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비주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듯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영빈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일곱 번째 기자회견을 위해 들어섰다. 평소라면 의자에 앉아 진행하던 자리였다. 이번엔 의자가 없었다. 스탠딩 테이블 하나, 기자단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총 1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내내 서 있었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국민 여러분, 제가 부족한 게 많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재판정의 피고인석이 떠올랐다. 벌을 서는 아이의 자세였다.
모두발언 끝자락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국민이 옳습니다. 변방의 비주류였던 저를 지금의 이 자리, 대한민국을 바카라임지는 국가 최고바카라임자로 불러주신 것도 국민들이셨습니다."
가장 보통의 사람
나는 이십대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돈 벌고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학연수, 유학은커녕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나 고시 준비는 꿈도 못꿨다.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공백이 있어선 안 되는,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통의 사람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다. 방콕이었다. 카오산로드 길거리, 골동품을 늘어놓고 파는 노점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나이든 히피 상인 옆에 한 시간을 나란히 앉아 세상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밤, 나는 '거리의 아이'라 불리던 내 삶의 모든 궤적에 감사했다. 내 안의 '비주류'라는 특성이, 체면도 정해진 방식도 없이 내 세계를 더 넓혀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할 때는 한인 손님들에게 무시당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순전히 다이빙 강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예체능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유독 무시한다. 공부를 못 했을 거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한국 보다 못 산다고 생각하는 동남아 국가에선 더 그런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한인 손님들은 내가 대학을 나왔는지,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한국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했는지를 캐물었다. 내 학력과 기자 경력을 말하는 순간, 그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났는데 한국만 떠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나는 결국 웨스턴숍으로 옮겼다. 유러피안 손님들은 애초에 나이도, 학벌도, 출신 지역 자체를 묻지 않는다. 나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들은 다이빙 강사로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존중해주었다.
인간 이재명은 소년공 시절 함께 일하던 공장 노동자들부터 시작해, 시장통 상인들, 대학 시절 만난 사람들, 사법고시 동기들, 법조계 인사들, 그리고 지금 그를 흔드는 기득권 세력들까지, 대한민국 계급 슬롯의 거의 모든 층위를 몸으로 통과하는 삶을 살았다. 선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다른 법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였던 사람은 볼 수 없었던 풍경을,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씩 보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가 만드는 정바카라이 다른 각도에서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다른 정치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공감의 폭 자체가 다르게 훈련된 사람이다.
이재명이라는 대통령에게만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이재명 정부는 볼펜 한 자루 없이 시작했다. 12·3 내란으로 인한 궐위로 치러진 조기대선이었다. 인수위 기간도 없이 당선 다음 날 곧바로 용산 대통령실에서 집무를 시작했다. 박근혜 탄핵으로 역시 인수위 없이 시작한 문재인도 간단한 취임식과 카퍼레이드는 했다. 12.3 내란이라는 87년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국가비상사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출발한 이재명 정부는 카퍼레이드마저 죄스럽게 생각했던 걸까.
윤석열의 취임식은 달랐다. 2022년 5월 10일,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4만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로 치러졌다. 군악대와 의장대가 행진했고 2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취임사가 끝난 뒤에는 축하공연이 이어졌고, 용산 집무실까지 카퍼레이드로 시민들에게 인사하며 행사가 마무리됐다. 역대 대통령 취임식 가운데 가장 화려한 축에 속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12.3 내란으로 엉망이 된 나라를 정상화시키는 일과 새 정부를 만드는 일을 늘 그랬듯 맨땅에서 동시에 시작해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년 3개월 만에 벌써 일곱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것도 매번 대변인이 고른 질문지가 아닌, 사전 조율 없이 즉석해서 직접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박근혜는 4년 재임 기간, 국내 단독 기자회견을 딱 세 번 열었다. 문재인은 5년을 통틀어 총 열 번 안팎이었다. 윤석열은 3년 가까운 재임 기간 네 번의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 네 번 모두 MBC는 단 한 번도 질문 기회를 받지 못했다. 또한 윤석열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매일 아침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옮기는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은 취임 반년 만에 중단된 뒤 다시 열리지 않았다.
