음 날 그대로 쌓여 있다. 아니면 누가 대신하고, 그러면 미안해진다.


그러니 약은 통증만 다루는 물건이 아니었다. 쉴 수 없는 사람이 계속 일하기 위한 물건이기도 했다. 아파서 먹은 게 아니라, 아파도 멈출 수 없어서 먹었다.


밤에도 비슷했다. 내일 할 일을 머릿속에서 내려놓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약은 잠드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아침이 되면 걱정할 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낮에는 통증을 눌러 두고, 밤에는 잠을 청했다. 그래야 다음 날 다시 일하러 갈 수 있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물러서서 보면, 약에 기대어 하루를 넘기는 방식에는 다른 것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문제로 보이기 어렵다. 술이나 도박처럼 처음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병원에서 받은 약이고, 약국에서 산 약이다. 아픈데 먹는 것을 누가 이상하게 여기겠는가. 때로는 아픈데도 나왔다는 말이 성실함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술이라면 곁에서 걱정이라도 하는데, 이것은 걱정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어깨가 아파 진통제를 먹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는 사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데, 아프면 약을 먹고 나가는 것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감기에 걸리면 약 먹고 출근하고, 허리가 아프면 파스 붙이고 앉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미뤄 두는 일이 성실함의 얼굴을 쓴 것이다.


그러면 편리한 쪽이 있다. 많은 일터에서는 쉬어야 할 사람에게 쉴 여유를 만드는 것보다, 개인이 어떻게든 버티는 쪽이 더 쉬운 해결바카라이 된다.


몸을 밀어붙이게 만든 조건은 일터에도 있는데, 그것을 견디는 비용은 개인의 몫이 된다.


그러니 혹시 지금, 아프기 전에 미리 먹고 나가고 있다면. 그것을 의지나 습관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아프면 멈춰도 되는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다.


다만 하나만 같이 보고 싶다. 다음 진료에서는 어디가 아픈지만이 아니라, 약을 얼마나 자주 오래 쓰고 있는지도 함께 이야기해 보시기를 권한다. 통증만 이야기하면 통증만 다루게 된다. 얼마나 오래 기대어 왔는지를 말해야,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몸이 하는 말을 미뤄 두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다르다. 오늘도 같은 곳이 아프다면, 그 통증을 일의 방해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몸이 자꾸 같은 말을 한다면, 한 번쯤은 그 말을 지우지 않고 들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