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자의 영화《암살자(들)》

권력은 짧고 예술은 길다

by조하나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래 보려 했던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극장으로 향하는 동안 뉴스 타임라인이 다른 영화 하나로 뒤덮였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저급한 프로파간다물'이라고 했고, 어느 의원은 감독을 국정감사에 불러내라 했고, 또 다른 의원은 학교마다 공문을 보내 단체 관람 현황을 내라고 했다. 영화 한 편을 두고 국가의 제도가 이렇게까지 동원되는 걸 본 적이 있던가.



그래서 영화를 바꿨다. 《암살자(들)》로.



이게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반발 심리다. 금지된 것일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마음. 나는 기꺼이 그 실험의 피험자가 되기로 했다. 현재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당시 권력이 억지로 틀어막으려 했던 역사적 사건은 반세기가 흘러 잘 빠진 상업 영화로 더욱 단단하게 선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상영관은 꽉 찼다. 객석에는 청년 세대뿐 아니라 5060 세대가 유독 많이 보였다. 지금의 5060이라면 1970년대에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상영 중간 중간, 극장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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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허구가 하는 일



먼저 무엇보다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영화 《암살자(들)》은 '박정희가 육영수 저격 사건의 배후다'라는 음모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박정희 개입설은 모순되고 개연성이 없는 내용이다. 그걸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허진호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직접 밝히기도 했다. 다만 당시 중앙정보부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반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시사 추적 프로그램에서 다룬, 더 이상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이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한 인물의 유죄를 주장하는 것과, 독재 시대 최고의 권력이 집중된 기관과 집단의 그림자를 의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자막을 띄우고, 등장 인물의 이름도 바꿨다. 허구임을 숨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허구가 하는 또 하나의 일. 이 영화를 이끄는 주체는 형사가 아니라 신문사 기자다. 극의 질문은 '누가 쐈는가'에서 '누가 그것을 말할 수 있었는가'로 옮겨간다. 극 중 《동성일보》라는 가상의 신문사는 실제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모티브로 삼았다. 수사기관의 공식 결론을 대변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조명하는 건 육영수 저격 사건에 관한 음모론이 아니라, 박정희 독재 시대를 온몸으로 맞은 사람들과 서글픈 시대상이다. 세 차례 헌법을 바꿔 무려 18년 간 권력을 부린 독재자, 중앙정보부라는 권력 안에 있던 자, 그 권력의 하수인이면서도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경찰, 권력 밖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은 기자. 박정희, 육영수와 같은 자리에 있다가 총에 맞고 목숨을 잃은 합창단 여고생, 소리 소문 없이 남산에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동네 전파사 TV 앞에 모여 육영수의 죽음에 대성통곡하던 사람들, 유신 독재 반대 시위에서 싸운 사람들, 반대로 반공 시위에 나선 사람들, 매일 오후 6시 국기하강식 사이렌이 울리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국기를 향해 서 있던 사람들, 그 시절 각자 자기 나름의 선택을 한 사람들, 같은 시대를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자체로 볼 때 러닝타임이 필요 이상으로 길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카메오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박정민의 연기가 특히 좋았고, 이민호라는 배우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전반부의 스릴러 장치, 촬영과 편집과 음악과 음향은 쫀쫀하다. 다만 후반부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은 다소 과잉되고 '국뽕'스러웠다. 감독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할 때 가장 절제를 잃은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의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더 많다. 독재 시대의 정보 은폐로 빈 틈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건을, 《암살자(들)》은 허구의 인물과 영화적 상상력으로 메운다. 단지 소재가 민감하다는 이유로 그 영화예술적 표현 방식이 폄하될 이유가 전혀 없는 영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집중하려는 건 영화 자체의 분석이 아닌, 이 영화라는 거울이 비추는 현재 우리 슬롯와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 작품을 영화로서 비평하는 것과, 지금 정치권과 일부 대중이 하고 있는 일, 그러니까 작품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압박은 전혀 다른 종류의 비판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라는 취약한 이미지