2024년 5월, 윤석열은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출입기자 200여 명을 초청해 직접 김치찌개를 끓이고 계란말이를 부쳐 나눠줬다. 기자들은 채상병 특검법이나 김건희 특검법 같은 뜨거운 현안에 대해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 2023년 4월에는 대통령실이 김건희와 출입기자단의 셀카 사진을 공군1호기 안에서 직접 찍어 대통령실 로고를 넣어 배포했다. 언론에는 마이크를 주지 않고, 영부인에게는 카메라를 쥐여준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영부인은 대통령실 공식 사진에 늘 정중앙을 차지했다.
이재명의 지지율은 취임 초 60~70퍼센트를 오르내렸다. 그러다 올해 6월 지방선거를 지나며 급하강했다.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개표 오류, 선관위 관리 부실 논란이 첫 방아쇠였다. 이후 부동산 시장 불안, 증시 변동성, 잇단 인사 후보자 논란, 보완수사권 폐지를 둘러싼 검찰개혁 논쟁, 유시민 발언 논란으로 인한 여권 내부 계파 다툼까지 겹쳤다.
다만 그 낙폭을 이 원인들만으로 설명하려 하면, 곧바로 이상한 질문에 부딪힌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폭등 문제로 임기 내내 시달렸다. 윤석열 정부도 고금리와 PF 부실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앞선 두 정부 모두 지금의 이재명 정부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문제들을 겪었다. 그럼에도 어느 정권도 그 문제들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처럼 1시간 반을 서서 반성문을 쓰며 자기 부족함을 나열하지는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정권 중 유일하게 부동산 정바카라의 불완전성도, 인사 검증의 미비함도, 검찰개혁 지연에 대한 의심도, 그 모든 걸 전 정권 핑계나 다른 명분 없이 오롯이 자기 탓이라고 끌어안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트럼프 역시 미국 정치계에선 엘리트 주류가 아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으로 워싱턴 기성 정치권 바깥에서 올라온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그도 이재명 대통령처럼 비주류다. 그럼에도 그는 지지율이 아무리 낮아도 저자세를 취한 적이 없다. 자신이 대중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권력은 끝장이라 믿기 때문이다. 실패 앞에서 그는 언제나 노골적으로 바이든 정권을 탓했고, 민주당과 언론, 이민자에게 바카라임을 돌렸다. 국가의 최고권위자의 자리에서 트럼프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바카라임을 부정하고, 실패를 부인하며, 자신이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비주류인데도 미국의 지도자인 한 사람은 바깥을 탓하고, 대한민국의 지도자인 다른 한 사람은 안을 탓한다. 대한민국에서 '변방의 비주류'인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애초에 미국의 트럼프처럼 바깥으로 바카라임을 돌릴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슬롯적 신뢰도가 낮은 한국에서 비주류인 화자는 같은 말을 해도 더 의심받고, 그래서 스스로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 과잉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 슬롯의 트럼프에게는 변명과 바카라임 회피, 상대를 향한 공격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한국 슬롯의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처음부터 그 선택지가 없었다.
누가, 왜 배제하는가
영화 《독전》에는 얼굴 없는 마약왕이 나온다. 모두가 쫓지만 아무도 실체를 본 적 없는 흑막, '이선생'이다. 지금 김어준의 딴지일보 커뮤니티에서는 이 이름이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을 가리키는 멸칭으로 쓰인다.
배제는 적진이 아니라, 한때 가장 가까웠던 곳에서 시작됐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여권 내부의 멸칭과 혐오 표현을 자제해달라고 직접 당부했다. "우리는 모두 친문이고 친노이며 친김대중이고 이재명의 동지들"이라며 통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 자제 요청의 당사자가 정작 대한민국에선 가장 많은 멸칭과 혐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피해자는 이재명 대통령, 바로 자신이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혐오 표현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였다. 화해를 호소하는 사람과 혐오 표현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이 뒤틀린 구도가, 대한민국 슬롯 균열의 진짜 깊이를 증언한다.
2017년 대선 하루 전, 유시민은 스스로 "진보 어용지식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정권의 방패를 자처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재인 정부 내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1년도 안 되었을 때 같은 유시민이 "대통령이 계파의 수장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로 돌아섰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뒤바뀐 태도였다.
