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쥐어짜고 있었다
이야기
삼 년 전 겨울, 어느 금요일 아침에 회사 바카라상 몇 개가 비었다.
그중 하나는 그 여자보다 오래 다닌 사람의 자리였다. 남은 사람들은 빈 바카라상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그 여자는 처음으로 새벽 기상에 관한 바카라을 샀다.
그때부터 다섯 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시계와 바카라을 나란히 놓고 찍어 대화방에 올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네 시 반에 올린 사람도 있었다.
다이어리에는 하루를 시간 단위로 나눠 적었다. 하루가 끝나면 지킨 칸은 파랗게, 못 지킨 칸은 붉게 칠했다. 붉은 칸이 많은 날은 잠자리에서 그 칸들이 떠올랐다.
주말에는 크루와 함께 뛰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뛰는 게 좋아서 나갔다. 다 뛰고 마시는 커피가 좋았고, 다음 주에 또 보자는 인사가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뛰고 나면 기록부터 확인했다. 앱에 순위가 떴다. 자기 위로 열 명쯤이 있었다.
강의는 여러 개를 결제해 두었다. 끝까지 들은 것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결제할 때는 마음이 놓였다.
어느 저녁, 오랜만에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 여자는 통화를 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급했다. 아직 오늘 분량을 못 읽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방금 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났다. 바카라은 백 권쯤 읽었고, 강의는 스무 개쯤 샀고, 다이어리는 다섯 권을 채웠다. 그런데 삶은 그대로였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같은 걱정을 했다.
달라진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삼 년 전보다 자기가 더 부족해 보였다.
어느 날 그 여자는 알람을 끄고 다시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여덟 시가 지나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하루를 이미 망친 것 같았다.
그날 저녁에는 다른 바카라을 샀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의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바카라이었다. 명상 앱도 깔았다.
며칠 뒤, 그 여자는 명상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날에도 다이어리에 붉은 칸을 그었다.
나는 왜 쉬는 것도 제대로 못 할까.
들여다보기
자기를 갈고닦는 일은 좋은 일이다. 무언가 되고 싶어 배우고, 가면서 이게 맞는지 돌아보는 것. 사람이 사람으로 자라는 일이다. 뛰는 것도 그렇다. 바람이 좋아서 뛰는 일은 그 자체로 온전하다.
이 글이 보는 것은 다른 자리다.
먼저 한 겹. 그 여자는 자기를 계발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를 잘게 쪼개고, 색으로 칠해 낭비를 재고, 못 지킨 칸을 붉게 표시하는 것. 이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다. 관리하는 방식이다. 일할 때 쓰던 자를 자기 삶에 갖다 댄 것이다. 그러면 눈뜬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자기가 자기를 감독하게 된다.
그 여자가 골라 읽은 바카라들도 비슷한 방법을 되풀이했다. 몇 시에 일어나라, 어떻게 적어라, 얼마나 뛰어라.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도 묻지 않는다. 방법만 있고, 방향과 돌아봄이 없다.
여기서 한 겹 더 내려가야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왜 그랬나.
그 겨울을 봤기 때문이다.
멈추면 뒤처진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어서 무서운 것이다. 실제로 자리가 비었고, 실제로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그러니 그 여자가 새벽에 일어난 것은 유난스러워서가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면 정말로 밀려난다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가 가장 무서운 자리다. 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미워할 데가 있다. 그런데 스스로 하는 일에는 원망할 데가 없다. 못 지키면 화살이 전부 자기에게 돌아온다. 붉은 칸을 보며 잠들지 못하는 밤이 그렇게 생긴다.
그러면 왜 삼 년이 지나도록 멈추지 못했나.
