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려고 한 게 아니라, 뒤처지지 않으려 했다
이야기
그 남자는 성실했다.
처음엔 여윳돈 조금이었다. 노후가 걱정돼 시작했다. 그리고 공부를 했다. 뉴스를 챙겨 읽고, 지표를 익히고, 남들이 쓴 분석을 밤늦게까지 읽었다. 아무렇게나 넣는 사람들과 자기는 다르다고 여겼다. 근거가 있었으니까.
한동안은 벌었다. 처음에 정해 둔 금액에 닿은 날, 그 남자는 팔지 않았다. 대신 선을 다시 올렸다. 여기서 거두면 더 오를 것을 놓치는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하루의 모양이 바뀌었다. 눈을 뜨면 먼저 창을 열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점심시간에, 회사 화장실에서 숫자를 확인했다. 저녁에는 밖의 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잠들기 전에 보고, 새벽에 깨서 또 봤다.
아이 학원 상담을 하던 날, 선생이 말하는 동안에도 그 남자의 손은 주머니 속 폰에 가 있었다. 상담이 끝나자마자 화면을 켰다. 그러고는 방금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내려간 날에는 팔 수 없었다. 팔면 손실이 사실이 되니까. 그래서 더 넣었다. 평균을 낮춰야 한다고, 이건 실패가 아니라 대응이라고 자기에게 말했다.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 숨길 일도 아니었다. 다만 얼마가 오갔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들여다보기
그 남자에게 도박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카드를 잡은 적도, 판에 앉은 적도 없다. 공부를 했으니까.
미리 밝혀 둘 것이 있다. 투자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오래 묻어 두고 기다리는 일이라면 이 글과 상관이 없다. 그러나 멈추려는데 멈추지 못하고, 잃은 것을 되찾으려 더 넣고, 식구에게 규모를 숨기고, 하루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름은 투자인데 손이 움직이는 모양은 다른 것을 닮아 간다.
그 남자가 좇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돈이 전부였다면, 처음 정한 선에서 얼마라도 거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선에 닿자 선을 다시 밀어 올렸다. 그러니 그 남자를 움직인 것은 계산만이 아니었다. 앞서 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들 어디론가 가는데 나만 제자리라는 감각,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벌어도 채워지지 않았다. 벌면 더 번 사람이 보였다. 그래서 늘 늦었다.
그 마음이 가져간 것은 셋이었다.
먼저 현실감을 가져갔다.
공부가 그 남자를 지켜 주지는 않았다. 공부는 어느새 자기 판단을 믿게 하는 근거로 쓰였다. 위험을 새로 볼 때보다, 이미 내린 결론을 확인할 때 더 오래 들여다봤다. 반대쪽을 말하는 글은 모르는 소리로 보이고, 같은 쪽을 말하는 글만 옳아 보였다. 그렇게 쌓인 것은 실력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그리고 지나친 확신은 판단을 돕기보다, 더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믿게 만든다.
그다음은 사람을 가져갔다.
그 남자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다투지 않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술이라면 냄새가 났을 것이고 도박이라면 소문이 났을 텐데, 이것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곁의 사람들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무엇이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남자는 식구들 한가운데서 혼자가 되어 갔다.
마지막으로 오늘을 가져갔다.
하루에 열두 번 창을 열었지만, 정작 그날 하루가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내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창밖 날씨가 어땠는지. 눈이 화면 안에 있으니 화면 밖이 흐려졌다. 손에 쥔 숫자는 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매일 조금씩 줄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그러면 그 마음은 어디서 왔나.
어느 날 그 남자는 계산을 해 봤다. 지금 받는 것을 다 모아도 닿지 않는다는 답이 나왔다. 이십 년을 꼬박 넣어도, 남들이 몇 해 만에 넘어간 선을 못 넘는다는 답이었다. 그 계산을 한 번 하고 나면 되돌아갈 수 없다. 아침마다 나가는 일이 자기를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버렸으니까.
그러니 그 남자가 원한 것도 돈이 아니었다. 다른 삶이었다. 아침마다 나가지 않아도 되는 삶, 아이에게 물려줄 것이 있는 삶. 사다리가 치워진 자리에서 한 번에 건너뛰는 길이 이것뿐이라고 여긴 것이다.
여기서 이상한 일이 보인다.
같은 회로를 돌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슬롯가 말린다. 끊으라 하고, 치료를 권하고, 도박이라 부른다. 다른 하나는 슬롯가 권한다. 노후를 오래 준비하도록 돕는 제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는 시장의 재촉과 만나는 데 있다. 저축만 하는 사람은 뒤처진 사람이 되고, 거래하지 않는 사람은 기회를 놓친 사람이 된다. 그러는 사이 성실히 일해서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불안이, 고스란히 개인의 계좌 안으로 밀려든다.
그래서 이 병은 부끄러움 없이 자란다. 술은 숨기고 도박은 감추는데, 이것은 식탁에서 이야기한다. 예금만 하는 사람은 답답한 사람이 되고, 성실하다는 말은 어느새 어리석다는 말과 붙어 다닌다. 부끄러움이 뒤집힌 것이다.
그러는 사이 사람의 값도 뒤집혔다. 하루를 온전히 써서 받는 것보다, 가진 것이 저 혼자 불어난 몫이 커졌다. 그러면 아침마다 나가는 일이 초라해진다. 돈이 일하고 사람은 지켜보는 쪽에 서는 것이다.
일해서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불안을 키워 놓고, 그 불안에 수익률을 약처럼 판다. 격차가 상처를 내고, 시장은 그 상처를 건너뛸 길을 상품으로 내놓는다.
그러니 혹시 지금, 하루에도 몇 번씩 화면을 열고 있다면. 내려간 것을 인정하지 못해 계속 넣고 있다면. 그것을 그저 욕심이라고만 부르지는 않았으면 한다. 성실히 살아도 닿지 않는다는 계산을 이미 해 본 사람이, 그래도 무언가 해 보려고 붙든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안이 시작을 설명해 준다고 해서, 식구에게 돈과 시간을 숨긴 일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이름이 투자라 해도 멈추려는데 멈추지 못하고, 잃은 것을 되찾으려 더 넣고, 하루와 사람이 무너지고 있다면 혼자 견딜 일이 아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헬프라인은 국번 없이 1336이다. 무료이고, 365일 오전 아홉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이어진다. 가까운 지역센터 안내도 받을 수 있다. 부끄러운 전화가 아니다.
그 손이 화면에서 떨어지면, 비로소 돌아오는 것이 있다. 오늘 저녁, 앞에 앉은 사람이 하던 말을 끝까지 듣는 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