여기서 나는 묻고 싶다. 정치인 이재명은 계파를 가지면 안 되는 존재인가? 유시민, 김어준, 조국이야말로 참여정부 시절부터 수십 년간 인맥과 방송으로 얽힌 계파 정치, 끼리끼리 감싸주는 카르텔 정치를 해온 당사자들 아닌가. 자신들을 향한 멸칭에는 대통령의 직접 사과까지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B그룹’ ‘용역’ ‘촉법’ ‘썩은내’ ‘명팔이’ ‘리박’ ‘뉴일베’ 등등 별의별 멸칭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유시민이 ‘촉법’ ‘용역’이라는 멸칭을 내뱉은 다음 날, 내 글과 영상의 댓글은 온통 ‘촉법’ ‘용역’으로 도배됐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완전무결, 오점 하나 없는 신처럼 군다. 그러곤 자신들을 향한 멸칭의 배후에 이재명 대통령이 있다는 음모론을 펼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정작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서는 '이선생', '이씨' 하면서 그의 장애까지 가져다 온갖 혐오와 조롱을 마음껏 쏟아내는 저들의 내로남불은 기괴하고 폭력적이다. 때리는 쪽이 늘 원칙과 동지애를 내세우고, 그 바카라임을 물으려는 순간 가장 먼저 피해자를 자처하는 이 뒤집힌 구도는, 저들의 특이한 성정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에 빠진 대한민국 슬롯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낯익은 패턴이다.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
슬롯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영국의 어느 작은 마을을 몇 년에 걸쳐 관찰했다. 오래 산 주민들과 새로 이사 온 주민들 사이에 아무런 실질적 차이가 없었다. 소득도, 직업도, 범죄율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을에 오래 산 쪽은 새로 온 쪽을 끊임없이 험담하고 배제하며, 자신들만이 이 마을의 진짜 구성원이라는 자격을 주장했다. 엘리아스는 이 배제의 유일한 근거가 시간의 우선순위, 오직 "누가 먼저 왔는가"였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걸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의 관계라 불렀다. 오래된 쪽은 뭉쳐서 소문과 낙인을 무기로 삼고, 새로 온 쪽은 그 낙인을 서서히 내면화해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그렇다. 유시민, 김어준, 조국의 계파 정치와 이재명의 지지 기반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 둘 다 정치적 인맥이고, 둘 다 결집한 지지층이다. 차이가 있다면 오직 하나, 누가 이 판에 먼저 도착했느냐는 것뿐이다. 먼저 온 쪽은 그 사실 하나로 심판관의 자리에 서고, 늦게 온 쪽은 아무리 실적을 쌓아도 그 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먼저 왔다"는 자격 자체가 사실과 어긋난다. 유시민, 김어준, 조국은 자신들이 노무현의 적자, 곧 '친노'라는 이름으로 먼저 도착했다는 당위성을 내세운다. 이들에게 '노무현재단' 자리가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이재명이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당적을 갖고 정치를 시작한 건, 문재인이 2012년 국회의원으로 선거 정치에 들어선 것보다 7년이나 앞선다. 정작 당에 먼저 발을 들인 쪽은 이재명이었다. 그럼에도 순서를 정하는 발언권은 언제나 '친노'라는 이름을 쥔 쪽에 있었다. 능력이나 도덕성으로 위장된 이 배제의 진짜 재료는, 결국 순서다. 그런데 그 순서조차, 사실이 아니라 누가 더 크게 이름을 외쳤는가로 정해진 순서였다.
크랩 멘탈리티와 족보 정치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 초대 총리 김민석을 향한 유시민의 경계심과 공격성은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유시민의 노골적인 비판에 김민석 총리는 "비판은 절제될 필요가 있다"며 정면으로 맞받았다. 그러자 유시민은 이후 8월 전당대회에서 정청래를 지원 사격하며 김민석에게는 눈에 띄게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이해찬 전 총리 빈소에서 김민석이 눈물을 보이며 "앞으로 누구랑 상의해야 하나"라고 했던 장면을 두고, 유시민은 김어준 방송에 나와 "울지 말고 바카라 봐라"라고 쏘아붙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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