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km
서울에서 부산을 세 번쯤 왕복할 거리.
며칠 전 러닝 앱을 보다가 새삼 놀랐습니다.
숫자를 보고 있자니 처음 달린 날이 떠올랐어요.
1km 남짓 뛰고 세상이 형광빛으로 번쩍이던 날.
발바닥이 아프더니 호흡이 턱까지 차고, 눈앞이 핑핑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잘못됐다.' 본능적으로 알겠더라고요.
급히 가로수 밑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토할 것 같았거든요.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가며 생각한 건, '다신 안 뛴다'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운동화를 신고 있더라고요.
아마 오기였을 겁니다.
허약한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한동안은 나와 싸우려고 달렸습니다.
어느 날은 휴대폰을 두고 나왔습니다.
다시 들어가 가져올까 하다가 그냥 뛰어보기로 했어요.
노래도, 기록도, 페이스 확인도 없이.
그저 코로만 편하게 호흡할 수 있는 속도로 자분자분 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그날 처음으로 달리기가 즐거웠습니다.
몸을 스치는 바람.
길가의 가로수 냄새.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의 감촉.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휴대폰도 두고, 목표도 두고 나간 날.
달리는 즐거움을 챙겨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나는 달리기를 한 게 아니라,
나와 싸우고 있었다는 걸.
가끔 생각합니다.
만약 처음부터 2,500km를 목표로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
1km도 버거운데 2,500km는 엄두도 못 냈겠죠.
오늘만 달렸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떤 날은 거북이처럼.
어떤 날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차곡차곡.
쌓이는 줄도 모르고 달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앱을 열어보고 놀랍니다.
'이렇게 많이 달렸다고?'
인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목표를 세웁니다.
그리고 점점 집착합니다.
집착할수록 착각은 커지는데,
목표에 이르지 못하면 인생 잘못 산거라고 믿게 됩니다.
온통 목표에, 미래에 집중하다 보니
당장 오늘을 또박또박 살지 못하고 겅중겅중 살아가면서요.
신기한 건, 현재를 희생하며 도착한 미래에도 다시 현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언제나 지금뿐이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목표를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목표는 지점이 아니라 방향이라고.
지도가 아닌 나침반이라고요.
가끔 꺼내 방향만 확인하면 되는 것.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곁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
어쩌면 삶에서 진짜 시간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보다,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
성공하기 위해 현재를 견디는 삶보다,
지금 하는 일을 성실히 해나가는 삶.
가만 보면 그런 사람들이 더 멀리 가기도 합니다. 더 오래가기도 하고요.
매일 오늘만 달리는 사람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