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된 적 없는 이름들이 왜 여당과 대통령을 흔드는가
목숨을 걸고 담을 넘은 사람과 이미지를 이용하는 사람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대한민국에 불법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그 순간 인천 자택에 있었던 당시 민주당대표 이재명은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향하며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국회로 와주십시오." 그는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그가 믿을 건 시민뿐이었다. 국회 앞에 도착해서는 경찰이 막아선 정문 대신 담을 넘었다.
그날 밤 담을 넘은 건 이재명만이 아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민주당 시각장애인 서미화 의원도, 뒤늦게 도착한 김민석 의원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찰의 봉쇄를 뚫었다. 자정 무렵 여의도에는 5천 명 가까운 시민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슬리퍼, 파자마 바람에 급하게 패딩만 걸친 상태였다. 새벽 1시 3분,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같은 밤, 어딘가에 김어준은 숨어 있었다.
암살조가 가동된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나중에 그는 말했다. 그는 즉시 피신했고, 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36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김어준이 표적이었다는 것. 그가 숨었다는 것.
문제는 그다음이다.
계엄 열흘 뒤, 김어준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를 그 자리에 세운 사람은 당시 과방위원장이던 최민희였다. 최민희는 훗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동지적 관점으로 본다"고, "진정한 시민형 대안 언론"이라고. 심사자가 스스로 자신이 심사하는 대상의 동지라고 밝힌 그 자리에서, 김어준은 이렇게 증언했다. "체포된 한동훈을 사살하고 그것을 북한의 소행으로 발표하려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제보였다. 왜 뜬금없이 그가 체포 1순위인 이재명도 아닌 한동훈의 이름을 꺼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김어준의 이 화법을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들어왔다. 확인되지 않은 제보를 근거로 극적인 서사를 만들고, 검증 없이 던져놓고, 나중에 사실이 아니어도 바카라임지지 않는 화법. 지금 한동훈이 정치권에서 쓰는 화법과 묘하게 닮았다. 체포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 그것 하나로 충분히 무게 있는 증언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정적을 향한 암살 음모라는 훨씬 더 자극적인 서사로 확장했다. 표적이 되었다는 경험을, 자신을 검증 불가능한 위치로 끌어올리는 재료로 썼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질문을 하고 싶다.
표적이 된다는 것과, 그 표적화를 자기 정당성의 이미지로 만들어 파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은 실제 전쟁의 여파 안에 있다. 2026년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반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주에도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과 오만해를 넘어 아라비아해 일부까지 새로운 해상 통제구역을 선포하며 봉쇄를 확대했고, 9월 11일에는 미 항공모함까지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원유대사' 강훈식 비서실장이 지난 4월 한 달 내내 카자흐스탄,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를 오갈 때마다 나는 의아했었다. '트럼프는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이 전쟁을 빨리 끝내려고 하는데, 왜 우리 정부는 저렇게까지 장기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는 거지?'
나는 이재명 정부가 트럼프와 이란, 중동 국가들과 각각 소통하며 트럼프의 성격과 그가 미국 정치판에서 처한 상황, 이란의 굽히지 않는 문화와 정서와 기질, 주변 중동 국가들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 관계까지 재빨리 캐치하고 학습해 전략을 수립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그때 이미 이 전쟁이 절대로 빨리 끝나지 않으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힐 경우를 대비해 플랜 B에 C에, 북극항로 개척 실행까지. 지금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다 계획이 있었다.
그렇게 확보한 원유 2억 7300만 배럴, 나프타 220만 톤은 국내 경제가 정상 운영되는 상황에서 석 달 이상 쓸 수 있는 물량이었다. 한국 선박은 이미 다섯 차례 넘게 홍해로 우회하며 원유를 실어 날랐다. 그 계획의 결과, 이란의 재공격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이재명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적을 수 있었다. "국민 여러분 걱정 마십시오. 휘발유, 경유 등 정제유 가격은 계속 안정됩니다." 원유특사 파견으로 중동 의존도를 70퍼센트에서 50퍼센트대로 낮췄고, 전략비축유 스와프제로 공급 안정성을 유지하며, 최고가격제와 수출물량 통제로 국내 가격을 지켜내고 있다고 그는 국민에게 직접 설명했다. 정유사들이 국제 정제유가 폭등으로 사상 최대 호황을 맞이했지만, 가격 통제로 인한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장치까지 미리 설계해뒀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동 의존도는 여전히 50퍼센트,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숨기지 않았다. 봉쇄가 오히려 확대되는 지금, 강훈식 비서실장의 그 의아했던 행보는 정확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지금 트럼프는 한국의 파병까지 압박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차대한 시기다.
윤석열의 원래 임기는 2027년 5월 9일까지였다. 만약 그가 내란을 하지 않고 파면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미국-이란 전쟁을 윤석열 정권 아래서 맞았을 것이다.
현재 미국-이란 전쟁의 장기화와 봉쇄 확대로 국제유가와 국채 금리가 동시에 치솟고 있다. 지난 9월 10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전 세계로 항의 시위가 번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휘발유 배급제에 반발한 택시 기사들이, 필리핀에서는 정부 보조금과 유류세 폐지를 요구하는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어부들이 유류 창고를 봉쇄하고 경찰과 충돌했고, 포르투갈에서는 운전자들이 도로를 막았다. 과테말라와 시리아에서도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제가 급격히 나빠질 때 세계는 늘 극우로 기운다. 그 기울어짐을 막아낼 기민함이 윤석열 정권에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오늘 뉴스에는 3대째 가족기업이 독점해 온 남산 케이블카 카르텔에 제동이 걸렸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남산 케이블카 사업은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지 석 달 뒤인 1961년 8월, 쿠데타 세력이 세운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대한제분 사장 한석진에게 면허를 내주면서 시작됐다. 원래 3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16년 뒤인 1978년 그 조항이 법령 개정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뒤로 별도 갱신 절차 하나 없이 가족이 3대째 독점으로 이어온 카르텔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골 때리는 나라다. 작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언급했고, 이후 정부 입법안을 추진해 내일부터 법적 효력을 발휘한다.
진짜 B급의 자격
1998년, 홍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해외영업부를 8개월 만에 그만둔 서른 살의 김어준은 배낭여행사를 차려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딴지일보>를 만들었다. 스스로 '총수'라 부르며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이걸 '풍자'라고 불렀다.
나는 그 시절 홍대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아는 진짜 언더그라운드의 정신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2001년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며 무대 위에서 욱일기를 찢고 애국가를 불렀다. 그 뒤로 그는 일본 우익단체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이후 일본 공연 초청이 와도 주최 측이 신변 안전을 이유로 결국 무산시킬 정도였다. 돈도, 안전도, 다음 초청도 포기하고 부당한 권력을 향해 찢은 깃발. 그것이 내가 아는 진짜 B급 정신이다.
<딴지일보>의 조롱은 방향이 달랐다. 위를 향한 저항이 아니라, 만만한 상대를 향한 모욕이었다. 자기 존재를 우월하게 보이려고 남을 깎아내리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김어준의 본질을 이해하는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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