2026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영화에 대한 압박은 어떤 모습인가.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허진호 감독을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세우자고 요구했다.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인선 의원은 학교마다 단체 관람 현황을 내라는 공문을 보냈고, 교사노조는 이에 대해 '교육 검열'이라며 반발했다. 네이버 평점에는 중복 집계 논란이 일었고, 매크로를 이용한 평점 테러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봉 영화에 대해 관객이 격렬하게 호불호를 말하는 것은 대단히 민주적이지만,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나서서 영화를 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막상 공격의 화살이 가장 많이 꽂힌 곳은 가장 약한 고리였다. 유해진 배우를 향해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북한상'이라는 혐오와 조롱의 말로 공격했다. 극단주의자들의 사이버 불링이 이어졌다. 김고은, 이영애, 박병은 등 영화를 관람하고 코멘트를 남긴 배우들의 소셜 미디어에는 악플이 쏟아졌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영화 유튜버 지무비, 역사강사 최태성 등의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이에 대해 입장문을 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되고, 개별 창작자에게 과도한 비난이 쏠리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이동진과 지무비, 최태성이 영상을 내린 선택에는 '오냐오냐 해줬다'는 비판이 따라붙기 쉽다. 그런데 이 침묵에는 또 다른 효과가 있다. 극단주의자들이 압박을 가하면 콘텐츠가 사라진다는 걸 실제로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침묵이 가장 안전해 보이는 순간에 침묵하면, 그 침묵 자체가 '압박이 통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 신호는 다음 논란에서 다른 창작자들을 더 빨리, 더 일찍 입 다물게 만든다. 검열의 진짜 효과는 한 번의 사건을 막는 데 있지 않다. 앞으로 나올 모든 발언을 미리 위축시키는 데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 혼자 버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동진과 지무비가 물러선 건 각자 혼자서 그 압박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좌표가 찍힌 개인이 조직화된 공격 앞에 혼자 서 있는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 저쪽의 힘이 조직화에서 나온다면, 답은 이쪽도 조직화하되 그 방향이 공격이 아니라 엄호여야 한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이 먼저 말하고 흔들릴 때, 그 옆에 몇 명이 함께 서 있는지가 결과를 가른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낸 입장문은 그 엄호의 작은 시작이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할 게 있다. 이걸 '전쟁'으로 규정하는 쪽은 언제나 저들이다. 전쟁으로 규정할수록 중간의 합리적 다수는 피로감을 느끼고 멀어진다. 전쟁에는 모두가 어느 편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건 그저 질문일 뿐이라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하면, 전쟁을 치르는 건 저들 혼자가 되고 그 과잉 자체가 저들의 약점으로 드러난다.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학교폭력에서 일진이 한 사람을 지목해 좌표를 찍으면, 조무래기들이 우르르 달려가 때리고 괴롭힌다. 그 지목이 정당한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일진이 찍었다는 사실 자체가 공격의 허가증이 된다. 주진우 의원이 유해진 배우에게 '북한상'이라는 댓글을 남긴 순간이 정확히 그 좌표 찍기였다. 그 뒤로 이어진 악플과 자택 앞 집회 예고는, 조무래기들이 달려가 때리는 장면이다. 힘 있는 자가 지목하면 힘없는 다수가 달려들어 짓밟는 이 구조야말로 박정희 군사독재가 남긴 파시즘의 잔재, 그 자체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공동체가 불안에 처했을 때 진짜 원인을 겨누는 대신, 상대적으로 약하고 반격할 힘이 없는 대상에게 폭력을 집중시킨다고 썼다. 희생양 메커니즘이다. 이 틀로 다시 읽으면 보인다. 왜 시슬롯에서 한 줄 소감을 남긴 배우가 표적이 됐는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러한 모든 소동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의 서사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튼튼한 것은 이야기 하나로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릴까 봐 미리 막으려는 태도야말로 그 취약함의 증거다. 영화 한 편에 국정감사 소환을 운운하고 고발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지키려는 그 인물의 이미지가 얼마나 허술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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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니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냐



심은경이 연기한 이강자, 재일교포 조력자인 이 창작 인물의 대사가 떠오른다.



'이곳 재일교포 청년들은 피가 뜨거운 이들이 많다. 현실이 차가워서.'



1974년의 재일교포 청년들만 그랬던 게 아니다. 2026년 지금, 대한민국에도 차가운 현실 속에서 유독 뜨겁게 혐오를 끓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70년대 독재 시절 재일교포 청년의 피 끓는 혐오가 육영수 저격 사건이라는 물리적 테러로 이어졌듯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혐오도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진다.



2025년 1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그 지지자들은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했다. 2025년 2월에는 윤석열 탄핵 심판을 맡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자택 앞에서 한 달 반 동안 고성과 욕설을 이어갔고, 헌법재판소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2026년 6월,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해 개표소를 봉쇄한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점거 시위 현장에서는 경찰관의 얼굴에 침을 뱉은 40대 여성이 구속됐고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경찰관의 팔을 잡아끈 20대 남성들은 구속 심사를 받았고, 다른 참가자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이도 있었다. 이 봉쇄로 펜싱 국가대표팀은 개인 장비를 챙기지 못한 채 국제대회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2026년 10월, 영화 《암살자(들)》에 출연한 유해진 배우의 자택 앞에 한 달 짜리 집회가 예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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