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은 여느 때와 같이 좁고 어두웠다. 서준이 자리 하나 남았다며 인심 쓰듯 얹어준 무대였다. 첫 순서도 아니고 마지막 순서도 아닌, 라인업 중간 어디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자리였다. 나는 뒤쪽 구석 기둥에 기대 섰다. 맥주를 든 사람들은 반쯤은 옆 사람과 딴 얘기를 하며 무대를 등지고 서 있었다. 몇몇은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봤다. 관객보다 스태프가 더 많아 보이는 밤이었다. 도현은 그런 밤에도 온몸을 다 써 불렀다. 무대가 작다고 거기 맞춰 몸을 작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패딩은 여전히 무대 옆에 벗어져 있었다. 소매의 검은 테이프도, 겨울이 다 가도록 그 자리 그대로였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는 앞줄에서만 났다.
공연이 끝나면 멤버들과 소속사 대표를 만나기로 돼 있다고, 전날 밤 도현이 미리 말해줬다. 계약 얘기가 좀 나올 것 같다고. 잘되면 다음 앨범 지원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때는 목소리에 옅은 기대가 섞여 있었다. 낯설었다. 그가 뭔가를 기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공연만 보고 갈 생각이었다. 멤버들 앞에서 알은체를 할 수도 없었고, 대표를 만나는 자리에 낄 이유도 없었다. 무대가 끝나고 멤버들이 앰프 뒤에 세워 뒀던 접이식 의자를 꺼내 대충 펴 놓는 걸 봤다. 드러머가 담배를 붙여 물며 대충 얼른 끝내고 가자고 했다. 베이스는 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도현은 기타 케이스를 정리하며 몇 번이나 문 쪽을 힐끔거렸다. 누가 문 쪽을 보더니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거기서 여자친구도 기자도 아닌, 그냥 구경꾼이었다. 멤버들이 다 모이기 전에 계단을 올라왔다.
한 시간쯤 뒤 도현한테 카톡이 왔다. 끝났어요, 편의점 앞에서 봐요. 공연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편의점이었다. 우리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마주 앉았다. 도현이 캔커피 두 개를 사 왔다. 오늘 얘기 어떻게 됐어요, 대표는 만났어요. 안 왔어요. 매니저만 왔어요. 도현이 캔 뚜껑을 따며 답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멤버들끼리 한참 기다렸다고 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있대요. 매니저가 그렇게 전하고 종이 한 장만 주고 갔어요. 뭐래요. 이번 달부터 정산 주기가 좀 늘어날 수도 있대요. 사정이 있다고. 그게 다예요. 앨범 지원 얘기는요, 물었다. 그건 다음에 얘기하재요. 다음에. 도현이 그 단어를 따라 하듯 뱉었다. 그 말이 왜 자꾸 걸리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사정, 다음. 이 바닥에서 그 두 단어만큼 부지런히 쓰이는 말도 없었다. 지난주에 일러스트레이터한테, 칼럼니스트한테 내가 썼던 말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며칠 뒤 같은 편의점에서 우리는 또다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도현이 말을 꺼냈다. 지난주 뒤풀이에서 서준이가 다른 밴드 얘기를 하더라고요. 소속사가 공연비 몇 년치를 떼먹다가 걸렸다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안주 집으면서 남 얘기 하듯 했다고 했다. 서준다웠다. 정보를 나르는 데는 능하고 그게 자기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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