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야 할 480만 원을 묻는데, 왜 내가 먼저 미안해질까
“지급은 내부 절차 때문에 늦어집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입금 예정일을 하루 넘긴 수요일 오전, 산업부품 무역 I사 담당자에게 연락하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지난달 납품한 산업부품 대금 480만 원. 물건은 모두 전달했고 수령 확인도 받았다. 나는 이 입금에 맞춰 다음 발주의 물류비를 지급할 계획을 세워 두었다. 화면의 ‘조금만’을 읽는 동안, 밀려서는 안 될 우리 지급일이 먼저 떠오른다.
지급 예정일이 적힌 청구서를 다시 띄운다. 약속한 돈을 받는 일인데 내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그래도 지금 연락하는 사람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필요한 것은 분한 마음을 더 잘 전달하는 문장보다 멈춘 절차, 확인할 담당자, 가능한 지급일이다. ‘조금만’으로 비어 있는 달력 한 칸을 이번 답장에서는 채워야 한다.
480만 원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는데 우리 지급일은 다가옵니다. 기다리겠다는 답장 한 줄로 이 간격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멤버십에서는 전액 지급일을 확인하는 답장, 240만 원씩 나누어 받는 제안, 새 약속에도 답이 없을 때의 후속 문장까지 다룹니다.
아트라디우스가 2026년 7월 8일 발표한 아시아 조사에서 응답 공급업체의 80%를 넘는 업체가 대금 연체를 보고했고, 연체 채권은 B2B 매출채권의 약 3분의 1이었다. 여러 기업이 겪는 문제라는 뜻이지, 우리 거래처의 지급 사유나 회수일을 알려주는 숫자는 아니다. [S4]
이 통계를 우리 거래처의 속마음을 해석하는 데 쓰지는 않는다. “다들 늦게 주니 기다리자”는 결론도 곤란하다. 개별 건에서는 약속한 지급일, 서류 접수 상태, 실제 입금 여부를 각각 확인해야 한다.
내부 절차라는 말은 원인이 아니라 큰 분류에 가깝다. 납품 확인 자료가 빠졌을 수도 있고, 결재자가 출장 중일 수도 있다. 지급할 자금이 부족한데 담당자가 그 사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어느 쪽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독촉의 강도를 높여도 필요한 답을 얻기 어렵다.
먼저 우리 쪽 누락을 살펴야 한다. 상대가 요청한 서류를 보냈는지, 받는 사람이 맞았는지, 수정본 대신 이전 자료를 전달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보냈다는 사실과 지급 담당자가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접수됐다는 사실은 다르다. 누락이 있다면 신속하게 보완하고, 그 뒤 어느 일정으로 처리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서류가 모두 접수됐다면 다음 질문은 승인과 실행을 나누어 향한다. 승인이 나지 않은 것인지, 승인은 끝났지만 송금 일정이 잡히지 않은 것인지에 따라 연결해야 할 담당자가 달라진다. “확인 중”이라는 답을 반복해서 받는다면 확인 대상과 회신 시각부터 좁혀야 한다.
I사 담당자는 “결재만 나면 됩니다”라고 덧붙인다. 나는 결재를 올린 날짜, 현재 확인 중인 부서, 완료 예상일을 묻는다. 다만 상대 회사의 내부 문서를 모두 보여 달라고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급 전망을 판단할 만큼의 진행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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