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콘크리트 녹색섬》82년생 개포동 나무들을 애도하며

by조하나



(스포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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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



최근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콘크리트 녹색섬》. 이성민 감독은 이 아파트에서 유년을 보낸 '개포 키즈'다. 2014년, 어릴 적 살던 단지를 우연히 다시 찾았다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 나무들에 이끌려 카메라를 들었고, 이후 7년여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영화는 여러 다큐멘터리, 환경, 여성 영화제에서 수상한 뒤 2026년 8월 19일 극장에서 개봉했다.



1982년에 지어진 개포주공아파트에는 39종, 최소 6만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영화는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로 시작해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로 다시 돌아온다. 전기톱이 밑동을 갈아내는 시간이 지나면, 5층 아파트보다 큰 몸이 기울고, 마침내 쿵, 하고 땅에 닿는다. 감독은 그 순간을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쓰러지며 터져 나온 피톤치드 향이 그렇게 황홀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살아있다는 걸 나무가 죽는 순간, 그렇게 확인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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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장면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저 나무들은 사람으로 치면 마흔 살이 넘은 존재였다. 개포주공아파트가 들어설 때 뿌리를 내렸으니 무려 4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킨 것이다. 누군가는 저 나무 아래서 걸음마를 뗐을 것이고, 누군가는 저 그늘에 숨어 사랑 고백을 건넸을 것이고, 부모가 일 나간 오후를 혼자 견디던 아이는 저 나무 밑동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흔 해 동안 한 동네의 모든 일을 지켜본 존재가, 전기톱 소리 몇 분 만에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이 모습은 굉장히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무가 잘려 나가는 그 몇 분이 전부가 아니다. 재건축 승인이 나던 날, 이주 계획이 확정되던 날, 공원 부지 설계도가 그려지던 날, 나무는 이미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가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눈에 보이는 순간의 것들이다. 총성, 폭발, 비명. 미국의 문학평론가 롭 닉슨은 2011년 저서 《Slow Violence and the Environmentalism of the Poor》(느린 폭력과 빈자의 환경주의, 국내 미출간)에서 이와 다른 종류의 폭력에 이름을 붙였다. 폭탄처럼 한순간에 터지는 게 아니라 서류 위에서, 회의실에서, 아무도 소리치지 않는 곳에서 몇 년에 걸쳐 퍼지는 폭력, 눈에 보이지 않아서 가해자도 바카라임도 흐릿해지는 '느린 폭력'이다. 개포동의 나무들이 겪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게 쌓여온 폭력은 마지막 순간에야, 쿵, 하는 소리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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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더 아픈 장면이 하나 있다. 감독과 주민들은 단지 안 나무 몇 그루만이라도 지키려 한다. 구청을 비롯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고 벌목 업체가 알아볼 수 있도록 나무 몸통에 색띠를 둘렀다. 살려두기로 합의된 나무라는 표시였다. 그런데 재건축을 반대하던 다른 이들이 개발 일정을 늦추려는 목적으로 그 띠를 몰래 풀어버렸다. 표시가 사라진 나무는 벌목 업체의 눈에 그저 베어도 되는 나무로 보였다. 그렇게 몇 그루가 더 쓰러졌다. 나무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이 나무들은 재건축에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아니었다. 양쪽 모두의 계산 사이에 끼어 있다가, 누구의 뜻도 아닌 채로 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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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런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천사 하나가 얼굴을 과거로 향한 채, 잔해 위에 잔해가 쌓여가는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머무르며 부서진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이고 싶어 하지만, 등 뒤에서 불어오는 폭풍이 날개를 붙잡아 접지 못하게 한다. 그 폭풍은 그를 등지고 있는 미래로 떠밀고, 그 앞에 쌓인 잔해는 하늘 높이 치솟는다. 사람들은 이 폭풍을 진보라고 부른다. 색띠가 풀리고 나무가 한 그루씩 더 쓰러질 때마다, 나는 그 천사를 생각했다. 개포동을 등지고 떠밀려 가는 재건축이라는 폭풍 앞에서, 누군가는 뒤를 돌아보며 쌓여가는 잔해를 세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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