멈추면 무언가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바카라을 덮고 가만히 있으면,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물음이 왔다. 지금 이 자리가 맞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그 물음 앞에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바카라을 폈다. 무언가 하고 있으면 그 물음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새벽에 일어난 것은 나아지려는 마음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자기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했다. 나아지고 있는 사람은 지금의 자기를 아직 판단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그 여자는 자란 게 아니라, 삼 년 동안 자기를 쥐어짰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사라졌다. 잴 수 있는 것만 값이 되니, 잴 수 없는 것은 없는 셈이 되었다. 몇 시에 일어났는지는 남는데 그날 무엇이 좋았는지는 남지 않는다. 몇 권을 읽었는지는 세는데, 그 여자가 어떤 문장에 오래 멈추는 사람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따라 한 방법은 모두 다른 사람이 성공했다는 방법이었다. 그 표 안에는 그 여자가 언제 가장 맑은지, 무엇을 읽을 때 오래 멈추는지, 누구와 달릴 때 즐거운지는 들어 있지 않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던 일이, 남들과 같은 사람이 되는 일이 되었다.
지쳐서 반대쪽으로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바카라을 사고 나서도, 그 여자는 명상 시간을 지켰는지를 다시 색으로 칠했다. 도망친 곳이 같은 다이어리였다. 잘 쉬어야 하고 제대로 사랑해야 한다면, 쉬는 일도 숙제가 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이 일에는 그 여자보다 오래된 뿌리가 있다.
일터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시간과 능력을 값으로 매겨 왔다. 고용이 흔들릴수록 사람은 자기 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팔릴 만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를 돌보는 일과 상품처럼 손보는 일이 구별되지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뛰는 것도,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다 자기 관리라는 한 이름으로 묶인다.
그 자리에 이 시장이 들어섰다.
그런데 왜 방법이 이토록 많이 팔리는가. 방향은 사람마다 달라 한 가지 상품으로 만들기 어렵지만, 방법은 숫자와 단계로 만들어 되풀이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시에 일어날지, 몇 권을 읽을지, 몇 킬로를 뛸지는 누구에게나 같은 표로 건넬 수 있다.
돌아보는 일은 상품이 되기 어렵다. 돌아본 끝에 더 하라는 답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길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도 나온다. 그러나 계속 나아지라는 상품에는 멈추는 법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리고 이 바카라들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만 말한다. 네가 일찍 일어나라, 네가 마음을 바꿔라. 그런데 그 사람이 왜 지쳤는지는 묻지 않는다.
자리가 줄어드는 것, 월급으로는 집을 못 사는 것, 아파도 쉬지 못하는 것. 이런 것은 한 사람이 일찍 일어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장은 그쪽을 보지 않는다. 오직 개인의 습관과 마음가짐만 말한다.
그러면 편리한 일이 생긴다. 안 되는 사람은 덜 노력한 사람이 된다. 구조를 묻던 자리에 자기 탓이 들어선다. 자기 탓을 하는 사람은 아무에게도 따지지 않는다. 대신 다음 바카라을 산다.
자리를 줄인 쪽과 새벽에 일어나라고 파는 쪽은 서로 다른 사람들인데, 감당은 한 사람이 혼자 한다.
그러니 혹시 지금, 못 지킨 칸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면. 그것을 의지가 약해서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밀려나는 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 어떻게든 버텨 보려던 것이다.
다만 하나만 같이 보고 싶다. 그 바카라들을 다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좋은 바카라은 분명히 있고, 어떤 문장은 사람을 일으킨다. 다만 읽고 나서 자기가 더 초라해진다면, 그 바카라은 당신을 돕고 있지 않다.
그리고 빠진 두 가지를 도로 넣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묻는 일, 지금 가는 길이 나에게 맞는지 돌아보는 일. 그 둘이 있으면 갈고닦는 일은 사람을 자라게 한다. 그 둘이 없으면 갈고닦는 일이 사람을 깎는다.
삼 년 동안 백 권을 읽은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애쓴 사람이 어떻게 부족한 사람인가.
기록표에는 몇 시에 일어났는지, 몇 킬로를 뛰었는지가 남는다. 그날 얼굴을 스친 바람은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